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을 일부러 채우는 레시피, 거품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 레시피 — 공극계수는 왜 원자로형마다 다를까

2026. 7. 13. 10:30원자력 이야기/005. 원자로 동특성과 반응도

앞서 살펴본 탄산음료 기포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냉각재가 국소적으로 끓어 기포(보이드)가 생기면 그 자리의 밀도가 확 낮아지고, 그 급격한 밀도 변화가 중성자를 느리게 만드는 능력을 바꿔 반응도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부러 남겨둔 질문이 하나 있었죠. "그래서 그 반응도 변화, 정확히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크게 일어나나요?"

사실 이 질문의 답은 원자로마다 다릅니다. 같은 "기포가 생겼다"는 상황인데도, 어떤 원자로는 이걸 철저히 피해야 할 예외 상황으로 취급하고, 어떤 원자로는 아예 정상 운전의 일부로 끌어안고 심지어 조작 손잡이로 씁니다. 오늘은 이 차이 — 공극계수(void coefficient)가 원자로형마다 왜 다르게 나타나는가 — 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바 한쪽 끝에서는 거품 가득, 다른 쪽 끝에서는 거품 한 방울도 없이

노련한 바텐더 한 명이 카운터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 사람은 지금 두 잔을 동시에 만들고 있습니다. 왼쪽 잔은 애초에 레시피 자체가 "거품이 풍성하게 올라와야 완성"인 음료입니다. 탄산을 넉넉히 넣고, 잔 안에서 기포가 계속 보글보글 올라오는 상태 그대로 손님에게 냅니다. 반면 오른쪽 잔은 정반대입니다. 레시피 자체가 "거품이 전혀 없이 맑고 투명해야 완성"인 음료라, 바텐더는 거품이 조금이라도 올라오지 않도록 재료와 온도, 따르는 방식까지 신경 씁니다.

같은 바텐더, 같은 카운터, 같은 순간인데도 완성해야 할 결과물이 정반대인 거예요. 이게 바로 오늘 이야기할 두 원자로형의 차이와 꼭 닮았습니다. 왼쪽 잔의 레시피가 비등경수로(BWR), 오른쪽 잔의 레시피가 가압경수로(PWR)입니다.

BWR은 애초에 냉각재가 노심을 지나며 실제로 끓어서, 그 증기 자체가 터빈을 돌립니다. 그러니 정상적으로 운전되는 순간에도 노심 안에는 상당한 보이드(기포)가 늘 존재합니다. 노심 아래쪽은 아직 끓지 않은 액체에 가깝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보이드율이 계속 커지고, 노심 전체 평균으로도 보이드율이 40%대에 이르며 노심 상단 부근은 이보다 훨씬 높습니다.

반면 PWR은 1차 계통을 아주 높은 압력으로 유지해서, 냉각재가 노심을 통과하는 동안 전체적으로 끓지 않고 액체 상태(과냉각 상태)를 유지하도록 설계·운전됩니다. 연료봉 표면 아주 가까이에서 극히 국소적인 비등이 일부 있을 수는 있지만, 냉각재 전체가 대량으로 끓어 상당한 보이드율을 이루는 일은 정상운전 범위에서는 원칙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굳이 이렇게 다른 레시피를 짜는 걸까 — "감속재 비율"이라는 밑재료

두 레시피가 이렇게 다른데도, 사실 밑바탕에 깔린 원칙 하나는 똑같습니다. 노심 안에서 중성자를 얼마나 잘 느리게 만드는가(감속 능력)는 감속재(물)와 핵연료의 상대적인 양, 즉 "감속재 대 연료 비율"에 좌우됩니다. 이 비율을 계속 늘리다 보면 핵분열 연쇄반응을 가장 활발하게 유지할 수 있는 "최적 감속" 지점이 있는데, 상용 원자로는 PWR이든 BWR이든 이 최적점보다 감속재가 살짝 부족한 쪽, 이른바 "언더모더레이션(under-moderated)" 상태로 설계됩니다.

왜 이렇게 설계할까요? 언더모더레이션 상태에서는 보이드가 생겨 감속재(액체 물)가 줄어드는 일이 곧바로 감속 능력 저하로 이어지고, 그 결과 반응도가 낮아지는 방향(음의 되먹임)으로만 작용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반대로 감속재가 넘치는 "오버모더레이션" 상태였다면, 보이드가 생겨 감속재가 줄어드는 게 오히려 최적점에 가까워지는 효과를 낼 수도 있어서, 자칫 반응도가 높아지는 방향(양의 되먹임)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텐더의 두 레시피 모두 "거품이 생기면 음료가 밍밍해지는 쪽으로만 가야 한다(반응도가 낮아져야 한다)"는 대원칙은 공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그 대원칙 위에서 "거품을 아예 레시피의 일부로 쓸 것이냐, 완전히 배제할 것이냐"가 갈리는 거예요.

거품을 손잡이로 쓰는 바텐더 — BWR의 재순환 유량 이야기

여기서부터가 정말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BWR은 이 언더모더레이션 원칙을 "위험 요소를 억누르는 안전장치"로만 쓰지 않고, 아예 출력을 조절하는 손잡이로 적극 활용합니다.

노심을 통과하는 냉각재의 흐름 속도(재순환 유량)를 빠르게 하면, 물이 노심 안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져 같은 열을 받아도 국소적으로 끓는 정도(보이드율)가 줄어듭니다. 보이드율이 줄면 그만큼 감속재(액체 물)가 상대적으로 늘어난 셈이 되어 중성자 감속이 좋아지고, 언더모더레이션 설계 덕분에 반응도가 올라가 출력이 증가합니다. 반대로 유량을 늦추면 보이드율이 늘어 반응도가 낮아지고 출력이 내려갑니다.

제어봉을 움직이지 않고도, 그저 순환 펌프의 속도만 조절해서 출력을 꽤 넓은 범위(대략 정격출력의 60~ 100% 구간)에서 빠르게 오르내리게 할 수 있는 겁니다. 마치 바텐더가 왼쪽 잔의 기포량을 이용해 "지금은 조금 더 청량하게, 지금은 조금 더 진하게" 손님 취향에 맞춰 즉석에서 조절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거품(보이드) 자체가 이 레시피에서는 "완성해야 할 재료"이자 동시에 "조절 손잡이"인 셈이죠.

거품이 없는 게 원칙인 레시피 — PWR은 왜 그런가

반면 오른쪽 잔, PWR의 레시피에서는 거품(보이드)이 조절 손잡이로 쓰일 여지가 아예 없습니다. 정상운전 중에는 보이드율이 거의 0에 가깝게 유지되니까요. 그럼 PWR은 출력을 어떻게 조절할까요? 제어봉의 위치와, 냉각재에 녹여 넣은 붕산(가용성 붕소, 중성자를 흡수하는 화학 물질) 농도를 조절하는 방식을 씁니다.

그렇다면 PWR에서 공극계수는 아무 쓸모가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공극계수는 "정상 운전에서 매일 조작하는 손잡이"는 아니지만, 냉각재 상실사고처럼 노심이 예기치 않게 급격히 보이드화될 수 있는 이례적 상황을 미리 검토하는 안전해석용 설계 파라미터로서 여전히 매우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바텐더가 오른쪽 잔에서 거품이 절대 나오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과 비슷합니다 — 거품을 매일 쓸 일은 없지만, "혹시라도 거품이 생긴다면 이 레시피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미리 확인해 둬야 하니까요.

레시피에 몰래 들어가는 재료, 붕산 — PWR만의 변수

PWR의 레시피에는 BWR에는 없는 재료가 하나 더 들어갑니다. 바로 붕산입니다. PWR은 냉각재(=감속재)에 붕산을 녹여 흡수체 역할을 하는 붕소의 농도를 조절함으로써 노심 전체의 반응도를 화학적으로 제어합니다. 그런데 이 붕산은 냉각재라는 매질 안에 녹아 있는 상태라, 보이드가 생겨 그 자리의 냉각재(=액체 물)가 줄어들면 그 안에 녹아 있던 붕산(흡수체)도 함께 밀려납니다.

흡수체가 줄어드는 건 중성자가 덜 흡수된다는 뜻이니, 반응도를 높이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즉 언더모더레이션에 의한 "반응도를 낮추는 효과"와, 붕산이 밀려나는 "반응도를 높이는 효과"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겹치는 겁니다. 그래서 붕산 농도가 높을수록(전형적으로 노심 수명 초기, 새 연료를 많이 채웠을 때) 공극계수는 상대적으로 덜 음수 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입니다.

BWR은 정상운전 중 냉각재에 가용성 붕소를 아예 쓰지 않으니(대신 제어봉과 재순환 유량으로 조절합니다), 이 상쇄 효과 자체가 BWR의 공극계수 계산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른쪽 잔의 레시피에만 들어가는 숨은 재료가, 그 레시피의 민감도를 살짝 다르게 만드는 셈입니다. 그래서 PWR의 운전기술기준에는 붕산 농도가 특히 높아지는 시기(노심수명 초기 등)에 반응도계수들이 안전요건을 벗어나지 않도록 붕산 농도 상한 같은 관리 항목이 함께 따라붙습니다.

두 레시피를 그래프 하나에 얹어보면

말로만 설명하면 "그래서 얼마나 다르다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 개념적으로 그려보면, 보이드율이 늘어날수록 반응도가 어느 방향으로, 어떤 기울기로 움직이는지를 두 원자로형이 서로 다른 곡선으로 보여줍니다. 둘 다 전체적으로는 "보이드율이 늘면 반응도가 낮아지는" 음의 방향을 향하지만, BWR은 원래 보이드가 상당히 존재하는 넓은 구간 전체에서 이 음의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검증되는 반면, PWR은 애초에 거의 0에 가까운 보이드율 근방에서의 거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여기에 앞서 말한 붕산 효과가 겹쳐 노심 상태에 따라 곡선의 기울기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헷갈리기 쉬운 지점들

공극계수(이 글) vs 냉각재 밀도 변화라는 현상(앞서 다룬 이야기). 앞서 다룬 이야기는 "보이드가 생기면 반응도가 왜, 어떤 경로로 변하는가"라는 메커니즘 자체를 다뤘습니다. 이 글은 그 변화의 방향(부호)과 크기를 나타내는 정식 계수에 이름을 붙이고, 그 계수가 원자로형마다 왜 다른지를 다뤘습니다.

"보이드가 늘면 무조건 위험하다"는 오해. 상용 원자로는 언더모더레이션 설계로 공극계수를 음의 방향으로 유지하는 것이 원칙이며, BWR은 오히려 이 특성을 정상 운전에 적극 활용합니다. "보이드 = 위험"이 아니라 "설계된 대로 관리되는 변수"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PWR은 보이드가 절대 생기지 않는다"는 오해. 정상운전 중 대량의 보이드는 없지만, 극히 국소적인 표면비등은 일부 조건에서 존재할 수 있고, 사고 시나리오에서는 노심이 크게 보이드화될 수 있습니다. "정상운전 중 원칙적으로 없다"는 것과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은 다릅니다.

"BWR의 공극계수는 PWR보다 덜 안전하다"는 오해. 두 원자로형 모두 공극계수를 음의 방향으로 유지하도록 인허가·안전해석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BWR이 정상운전 중 보이드를 활용한다고 해서 안전 여유가 낮다는 뜻은 아니며, 오히려 넓은 보이드율 범위 전체에서 음의 공극계수가 유지되도록 설계 단계에서부터 검증됩니다.

그래서 이게 실제 안전·운전·설계에서 왜 중요한가

공극계수가 음수로 유지되는 것은 원자로가 출력이 과도하게 오르려 할 때 스스로 억제되는 자기안정성의 핵심 요소이며, PWR과 BWR 모두 이 조건이 충족되는지를 인허가 심사에서 검증받습니다. 다만 그 계수를 "일상적으로 쓰는 손잡이"로 삼느냐(BWR의 재순환 유량 제어), "만약을 대비해 확인해 두는 안전 여유"로 삼느냐(PWR의 사고 해석)는 원자로형에 따라 다릅니다.

설계자 입장에서 보면, 노심 설계 단계에서 감속재-연료 비율(언더모더레이션 정도), 붕산 사용 여부와 농도 범위, 정상운전 중 보이드율 범위를 모두 반영해 공극계수가 요구되는 안전 범위 안에 확실히 들어오도록 계산하고 검증합니다. 이는 노심 열수력 설계, 안전해석, 인허가 심사의 기초 입력값 중 하나로 쓰입니다.

자주 하는 오해 두 가지

오해 1. "공극계수는 어느 원자로에서나 같은 값, 같은 방향일 것이다" — 아닙니다. 감속재-연료 비율, 붕산 사용 여부, 정상운전 중 보이드 존재 정도가 원자로형마다 다르기 때문에, 공극계수의 크기와 세부 거동(어떤 조건에서 더 음수가 되는지 등)도 원자로형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오해 2. "BWR은 정상적으로 보이드가 있으니 PWR보다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설계다" — 아닙니다. BWR은 넓은 보이드율 범위 전체에서 공극계수가 음수로 유지되도록 처음부터 설계·검증된 원자로형입니다. 정상운전 중 보이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의 한 줄 정리

  • 공극계수(void coefficient)는 보이드율이 변할 때 반응도가 얼마나, 어느 방향으로 변하는지를 나타내는 계수이며, 그 부호와 크기는 원자로형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 상용 원자로 대부분은 언더모더레이션 설계로 공극계수를 음의 방향으로 유지하는 것을 공통 원칙으로 삼는다
  • BWR은 정상운전 자체가 상당한 보이드가 존재하는 상태이며, 재순환 유량 조절로 이 공극 반응도를 출력 제어(부하추종)에 능동적으로 활용한다
  • PWR은 정상운전 중 보이드율이 거의 0으로 유지되고, 공극계수는 정상 제어 수단이 아니라 사고 시나리오에 대비한 안전해석용 설계 파라미터로 다뤄진다
  • PWR에는 붕산(가용성 붕소) 농도에 따라 공극계수가 상쇄되는 추가 변수가 있고, BWR에는 이 변수가 없다 — 이것이 두 원자로형의 공극계수가 다르게 "관리되는" 대표적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