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췄던 원전이 다시 돌아간다 — AI가 만든 새로운 전력 패러다임

2026. 6. 16. 03:08원자력 뉴스

"이미 멈춘 원전을 다시 켠다고요?" 이 말을 처음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실 겁니다. 원자력발전소는 한 번 멈추면 끝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해체 인증을 받은 상업 원전이 다시 가동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동시에 두 군데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시간주의 팰리세이즈(Palisades) 원전과 펜실베이니아주의 크레인 청정에너지센터(옛 TMI-1)입니다. 둘 다 가동을 멈췄던 원전을 다시 살리는 작업이 진행 중이고, 그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가 만들어낸 전력 수요 폭증이 있습니다. 왜 새 원전을 짓는 대신 멈춰 있던 원전을 깨우는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이 흐름이 앞으로의 표준이 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멈춘 원전을 되살리는 일, 왜 가능할까요?

원전을 다시 가동하려면 먼저 멈춰 있던 동안 식어 있던 1차 계통(원자로 냉각수가 순환하는 핵심 배관과 설비 전체)을 운전 온도와 압력까지 다시 끌어올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를 패시베이션(passivation)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오랫동안 멈춰 있던 자동차 엔진을 시동 걸기 전에 예열하고 각종 부품을 점검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팰리세이즈 원전을 운영하는 Holtec International은 2026년 3월 31일, 이 1차 계통 패시베이션을 완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Holtec은 1차 계통 패시베이션(primary system passivation) 완료를 발표하며 계통을 운전 온도·압력으로 최초 가열 성공, 300개 이상 배관·용접부 점검, 주증기발생기 튜브 보수, 주 터빈발전기 복원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300개 이상의 배관과 용접부를 점검하고, 증기를 만들어내는 핵심 설비인 증기발생기의 튜브를 보수하고, 발전기까지 복원했다는 것은 단순히 스위치만 다시 켜는 수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멈춰 있던 5년 넘는 기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부식이나 노화 흔적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대규모 점검 작업인 것입니다.

이제 남은 핵심 관문은 NRC(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GSI-191이라는 안전 현안입니다. 이는 비상노심냉각계통, 즉 사고 시 원자로를 식혀주는 비상 시스템의 성능과 관련된 오래된 미해결 안전 사항입니다. 이 이슈가 해결되어야 NRC가 연료 장전을 승인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로 비유하면, 엔진 예열은 끝났지만 마지막 안전검사 도장을 받아야 시동을 걸 수 있는 상태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펜실베이니아 크레인 원전은 왜 마이크로소프트와 연결될까요?

크레인 청정에너지센터는 더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이 원전을 운영하는 Constellation Energy는 이미 2024년에 마이크로소프트와 20년짜리 PPA(전력구매계약, 발전사가 만든 전기를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구매자에게 장기간 공급하기로 약속하는 계약)를 체결했습니다. 즉, 원전이 아직 가동되기도 전에 전기를 살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NRC는 이미 'Crane Clean Energy Center' 명칭으로 재가동 전담 섹션과 심사팀을 운영 중이며, Constellation은 2024년 착수한 $16억 규모 복원 공사에 3,000명 이상의 건설인력을 투입했다.

 

여기에 2026년 6월 1일, FERC(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는 인근 가스·석유 발전소가 가지고 있던 PJM(미국 동부 전력망을 관리하는 광역 전력시장 운영기관) 용량 접속권을 크레인 원전으로 이전하는 것을 승인했습니다. 전력망에 새로운 발전소를 연결하려면 보통 수년의 대기 줄이 있는데, 이미 있던 접속권을 그대로 옮겨받는 방식으로 이 줄을 건너뛴 셈입니다. 2027년 재가동이라는 목표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행정적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원전의 동시 진행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으로 대량의 전기를 필요로 합니다.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날씨에 따라 출력이 변하는 전원으로는 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원전은 한번 가동되면 1년 내내 거의 같은 출력을 꾸준히 낼 수 있습니다. 새 원전을 짓는 데는 보통 10년 이상이 걸리지만, 이미 있던 설비를 되살리는 작업은 2~3년 단위로 끝날 수 있다는 점이 이 전략의 핵심 매력입니다.

 

신규 건설 대신 재가동,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을까요?

브리프에 따르면 두 프로젝트는 단순한 일회성 사례가 아니라 정책적 흐름의 일부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두 프로젝트의 동시 진행은 미국의 '원전 재가동' 경로가 단일 실험이 아닌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줌 — 성공 시 추가 후보(아이오와 두에인아놀드·뉴저지 오이스터크릭 등)에 대한 재가동 타당성 검토 가속 전망.

 

실제로 미국 에너지부(DOE)는 2027년까지 2.5GW(기가와트, 약 250만 가구가 동시에 쓸 수 있는 전력 규모)의 원전 발전 용량을 복구하겠다는 UPRISE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팰리세이즈와 크레인의 성공 여부가 아이오와의 두에인아놀드, 뉴저지의 오이스터크릭 같은 다른 멈춘 원전들의 재가동 검토에 직접적인 선례가 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다만 이 전략이 만능은 아닙니다. 멈춘 원전을 되살리는 데는 NRC의 안전 심사라는 변수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브리프는 NRC가 인력을 500명 이상 감축한 상황에서 심사 품질과 속도를 동시에 유지하는 것이 업계의 핵심 관심사라고 짚고 있습니다. 즉, 재가동이 신규 건설보다 빠르다는 장점은 분명하지만, 그 속도는 결국 규제기관의 심사 역량에 달려 있다는 한계도 함께 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신규 건설과 재가동은 양립 가능한 선택지로 봐야 합니다. 신규 원전, 특히 SMR(소형모듈원자로, 기존 대형 원전보다 작고 표준화된 설계로 건설 기간과 비용을 줄인 원자로)은 여전히 장기적인 전력 공급 확대의 축입니다. 반면 재가동은 AI 데이터센터가 당장 요구하는 '단기간 내 대량의 무탄소 전력'이라는 수요에 가장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카드입니다. 두 접근이 시간축을 나눠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이야기, 한국과는 무관할까요?

여기서 잠깐, 이 흐름이 한국과 전혀 별개의 이야기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상업 원전의 영구정지 후 재가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AI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 증가라는 근본 원인은 한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전력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때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대상이 반드시 '새로 짓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던 자산, 이미 확보된 부지와 인프라를 어떻게 다시 활용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접근입니다. 한국의 에너지 정책 논의에서도 이런 시각이 하나의 선택지로 놓일 수 있는지는, 앞으로 미국의 두 재가동 프로젝트가 어떤 결과를 내는지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질 것입니다.

멈춰 있던 원전이 다시 돌아간다는 소식을 단순한 미국 내 이슈로 흘려보내기보다는, 전력 수요와 공급을 둘러싼 새로운 셈법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셔도 좋겠습니다. 다음에 비슷한 뉴스를 접하실 때는, '이게 가능한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실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