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inghouse의 독점이 끝난다 — 미국 원전 시장이 열리는 날

2026. 6. 26. 03:44원자력 뉴스

미국에서 대형 원전을 짓고 싶다면 선택지가 얼마나 될까요? 사실상 하나입니다. Westinghouse의 AP1000. 수십 년간 이 구도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26년 6월 24일, 캐나다 기업 AtkinsRéalis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한 장의 서류를 제출하면서 그 구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AP1000 하나로 400GW를 채울 수 있을까

트럼프 행정부는 2050년까지 미국의 원전 설비 용량을 4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약 400GW에 달하는 신규 원전을 추가한다는 계획입니다. 현재 미국 전체 원전 설비 용량이 약 100GW 수준임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미국 원전 생태계를 통째로 다시 짓는 규모입니다.

문제는 공급망입니다. AP1000은 우수한 설계이지만, Westinghouse 단독 공급망이 이 물량을 감당하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습니다. 원전 건설에는 특수 단조 부품, 숙련된 용접 인력, 장기 공급 계약이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을 한 회사가 수십 년에 걸쳐 공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KEPCO, 프랑스의 EDF 등 외국 벤더와 협의를 시작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AtkinsRéalis의 NRC 접촉은 이 맥락에서 읽혀야 합니다. 단순히 캐나다 기업이 미국 시장을 노크한 사건이 아니라, 미국이 스스로 공급망 다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시점에 새로운 선택지가 등장한 것입니다.


CANDU란 무엇인가 — 농축 우라늄이 필요 없는 원자로

Enhanced CANDU 6(EC6)는 730MW급 가압중수로(PHWR)입니다. 가압중수로란 일반 경수(H₂O) 대신 중수(D₂O, 무거운 물)를 냉각재이자 감속재로 사용하는 원자로입니다. 이 차이가 CANDU 특유의 강점을 만듭니다.

경수로(AP1000 포함)는 중성자를 효율적으로 흡수하는 경수를 쓰기 때문에, 연쇄반응을 유지하려면 우라늄 농도를 인위적으로 높인 '농축 우라늄'이 필요합니다. 반면 CANDU는 중성자 흡수율이 훨씬 낮은 중수를 사용하므로, 농축하지 않은 천연 우라늄 그대로 연료로 쓸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은 농축 우라늄의 약 3분의 2를 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EC6가 천연 우라늄 연료로 운전된다는 사실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미국에 상당한 의미를 가집니다. 외국산 농축 우라늄 없이도 원전을 돌릴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기는 셈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온라인 리퓨얼링(online refuelling)', 즉 운전 중 핵연료 교체입니다. 경수로는 핵연료 교체를 위해 원자로를 정지해야 합니다. 통상 18개월에 한 번, 약 4~6주 동안 발전을 멈춥니다. CANDU는 이 과정을 운전 중에 수행할 수 있어, 계획 예방 정비 시에도 발전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설비 이용률 측면에서 경쟁력 있는 수치입니다.

AtkinsRéalis는 전 세계 34기의 CANDU 원자로를 건설한 실적이 있으며, 누적 약 1,000 원자로-년(reactor-year)의 운전 경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이 아니라, 수십 년의 상업 운전 실적을 가진 기술입니다.


NRC 인허가의 문, 얼마나 빠르게 열릴 수 있나

AtkinsRéalis가 NRC에 제출한 것은 '설계 인허가 의향서(Notice of Intent)'입니다. 본격적인 인허가 신청이 아니라, 앞으로 인허가를 추진하겠다는 공식 통보입니다. 이 단계에서 NRC와 절차, 일정, 제출 서류 범위를 협의합니다.

주목할 것은 인허가 경로입니다. AtkinsRéalis는 NRC의 'Part 53' 절차를 활용할 계획입니다. Part 53은 미국이 원자력 산업의 규제 현대화를 위해 마련한 새로운 인허가 프레임워크로,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EO 14300)은 이 절차를 통한 상업 원전 설계 인증을 18개월 내에 완료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AtkinsRéalis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12개월 인증 완료를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근거는 캐나다 원자력안전위원회(CNSC)에서 이미 EC6에 대한 사전 심사(pre-licensing review)를 완료한 이력입니다. 설계 검토의 상당 부분이 이미 완료된 상태이므로, NRC 심사에서 중복 작업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12개월이 실제로 가능한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NRC 심사는 안전 기준, 지진 하중, 미국 현지 규정 적합성 등 캐나다와 다른 요소들을 새로 검토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려는 정치적 의지와 기업의 사전 준비가 맞물린 상황은, 과거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AtkinsRéalis는 EC6 외에도 925MW급 Monark 원자로를 병행 개발 중입니다. Monark는 기존 CANDU 850을 업그레이드한 모델로, EC6보다 더 큰 출력을 목표로 합니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포트폴리오를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셈입니다.


독점이 끝날 때 시장에 생기는 것

AtkinsRéalis의 NRC 의향서 제출이 곧 EC6의 미국 건설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인허가 획득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고, 인허가 이후에도 실제 계약과 건설까지는 또 다른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이 상징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400GW라는 목표 앞에서, 미국 원전 시장은 더 이상 단일 벤더 체제로는 작동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입니다. KEPCO, EDF, 그리고 이제 AtkinsRéalis까지. 미국이 수십 년간 닫아두었던 대형 원전 시장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습니다.

경쟁이 생기면 시장은 달라집니다. 단일 공급자에 의존할 때는 일정도, 가격도, 기술 방향도 협상 여지가 좁습니다. 복수의 기술과 공급자가 경쟁하는 구조에서는 발주자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각 벤더는 자신의 기술적 강점을 증명해야 합니다. CANDU가 천연 우라늄 연료와 온라인 리퓨얼링으로 AP1000과 다른 가치를 제안하듯, 앞으로의 미국 원전 시장은 기술의 다양성 위에서 설계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원자력의 부활이 한 기업의 독점으로 이어질 때와, 여러 기술이 경합하며 최적의 답을 찾아갈 때 — 어느 쪽이 더 건강한 에너지 미래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