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발전소 폐허에 소형 원자로를 짓는다 — 영국 Cottam의 'Repowering' 실험

2026. 6. 25. 00:59원자력 뉴스

폐쇄된 석탄 발전소 부지를 보면서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많은 분들은 오염된 땅, 사라진 일자리, 방치된 굴뚝을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그 자리에 소형 원자로(SMR)를 세우고 AI 데이터센터와 직접 연결하는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낡은 석탄 인프라를 새로운 원자력 인프라로 되살리는 이 모델이, 왜 지금 원전 르네상스의 새 패턴으로 주목받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영국 Cottam 부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2026년 6월 23일, 미국의 원자력 기업 Holtec International과 세계 최대 원자력 운영사인 EDF가 영국 정부에 중요한 제안서를 제출했습니다. 영국 노팅엄셔 주에 위치한 Cottam 구(舊) 석탄 화력발전소 부지에 Holtec의 SMR-300 소형 원자로를 최대 4기까지 배치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두 회사는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합작법인(JV) 설립 예비 합의서(Heads of Terms, HoT)도 함께 서명했습니다.

Cottam은 원래 영국 내에서도 대표적인 대형 석탄 발전소가 있던 곳으로, '메가와트 밸리(Megawatt Valley)'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산업적으로 중요한 역사를 가진 부지입니다. SMR-300 4기가 모두 완공되면 약 1.3GW의 전력을 생산하게 됩니다. 이 전력은 일반 전력망에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Trent Valley Supercluster' AI 성장 지역으로 지정을 신청한 전용 데이터센터 단지에 직접 공급하는 방식을 목표로 합니다.

이 프로젝트가 영국 정부의 '어드밴스드 원자력 프레임워크(Advanced Nuclear Framework)'라는 간소화된 인허 경로를 활용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기존의 복잡한 원자력 규제 절차를 상업적 개발에 맞게 효율화한 이 제도 덕분에, 민간 자본만으로도 프로젝트 추진이 가능해집니다.


왜 하필 석탄 발전소 폐부지인가 — Repowering의 논리

새 원자력 발전소를 지으려면 부지 선정이 가장 큰 장벽 중 하나입니다. 대규모 전력 생산 시설이 들어서려면 대용량 전력 계통(그리드) 연결, 냉각수 공급, 충분한 부지 면적, 지역 사회의 수용성 등 수많은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석탄 발전소 폐부지는 이 조건들을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대형 발전소를 운영하면서 쌓인 인프라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전력 계통 연결 인프라, 냉각수 공급 시설, 산업용 부지, 숙련된 지역 노동력, 그리고 무엇보다 '이 땅은 발전소 부지'라는 지역 사회의 수용 역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Repowering(리파워링)' — 기존 발전 인프라를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환하여 되살린다는 개념 — 의 핵심 논리입니다. 처음부터 새 부지를 개발하는 것보다 시간적, 비용적, 사회적 비용이 모두 줄어듭니다.

Holtec 측은 미국에서 먼저 실증한 SMR-300의 성과를 영국 프로젝트에 그대로 적용하는 '두 번째 배치(second-of-a-kind)' 전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처음 짓는 첫 번째 원자로는 많은 불확실성이 따르지만, 같은 설계를 두 번째부터 배치할 때는 건설 경험과 공급망이 이미 갖추어져 있어 비용과 일정이 크게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규제 측면에서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Holtec SMR-300은 2026년 3월 영국 규제 당국의 일반설계평가(Generic Design Assessment, GDA) 2단계를 통과했습니다. GDA는 원자로 설계 자체의 안전성을 미리 평가해 두는 절차로, 개별 부지에 대한 건설 허가와는 별개로 진행됩니다. 이 관문을 넘었다는 것은 영국에서의 인허 경로가 상당 부분 정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SMR을 데이터센터에 '직결'한다는 것의 의미

이 프로젝트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전력 직결 구조입니다. 생산된 전력을 일반 전력망(그리드)에 넣지 않고 특정 수요처인 데이터센터에 직접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왜 이런 구조를 선택할까요?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365일 끊임없이 안정적인 대용량 전력이 필요합니다.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날씨에 따라 출력이 들쑥날쑥한 에너지원으로는 이 수요를 온전히 충족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원자력 발전소는 연료를 한번 장전하면 수개월간 거의 일정한 출력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이른바 '기저부하(base load)' 전원입니다. 발전소가 생산한 전력이 불특정 다수에게 팔리는 구조가 아니라 단일 고객에게 장기 계약으로 확실하게 공급되니, 사업적 수익 안정성도 높아집니다.

이미 비슷한 구조는 미국에서도 확인됩니다. "데이터센터 전력망 SMR 직결 모델은 미국의 Microsoft-TMI 원전 재가동 사례와 유사한 트렌드를 영국에서도 확인시켜 준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AI 연산 수요 폭증이 원자력 발전소의 새 고객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영국 Cottam 모델은 이 흐름을 한 단계 더 진화시킨 것입니다 — 기존 원전을 재가동하는 것을 넘어, 폐탄소 부지 위에 소형 원자로를 새로 건설하면서 처음부터 데이터센터 전용 전원으로 기획하는 방식입니다.

"Holtec-EDF 공동 제안서 제출은 영국 Hinkley Point C 이후 민간 주도 핵에너지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주목받는 사례다." 

 


이 모델이 '원전 르네상스의 새 패턴'이 된 이유

Cottam 프로젝트가 하나의 고립된 사례가 아닌, 새로운 패턴의 출발점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부지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적 답입니다. 세계 곳곳에 수십 년간 운영되다 문을 닫은 석탄 발전소가 수백 곳에 달합니다. 이 부지들은 대부분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탈탄소화 흐름 속에서 새 용도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작아서 이런 부지에 들어서기에 적합합니다.

둘째, 민간 자본이 주도하는 구조입니다. Cottam 프로젝트는 영국 정부의 지분 참여 없이 EDF와 Holtec의 민간 합작으로 추진됩니다. 국가 예산으로 짓는 대형 원전이 아니라, 수익성이 보장된 수요처(데이터센터)를 확보하고 민간이 투자를 이끄는 방식입니다. 이는 2010년대 이후 유럽에서 대형 원전 건설이 비용 초과와 일정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역사에 대한 현실적 대안이기도 합니다.

셋째, 국제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는 흐름입니다. 미국에서는 오하이오 주 Elementl Power가 석탄 부지(Meigs County)에 BWRX-300 SMR을 배치하는 1.5GW 프로젝트를 2026년 6월 발표했습니다. 캐나다, 영국, 미국이 거의 동시에 유사한 구조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은 특정 국가의 실험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 시대의 원자력이 찾아낸 하나의 새로운 진입 경로입니다.


마무리

석탄을 태우던 굴뚝이 있던 자리에서 이제는 원자로가 AI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장면 — 이것이 현재 진행형인 에너지 전환의 실제 모습입니다. Repowering 모델이 얼마나 빠르게 현실화될지는 Holtec-EDF의 합작법인이 정식 계약으로 전환되는 시점, 그리고 영국 정부의 'Great British Energy' 지원 여부가 결정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