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7. 20:52ㆍ원자력 이야기/002. 핵반응과 핵분열
도끼로 패지도 않았는데 통나무가 쪼개졌다면
장작을 팬다고 생각해보세요. 통나무에 뭔가를 얹거나 붙이면 당연히 더 무겁고 커진 통나무가 될 거라고 기대하겠죠. 그런데 어느 날 실험을 해봤더니, 통나무가 오히려 도끼로 쪼갠 것처럼 거의 똑같은 크기의 장작 두 토막으로 갈라져 있다면 어떨까요? 심지어 도끼를 댄 적도 없는데 말이죠.
1930년대 말, 물리학자들이 실제로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혹스러움이 바로 핵분열이라는 현상을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됐습니다.
다들 "더 무거운 원소"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는 우라늄이라는, 당시 알려진 것 중 가장 무거운 원소에서 시작합니다. 여러 나라의 연구팀은 우라늄에 중성자를 쬐어주면, 우라늄 원자핵이 그 중성자를 삼킨 뒤 붕괴를 거쳐 우라늄보다 더 무거운, 아직 아무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원소가 만들어질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이런 원소를 "초우라늄 원소"라고 불렀죠.
이탈리아의 엔리코 페르미 연구팀은 1934년 무렵 이런 실험을 통해 여러 방사성 물질을 얻었고, 이를 초우라늄 원소로 해석했습니다(이 연구를 포함한 공로로 페르미는 193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마리 퀴리의 딸인 이렌 졸리오퀴리와 동료 파벨 사비치도 비슷한 실험을 하다가, 바륨과 화학적 성질이 아주 비슷한 물질을 얻어냈습니다. 다만 이때까지는 아무도 그 정체를 명확히 짚어내지 못했습니다.
화학자가 정밀하게 들여다보니, 바륨이 나왔습니다
1938년 말, 독일 베를린의 화학자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은 우라늄에 중성자를 쬔 뒤 생성물을 아주 정밀한 화학 분석으로 하나하나 분리해보는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생성물 안에서 화학적으로 명확하게 검출된 건 다름 아닌 바륨이었습니다. 바륨은 원자번호 56번으로, 원자번호 92번인 우라늄보다 훨씬 가볍고, 질량으로 치면 거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원소입니다. 초우라늄 원소는커녕, 정반대로 훨씬 가벼운 원소가 나온 겁니다.

한은 이 화학적 결과 자체는 확신했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랜 연구 동료였던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에게 편지로 이 결과를 알렸습니다.
원자핵도 물방울처럼 쪼개질 수 있습니다
마이트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 물리학자로, 당시 나치의 박해를 피해 스웨덴에 망명해 있었습니다. 한의 편지를 받은 마이트너는 조카이자 물리학자인 오토 프리쉬와 함께 이 결과를 파고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원자핵을 "표면장력을 가진 작은 물방울"처럼 다루는 모형을 이용해, 우라늄 원자핵이 중성자를 흡수하면 물방울이 출렁이다 두 개로 갈라지듯 거의 같은 크기의 두 조각(바륨과 크립톤 등)으로 쪼개질 수 있다는 걸 설명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자핵의 질량 일부가 사라지며 그만큼이 막대한 에너지로 튀어나온다는 계산도 함께 내놓았죠. 두 사람은 이 새로운 현상에 생물학의 세포분열에서 이름을 빌려와 핵분열(nuclear fission)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 해석은 1939년 1월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됐습니다.

발견에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상은 한 사람에게만 갔습니다
1944년 노벨 화학상은 화학적 검출을 담당한 오토 한에게 단독으로 돌아갔습니다. 정작 이 현상을 물리학적으로 해석하고 "핵분열"이라는 이름까지 붙인 리제 마이트너는 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일은 오늘날에도 과학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으로 아쉬운 노벨상 사례로 꼽힙니다. 다만 왜 마이트너가 배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성차별, 망명 과학자라는 정치적 상황, 화학상 심사위원회가 화학적 검출을 이론적 해석보다 우선시했을 가능성 등 여러 요인이 함께 거론될 뿐, 딱 하나의 확정된 이유로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
발견 이후, 세상이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이 소식은 1939년 초 곧바로 전 세계 물리학계에 퍼졌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여러 연구팀이 독립적으로 한 가지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핵분열이 일어날 때 중성자가 더 튀어나온다는 것, 즉 앞서 이야기했던 연쇄반응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이었죠. 이 확인을 계기로 이야기는 원자로와 핵무기라는 두 갈래의 개발로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다만 그 이후의 이야기는 오늘의 범위를 넘어서므로, 여기서는 "발견 자체가 얼마나 예상 밖이었는지"에 집중하려 합니다.
자주 하는 오해 두 가지
오해 1. "핵분열은 처음부터 의도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목표(더 무거운 원소를 만드는 것)로 진행되던 실험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우연히 발견됐습니다. 발견과 그 이후의 활용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해 2. "오토 한이 핵분열을 발견하고 이름도 붙였다" — 정확히는 한과 슈트라스만이 화학적으로 바륨을 검출했고, 그 결과를 "핵분열"이라는 현상으로 해석하고 이름을 붙인 건 마이트너와 프리쉬입니다. 발견에는 화학적 검출과 물리학적 해석이라는 두 단계가 있었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두시면 좋습니다.
오늘의 한 줄 정리
- 1930년대 중반까지 과학자들은 우라늄에 중성자를 쬐면 더 무거운 "초우라늄 원소"가 만들어질 거라 기대했다
- 1938년 말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은 정밀한 화학 분석으로, 예상과 반대로 훨씬 가벼운 바륨이 생성됨을 확인했다
- 리제 마이트너와 오토 프리쉬는 이 결과를 원자핵이 두 조각으로 쪼개지는 현상으로 해석하고, "핵분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1939년 1월, 네이처 발표)
- 1944년 노벨 화학상은 오토 한에게만 수여되었고, 마이트너는 수상하지 못한 것이 과학사의 대표적인 아쉬운 사례로 남아 있다
- 발견 직후 핵분열 시 중성자가 추가로 나온다는 사실(연쇄반응 가능성)이 곧바로 확인되며, 이후 원자로와 핵무기 개발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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