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실에 붙어있는 주기율표를 자세히 들여다본 적 있으신가요? 원소 이름 밑에 작게 적힌 숫자를 보면 수소는 1.008, 염소는 35.45, 구리는 63.55... 다들 어정쩡한 소수점입니다. 정수로 딱 떨어지는 원소가 오히려 드물 정도예요.
이상하지 않나요?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레고 블록처럼 정수 개수로 뭉쳐서 만들어지는 물건인데, 왜 그 "무게" 값은 하나같이 애매한 소수점으로 나오는 걸까요. 인쇄 오차일까요, 아니면 반올림을 대충 한 걸까요?
정답은 둘 다 아닙니다. 이 소수점 안에는 원자력공학의 아주 기초적인 계산 습관 하나가 숨어 있거든요. 오늘은 "질량수"와 "원자량"이라는, 자주 같은 말처럼 쓰이지만 실은 전혀 다른 두 숫자의 정체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반 평균 몸무게는 왜 76kg도 74kg도 아닐까
이야기를 잠깐 학교 교실로 옮겨볼게요. 어느 반에 학생이 100명 있는데, 이 중 76명은 몸무게가 정확히 35kg이고 나머지 24명은 정확히 37kg이라고 해봅시다. (숫자를 일부러 이렇게 잡은 이유는 뒤에서 밝혀집니다.)
이 반의 "평균 몸무게"는 얼마일까요? 35kg과 37kg의 한가운데인 36kg일까요? 아닙니다. 76명이나 되는 다수가 35kg 쪽에 몰려 있으니, 평균은 36kg보다 35kg 쪽으로 더 기울어야 정상이죠. 실제로 계산해보면,
0.76 × 35 + 0.24 × 37 = 26.6 + 8.88 = 35.48
이 됩니다. 인원수 비율(존재 비율)로 가중치를 준 평균, 즉 가중평균인 거예요. 그런데 재밌는 건, 이 반에 실제로 몸무게 35.48kg인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학생은 전부 35kg 아니면 37kg, 딱 두 가지 값 중 하나만 갖거든요. 35.48이라는 숫자는 "그 반 전체를 대표하는 통계값"이지, 어느 한 개인의 몸무게가 아닙니다.
원자량이 정확히 이런 구조로 만들어집니다.
질량수는 출석부 번호, 원자량은 반 평균
앞선 글(004편)에서 다룬 것처럼, 같은 원소라도 중성자 개수가 달라 질량이 서로 다른 형제들이 있는데 이를 동위원소라고 부릅니다. 이 글에서는 그 동위원소들이 "왜" 존재하는지는 다시 설명하지 않고, 대신 "이 동위원소들이 섞여 있다"는 사실 하나로부터 오늘의 주인공인 두 숫자를 구분해보겠습니다.
질량수(mass number, A): 특정 동위원소 하나가 가진 양성자와 중성자를 합친 개수입니다. 예를 들어 염소-35는 양성자 17개 + 중성자 18개로 A=35, 염소-37은 양성자 17개 + 중성자 20개로 A=37입니다. 개수를 세는 값이니 항상 정수입니다. 반 학생으로 치면 "출석부 번호"처럼 딱 떨어지는 값이에요.
원자량(atomic weight): 주기율표에 실리는 값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그 원소의 동위원소들을 실제 존재하는 비율(존재비)만큼 가중평균한 질량입니다. 반 학생 전체의 "평균 몸무게"에 해당하죠. 여러 정수(또는 정수에 가까운 값)를 섞어 평균 냈으니, 결과가 정수로 딱 떨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을 게 있습니다. 사실 질량수(정수)와 그 동위원소의 실제 측정 질량(원자질량, 단위는 u)도 완벽히 같은 값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산소-16의 실제 질량은 정확히 16.000이 아니라 15.9949u입니다. 핵자들이 뭉칠 때 결합에너지만큼 질량이 아주 살짝 줄어들기 때문인데(질량결손, 001편 참고), 그 차이는 1%도 안 될 만큼 작아서 이번 글에서는 편의상 "정수에 아주 가까운 값"으로 취급하겠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그보다 훨씬 큰 격차, 즉 "정수인 질량수" 대 "소수점인 원자량"의 차이니까요.
염소로 직접 검산해보기 — 35.45의 정체
자,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염소의 원자량은 왜 35.45일까요?
자연에 존재하는 염소는 두 가지 동위원소가 섞여 있습니다. 질량수 35인 염소-35(존재비 약 75.76%)와 질량수 37인 염소-37(존재비 약 24.24%)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게 바로 위에서 반 학생 비유에 썼던 그 숫자입니다.
정확한 원자질량 값(각각 34.9689u, 36.9659u)으로 계산하면,
0.7576 × 34.9689 + 0.2424 × 36.9659 ≈ 35.45
주기율표에 적힌 그 숫자, 35.45가 그대로 나옵니다. 자연에서 염소 원자를 아무거나 하나 집으면 그 원자의 질량수는 반드시 35 아니면 37, 정수입니다. 하지만 그런 원자를 수없이 모아 저울에 달고 개수로 나누면, 그 어떤 개별 원자도 갖지 않는 값인 35.45가 튀어나옵니다. 이게 바로 원자량의 정체예요.
참고로 구리(Cu-63 약 69.15%, Cu-65 약 30.85%)는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원자량 63.55가 나오고, 브로민(Br-79 약 50.69%, Br-81 약 49.31%)은 존재비가 거의 정확히 반반이라 원자량이 79.90으로 두 질량수의 한가운데에 거의 걸쳐 있습니다. 반대로 탄소는 탄소-12가 98.93%로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원자량이 12.011로 정수 12에 바짝 붙어 있고요. 섞인 비율이 원자량의 "생김새"를 결정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게 원자로 설계랑 무슨 상관일까
"어차피 소수점 몇 자리 차이인데 뭐가 중요하냐"고 물으신다면, 원자력공학에서는 이 구분이 실제 계산에 그대로 들어갑니다.
첫째, 핵종을 지목할 때는 반드시 질량수를 씁니다. 우라늄-235는 핵분열을 잘 일으키는 핵종이고, 우라늄-238은 그렇지 않은 핵종입니다. 둘 다 "우라늄"이지만 원자로 설계자에게는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여기서 쓰는 숫자는 언제나 정수인 질량수(235, 238)입니다. "우라늄의 원자량인 238.03"으로는 애초에 이 둘을 구분할 방법이 없어요.
둘째, 원자량은 정반대로, 실제 시료 전체를 다룰 때 씁니다. 자연 상태 우라늄은 우라늄-238이 약 99.27%, 우라늄-235가 약 0.72%, 우라늄-234가 약 0.0055% 섞여 있고, 이걸 가중평균하면 천연 우라늄의 원자량은 약 238.03이 됩니다.
그런데 원자로 연료로 쓰려고 우라늄을 "농축"한다는 게 뭘까요? 바로 이 존재비를 인위적으로 바꿔서, 핵분열을 잘 일으키는 우라늄-235의 비율을 자연 상태의 0.72%보다 훨씬 높이는(경수로용은 보통 3~5% 수준) 작업입니다. 존재비가 달라졌으니, 그 농축 연료의 실제 평균 원자량도 자연 우라늄의 238.03과는 미세하게 달라집니다. 즉 주기율표에 박제된 238.03이라는 숫자는 어디까지나 "자연 그대로 캐낸 우라늄"의 평균값일 뿐, 실제 원자로에 들어가는 연료의 원자량은 그 연료의 진짜 동위원소 배합에 맞춰 매번 다시 계산해야 하는 값입니다. 이 원자량은 연료 질량으로부터 "원자가 몇 개 들어있나(원자수밀도)"를 환산할 때 그대로 쓰이고, 이 원자수밀도가 다시 중성자가 핵과 반응할 확률(단면적 계산)의 기초가 되니, 결국 원자로 노심 설계 전체가 이 숫자 하나에서 출발하는 셈입니다.
오늘의 한 줄 정리
질량수(A)는 특정 핵종 하나가 가진 양성자+중성자 개수로, 정의상 항상 정수다
원자량은 자연에 존재하는 그 원소의 동위원소들을 존재비로 가중평균한 값이라 대부분 소수점으로 나온다
염소의 원자량 35.45는 염소-35(약 75.76%)와 염소-37(약 24.24%)의 가중평균이며, 이 값을 그대로 갖는 개별 원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핵종을 구분할 때는 질량수(정수)를, 실제 시료·연료의 양을 계산할 때는 원자량(가중평균)을 쓴다
우라늄 농축은 존재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작업이라, 농축 연료의 실제 원자량은 주기율표의 천연값(238.03)과 다시 계산해야 하는 별개의 숫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