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6. 03:00ㆍ원자력 뉴스
"원전은 멀리, 도심에서 떨어진 해안가에 있어야 한다." 많은 분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이 전제가, 사실은 특정 원자로 기술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최근 영국의 롤스로이스(Rolls-Royce), 영국국립핵연구소(UKNNL),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JAEA)가 손을 잡고 발표한 새로운 원자로 협력 소식은 "원전은 산업단지 안에, 공장 바로 옆에 세울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왜 지금 이 협력이 AI 데이터센터부터 제철소까지 광범위한 산업계의 관심을 받는지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경수로 SMR과는 다른 길, HTGR이란 무엇인가요?
2026년 6월 14일, 영국 다우닝가 10호(총리 관저)에서 롤스로이스, UKNNL, JAEA 세 기관이 고온가스로(HTGR, High Temperature Gas-cooled Reactor) 기반의 첨단모듈원자로(AMR, Advanced Modular Reactor) 공동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 두 건에 서명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요즘 자주 들리는 SMR(소형모듈원자로)과 이번 HTGR AMR은 어떻게 다를까요. 그동안 화제가 됐던 SMR은 대부분 기존 대형 원전과 같은 원리, 즉 물을 냉각제로 쓰는 경수로(PWR) 방식을 소형화한 것입니다. 반면 HTGR은 냉각제로 물이 아닌 헬륨 가스를 사용하고, 운전 온도도 700°C 이상으로 훨씬 높습니다. 같은 '원자로'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작동 원리와 활용 분야는 완전히 다른 별도의 기술 계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번에 협력 대상이 된 롤스로이스의 AMR은 15~ 35MWe(메가와트) 규모입니다. 일반 대형 원전 1기가 1,000~1,400MWe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형 원전의 30분의 1에서 100분의 1 수준의 작은 원자로입니다. 다만 핵심은 출력 크기가 아니라 '700°C 이상의 고온 열을 직접 공급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 경수로는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그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만 생산하는 것이 주된 역할입니다. 하지만 HTGR이 만들어내는 고온의 열은 전기 생산뿐 아니라 산업 공정에 필요한 '열' 그 자체로 바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번 협력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코팅입자연료(CPF, Coated Particle Fuel)입니다. 이는 손톱보다도 훨씬 작은 구형 연료 입자를 여러 겹의 보호막으로 감싸는 방식으로, TRISO 계열 연료의 한 종류입니다. JAEA가 보유한 세계적 수준의 연료 기술과 롤스로이스의 산업화 역량을 결합해, 2030년대 중반 실증로 건설을 목표로 한다고 합니다.

왜 '도심·산업단지 직결형'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걸까요?
원전 위치를 둘러싼 가장 큰 불안 요인은 결국 사고에 대한 우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HTGR AMR을 두고 사용된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context.json 소스에 따르면, 이 원자로는 "설계상 용융·폭주 원천 불가('멜트다운 프루프')"여서 "도심 인근 또는 산업단지에 직접 입지 가능"하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풀어보겠습니다. 기존 대형 경수로는 노심(핵분열이 일어나는 연료 다발 부분)의 출력 밀도가 매우 높아서, 비상시 냉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노심이 과열되어 녹아내릴 가능성을 설계상 고려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다중의 냉각 시스템과 격납건물 등 여러 겹의 안전 설비가 필요하고, 이런 설비들을 갖춘 부지를 확보하려면 자연스럽게 인구 밀집 지역과는 거리를 두게 됩니다.
반면 HTGR AMR처럼 출력이 작고 코팅입자연료를 사용하는 원자로는 노심의 열 밀도 자체가 낮고, 연료 입자 하나하나가 고온에도 핵분열 생성물을 가두는 다층 보호막을 갖추고 있습니다. 출력이 작다는 것은 사고가 나더라도 발생할 수 있는 열의 절대량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뜻이고, 이 열을 별도의 동력 없이 자연적인 공기 순환만으로도 안전하게 식힐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노심 용융이 원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설계'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고, 이것이 곧 산업단지나 도심 인근 입지의 근거가 됩니다.
물론 이는 해당 설계의 안전 특성을 설명하는 것이며, 실제 입지 허가는 각국의 규제 심사를 거쳐야 확정됩니다. 다만 기존 대형 원전과는 입지 논리 자체가 다르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AI 데이터센터·그린수소·제철 산업이 이 협력에 주목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지금 이 협력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난 해법'으로까지 언급되는 걸까요. 핵심은 두 가지, 전기를 보내는 방식과 산업 공정의 열 수요입니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기존 전력망(grid) 인프라가 따라가기 어려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형 원전은 전력을 생산한 뒤 송전망을 통해 멀리 떨어진 수요지까지 보내야 하는데, 송전망 자체를 새로 짓는 데는 수년에서 길게는 십수 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반면 출력이 작고 안전성 특성상 산업단지 인근에 직접 지을 수 있는 AMR이라면, 데이터센터나 산업 시설 바로 옆에서 전력을 공급하는 '직결형' 모델이 가능해집니다. 송전망 확충이라는 가장 큰 시간 변수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핵심 매력입니다.
또 하나는 그린수소와 제철, 화학·시멘트 산업의 '열' 수요입니다. 이 산업들은 단순히 전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화학 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고온의 열 자체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그린수소는 물을 전기와 열로 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공정인데, HTGR이 공급하는 700°C 이상의 고온 열은 이 공정의 효율을 높이는 데 직접 활용될 수 있습니다. context.json 소스는 이러한 고온 열 공급이 "철강 생산, 그린수소 제조, 시멘트·화학 공정에 활용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HTGR AMR은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를 넘어, 공장의 보일러나 열원을 대체하는 산업용 열 공급 설비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갖는 셈입니다.
이번 협력의 배경에도 이런 수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LNG(액화천연가스) 수입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친원자력 정책을 추진하는 현 정부 하에 영국과의 원자력 기술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영국 역시 자국의 핵 규제 특별팀이 핵기술을 "경제성장·에너지안보·국방의 핵심"으로 지정한 가운데, 기존에 추진 중인 경수로 SMR(웨일스 앵글시 부지에 3기 배치 예정)과는 별도로 HTGR AMR이라는 두 번째 기술 트랙을 동시에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을 펴고 있습니다.
시장의 반응도 즉각적이었습니다. 이번 MOU 발표 당일, 롤스로이스 홀딩스(LSE: RR.) 주가는 5.5% 급등하며 연중 최고치에 근접했다고 합니다. 이는 경수로 SMR 사업에 더해 산업용 고온 열 공급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추가로 개척하려는 전략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던지는 질문
이번 영국-일본 협력을 한국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단순히 '먼 나라 이야기'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 역시 반도체 클러스터, 데이터센터, 철강·화학 산업이라는 고밀도 전력·열 수요 산업을 다수 보유한 국가입니다. 동시에 같은 소스에서 다뤄진 또 다른 소식, 즉 롤스로이스의 경수로 SMR 프로젝트가 핵심 부품을 한국 기업에 아웃소싱하는 방안을 두고 영국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는 한국의 원전 제조 역량이 글로벌 SMR·AMR 공급망에서 이미 핵심 부품 공급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HTGR AMR이 2030년대 중반 실증로라는 목표를 향해 어떻게 진행될지, 그리고 이 '공장 직결형' 원자력 모델이 실제로 도심·산업단지 인근에서 규제 승인을 받아낼 수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원자력을 둘러싼 질문이 더 이상 "안전한가, 위험한가"라는 이분법에 머무르지 않고, "어떤 산업에 어떤 형태로 연결될 것인가"라는 보다 구체적인 질문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음에 원자력 관련 뉴스를 접하실 때, 그 원자로가 어떤 냉각 방식을 쓰고 어떤 산업과 연결되어 있는지 한 번 더 살펴보신다면, 같은 뉴스도 다르게 읽히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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