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된 규칙으로 미래 원자로를 심사할 수 있는가 — Part 53과 SMR 시대의 규제

2026. 5. 29. 03:07원자력 뉴스

원자력 규제는 원전이 존재하기 시작한 때부터 만들어졌습니다. 미국의 경우, 기존 규제 체계의 핵심인 10 CFR Part 50은 1950년대 설계 이후로 쌓여온 대형 경수로(물을 냉각재로 쓰는 원자로) 중심의 규칙입니다. 이 체계가 소형모듈원전(SMR), 고온가스로, 용융염 원자로 같은 전혀 다른 기술에도 적합할까요? 미국 NRC가 추진 중인 Part 53이 이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입니다.

Part 50의 한계 — 대형 경수로를 위한 규칙

10 CFR Part 50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쌓인 규제 요건과 지침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경수로의 설계 특성, 사고 시나리오, 안전 계통의 작동 방식을 전제로 만들어진 규칙입니다. SMR이나 비경수로를 심사하려면 이 전제들이 맞지 않는 경우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일부 SMR은 물 대신 용융염이나 액체 금속을 냉각재로 씁니다. 자연 대류로만 열을 제거하는 피동 안전 계통을 갖춰, 전원이 끊겨도 사고를 막을 수 있도록 설계됩니다. 이런 원자로에 대형 경수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이 원자로가 본질적으로 더 안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수로 방식의 능동 안전 계통을 요구하는 모순이 생길 수 있습니다. 기술이 안전성을 높였는데, 규제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Part 53 — 기술포괄적 인허가 체계를 향해

미국 NRC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 CFR Part 53 규정 개발을 추진해 왔습니다. 핵심 방향은 기술포괄성(technology-inclusive)입니다. 특정 원자로 설계나 냉각재 유형을 전제하지 않고, 안전 기능, 위험도 기여도, 방사선 방출 결과, 성능 기준을 중심으로 어떤 원자로 기술이든 수용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Part 53은 risk-informed(위험도정보 활용)과 performance-based(성능기반)를 동시에 지향합니다. 설계별로 어떤 사건이 위험도에 크게 기여하는지를 PRA(확률론적 위험도 평가)로 파악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안전 기능이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규칙이 특정 기술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달성해야 할 안전 목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ADVANCE Act(2024년)를 통해 NRC의 선진 원자로 인허가 절차 개선을 법으로 뒷받침하는 정책적 흐름이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만이 아니다 — 영국과 캐나다도 바꾸고 있다

규제 지형의 변화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영국은 기존 Nuclear Site Licence와 safety case(안전 논증서) 방식 자체가 기술중립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업자가 특정 설계의 안전성을 논증하면, ONR이 그것이 충분한지를 판단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어떤 원자로 기술이든 원칙적으로 수용 가능합니다. 영국의 GDA(Generic Design Assessment, 포괄 설계 평가) 프로세스는 SMR 설계를 포함해 다양한 원자로를 사전에 심사하는 경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CNSC는 SMR 및 선진 원자로에 대한 사전검토(pre-licensing vendor design review) 절차를 통해 신규 기술이 규제 체계에 들어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graded approach와 licence basis의 유연성이 이 과정에서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규제 지형 변화가 한국에 주는 기회와 과제

규제 체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은 기회이기도 하고 과제이기도 합니다.

기회는 이렇습니다. Part 53처럼 기술포괄적 규제가 자리를 잡으면, 기존 대형 경수로 중심 규제에서 불리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새로운 설계가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한국이 개발 중인 SMR이나 혁신형 원자로 기술이 미국 인허가를 목표로 설계된다면, Part 53의 방향과 맞추는 것이 유리합니다.

과제는 이렇습니다. Part 53이 기술포괄적이라는 것은 동시에, 사업자가 스스로 안전 논리를 구성하고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건이 위험도에 크게 기여하는지를 PRA로 분석하고, 그 결과를 규제 논리로 연결하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규제 기관과 사전에 충분히 소통하면서 인허가 전략을 조율하는 역량도 필요합니다.

규제 준비 없이는 기술 준비도 절반짜리입니다. SMR 개발과 수출을 이야기할 때, 원자로 설계와 함께 어느 나라의 규제 체계에 들어갈 것인지, 그리고 그 체계의 언어를 누가 구사할 것인지를 동시에 준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