주기율표의 35.45는 오타가 아닙니다 — 질량수와 원자량이 다른 이유

2026. 7. 6. 12:26원자력 이야기/001. 원자력과 방사선 기초

"저 소수점은 대체 뭔가요?" 주기율표 앞에서 드는 의문

과학실에 붙어있는 주기율표를 자세히 들여다본 적 있으신가요? 원소 이름 밑에 작게 적힌 숫자를 보면 수소는 1.008, 염소는 35.45, 구리는 63.55... 다들 어정쩡한 소수점입니다. 정수로 딱 떨어지는 원소가 오히려 드물 정도예요.

이상하지 않나요?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레고 블록처럼 정수 개수로 뭉쳐서 만들어지는 물건인데, 왜 그 "무게" 값은 하나같이 애매한 소수점으로 나오는 걸까요. 인쇄 오차일까요, 아니면 반올림을 대충 한 걸까요?

정답은 둘 다 아닙니다. 이 소수점 안에는 원자력공학의 아주 기초적인 계산 습관 하나가 숨어 있거든요. 오늘은 "질량수"와 "원자량"이라는, 자주 같은 말처럼 쓰이지만 실은 전혀 다른 두 숫자의 정체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반 평균 몸무게는 왜 76kg도 74kg도 아닐까

이야기를 잠깐 학교 교실로 옮겨볼게요. 어느 반에 학생이 100명 있는데, 이 중 76명은 몸무게가 정확히 35kg이고 나머지 24명은 정확히 37kg이라고 해봅시다. (숫자를 일부러 이렇게 잡은 이유는 뒤에서 밝혀집니다.)

이 반의 "평균 몸무게"는 얼마일까요? 35kg과 37kg의 한가운데인 36kg일까요? 아닙니다. 76명이나 되는 다수가 35kg 쪽에 몰려 있으니, 평균은 36kg보다 35kg 쪽으로 더 기울어야 정상이죠. 실제로 계산해보면,

0.76 × 35 + 0.24 × 37 = 26.6 + 8.88 = 35.48

이 됩니다. 인원수 비율(존재 비율)로 가중치를 준 평균, 즉 가중평균인 거예요. 그런데 재밌는 건, 이 반에 실제로 몸무게 35.48kg인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학생은 전부 35kg 아니면 37kg, 딱 두 가지 값 중 하나만 갖거든요. 35.48이라는 숫자는 "그 반 전체를 대표하는 통계값"이지, 어느 한 개인의 몸무게가 아닙니다.

원자량이 정확히 이런 구조로 만들어집니다.

질량수는 출석부 번호, 원자량은 반 평균

앞선 글(004편)에서 다룬 것처럼, 같은 원소라도 중성자 개수가 달라 질량이 서로 다른 형제들이 있는데 이를 동위원소라고 부릅니다. 이 글에서는 그 동위원소들이 "왜" 존재하는지는 다시 설명하지 않고, 대신 "이 동위원소들이 섞여 있다"는 사실 하나로부터 오늘의 주인공인 두 숫자를 구분해보겠습니다.

  • 질량수(mass number, A): 특정 동위원소 하나가 가진 양성자와 중성자를 합친 개수입니다. 예를 들어 염소-35는 양성자 17개 + 중성자 18개로 A=35, 염소-37은 양성자 17개 + 중성자 20개로 A=37입니다. 개수를 세는 값이니 항상 정수입니다. 반 학생으로 치면 "출석부 번호"처럼 딱 떨어지는 값이에요.
  • 원자량(atomic weight): 주기율표에 실리는 값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그 원소의 동위원소들을 실제 존재하는 비율(존재비)만큼 가중평균한 질량입니다. 반 학생 전체의 "평균 몸무게"에 해당하죠. 여러 정수(또는 정수에 가까운 값)를 섞어 평균 냈으니, 결과가 정수로 딱 떨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을 게 있습니다. 사실 질량수(정수)와 그 동위원소의 실제 측정 질량(원자질량, 단위는 u)도 완벽히 같은 값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산소-16의 실제 질량은 정확히 16.000이 아니라 15.9949u입니다. 핵자들이 뭉칠 때 결합에너지만큼 질량이 아주 살짝 줄어들기 때문인데(질량결손, 001편 참고), 그 차이는 1%도 안 될 만큼 작아서 이번 글에서는 편의상 "정수에 아주 가까운 값"으로 취급하겠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그보다 훨씬 큰 격차, 즉 "정수인 질량수" 대 "소수점인 원자량"의 차이니까요.

 

염소로 직접 검산해보기 — 35.45의 정체

자,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염소의 원자량은 왜 35.45일까요?

자연에 존재하는 염소는 두 가지 동위원소가 섞여 있습니다. 질량수 35인 염소-35(존재비 약 75.76%)와 질량수 37인 염소-37(존재비 약 24.24%)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게 바로 위에서 반 학생 비유에 썼던 그 숫자입니다.

 

정확한 원자질량 값(각각 34.9689u, 36.9659u)으로 계산하면,

0.7576 × 34.9689 + 0.2424 × 36.9659 ≈ 35.45

주기율표에 적힌 그 숫자, 35.45가 그대로 나옵니다. 자연에서 염소 원자를 아무거나 하나 집으면 그 원자의 질량수는 반드시 35 아니면 37, 정수입니다. 하지만 그런 원자를 수없이 모아 저울에 달고 개수로 나누면, 그 어떤 개별 원자도 갖지 않는 값인 35.45가 튀어나옵니다. 이게 바로 원자량의 정체예요.

참고로 구리(Cu-63 약 69.15%, Cu-65 약 30.85%)는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원자량 63.55가 나오고, 브로민(Br-79 약 50.69%, Br-81 약 49.31%)은 존재비가 거의 정확히 반반이라 원자량이 79.90으로 두 질량수의 한가운데에 거의 걸쳐 있습니다. 반대로 탄소는 탄소-12가 98.93%로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원자량이 12.011로 정수 12에 바짝 붙어 있고요. 섞인 비율이 원자량의 "생김새"를 결정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게 원자로 설계랑 무슨 상관일까

"어차피 소수점 몇 자리 차이인데 뭐가 중요하냐"고 물으신다면, 원자력공학에서는 이 구분이 실제 계산에 그대로 들어갑니다.

첫째, 핵종을 지목할 때는 반드시 질량수를 씁니다. 우라늄-235는 핵분열을 잘 일으키는 핵종이고, 우라늄-238은 그렇지 않은 핵종입니다. 둘 다 "우라늄"이지만 원자로 설계자에게는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여기서 쓰는 숫자는 언제나 정수인 질량수(235, 238)입니다. "우라늄의 원자량인 238.03"으로는 애초에 이 둘을 구분할 방법이 없어요.

둘째, 원자량은 정반대로, 실제 시료 전체를 다룰 때 씁니다. 자연 상태 우라늄은 우라늄-238이 약 99.27%, 우라늄-235가 약 0.72%, 우라늄-234가 약 0.0055% 섞여 있고, 이걸 가중평균하면 천연 우라늄의 원자량은 약 238.03이 됩니다.

그런데 원자로 연료로 쓰려고 우라늄을 "농축"한다는 게 뭘까요? 바로 이 존재비를 인위적으로 바꿔서, 핵분열을 잘 일으키는 우라늄-235의 비율을 자연 상태의 0.72%보다 훨씬 높이는(경수로용은 보통 3~5% 수준) 작업입니다. 존재비가 달라졌으니, 그 농축 연료의 실제 평균 원자량도 자연 우라늄의 238.03과는 미세하게 달라집니다. 즉 주기율표에 박제된 238.03이라는 숫자는 어디까지나 "자연 그대로 캐낸 우라늄"의 평균값일 뿐, 실제 원자로에 들어가는 연료의 원자량은 그 연료의 진짜 동위원소 배합에 맞춰 매번 다시 계산해야 하는 값입니다. 이 원자량은 연료 질량으로부터 "원자가 몇 개 들어있나(원자수밀도)"를 환산할 때 그대로 쓰이고, 이 원자수밀도가 다시 중성자가 핵과 반응할 확률(단면적 계산)의 기초가 되니, 결국 원자로 노심 설계 전체가 이 숫자 하나에서 출발하는 셈입니다.

 

오늘의 한 줄 정리

  • 질량수(A)는 특정 핵종 하나가 가진 양성자+중성자 개수로, 정의상 항상 정수다
  • 원자량은 자연에 존재하는 그 원소의 동위원소들을 존재비로 가중평균한 값이라 대부분 소수점으로 나온다
  • 염소의 원자량 35.45는 염소-35(약 75.76%)와 염소-37(약 24.24%)의 가중평균이며, 이 값을 그대로 갖는 개별 원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 핵종을 구분할 때는 질량수(정수)를, 실제 시료·연료의 양을 계산할 때는 원자량(가중평균)을 쓴다
  • 우라늄 농축은 존재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작업이라, 농축 연료의 실제 원자량은 주기율표의 천연값(238.03)과 다시 계산해야 하는 별개의 숫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