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핵폐기물 영구 처분장, 핀란드 Onkalo가 열린다

2026. 6. 17. 00:11원자력 뉴스

원자력 발전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남습니다. 반감기(방사성 물질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가 수만 년에 이르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입니다. "전기는 쓰고 싶은데, 그 찌꺼기는 어떻게 하나?"라는 질문이 원자력을 둘러싼 가장 오래된 딜레마였습니다. 그 질문에 인류 최초로 공학적 해답을 내놓은 나라가 있습니다. 핀란드입니다.

핀란드 서부 해안, 올킬루오토(Olkiluoto) 섬 지하 430m 깊이에 Onkalo(핀란드어로 '동굴', '구멍'을 뜻함)라 불리는 시설이 문을 열 준비를 마쳤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아직 가보지 못한 길, 사용후핵연료(원자로에서 태우고 남은 핵연료)의 영구 처분이라는 길입니다.


왜 땅속 430m인가 — 심층처분의 논리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인류는 수십 년 동안 다양한 방법을 검토해 왔습니다. 우주로 쏘아 보내자는 아이디어도 있었고, 바닷속에 가라앉히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국제 과학계가 합의한 유일한 실행 가능한 방법은 심층처분(Deep Geological Disposal), 즉 지하 깊은 곳의 안정된 암반에 봉인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하 깊은 곳의 암반은 수억 년에 걸쳐 변하지 않아 왔습니다. 지진, 화산, 빙하기, 그 어떤 지질학적 격변도 수백 미터 아래의 화강암 기반암을 흔들지는 못했습니다. 반면 지상의 어떤 구조물도 수십만 년을 버틸 수는 없습니다. 피라미드가 5천 년, 로마 판테온이 2천 년을 버텼지만, 핵폐기물이 충분히 안전해지려면 그보다 100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핀란드 Onkalo가 자리 잡은 올킬루오토의 화강암 지층은 약 19억 년 전에 형성된 것입니다. 이 암반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안정성을 스스로 증명해 왔습니다. 지하수의 움직임도 극히 느리고, 지진 활동도 미미합니다. 핵폐기물을 격리하는 천연 보호막으로서 이보다 더 검증된 조건을 찾기 어렵습니다.


Onkalo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 다중 장벽 시스템

Onkalo의 설계 원칙은 '하나가 실패해도 다른 것이 막는다'는 다중 장벽(Multi-Barrier) 시스템입니다. 한 겹의 방어선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층의 격리 장벽을 겹쳐 놓아 그 어느 하나가 무너지더라도 방사성 물질이 생물권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장벽은 사용후핵연료 자체가 담긴 세라믹 형태의 산화우라늄 펠릿입니다. 고체 상태로 단단히 굳어 있어 웬만한 충격에는 물질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두 번째 장벽은 두께 5cm의 구리 용기입니다. 구리는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부식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금속으로, 지하 430m의 혐기성 환경에서는 수십만 년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이 핀란드 연구진의 계산입니다. 세 번째 장벽은 구리 용기를 감싸는 벤토나이트(bentonite) 점토층입니다. 벤토나이트는 물을 흡수하면 팽창하여 암반과 구리 용기 사이의 공간을 완전히 메워버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하수가 스며들어도 이 점토층이 물의 이동을 수십만 년 단위로 지연시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장벽이 바로 19억 년 된 화강암 암반 자체입니다.

핀란드는 이 설계를 검증하는 데만 수십 년을 투자했습니다. 지하 실험 터널을 파고, 암반의 특성을 측정하고, 지하수의 흐름을 추적하고, 구리 용기의 장기 부식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의 Onkalo입니다.


수십만 년의 약속 — 핀란드는 어떻게 결정을 내렸는가

공학적 어려움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회적 합의입니다. 핀란드는 1987년부터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의 필요성을 법으로 규정하고 공론화를 시작했습니다. 부지 선정 과정에만 20년 가까이 걸렸으며, 최종적으로 올킬루오토를 선택한 것은 2001년이었습니다. 지역 주민 투표를 통해 주민 다수가 동의했고, 이후 핀란드 의회가 승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핀란드 사회가 선택한 원칙은 '미래 세대에게 문제를 떠넘기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핵전력으로 이익을 누리는 세대가, 지금 그 뒤처리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책임을 미래로 연기하는 것이 윤리적이지 않다는 사회적 판단이 정책 결정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시설 건설에는 약 10억 유로(약 12억 달러)가 투입되었습니다. Onkalo는 향후 수백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핀란드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받아 봉인합니다. 현재 가동 준비를 마친 Onkalo는 핀란드 방사선안전원인 STUK(Säteilyturvakeskus)로부터 가동 허가를 취득하는 절차가 임박해 있습니다. 모든 폐기물이 처분되고 나면 2120년경 최종 밀봉이 이루어집니다. 그 이후에는 어떤 능동적인 관리도 필요 없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문명이 변해도, 언어가 달라져도, 시설 자체가 방사성 물질을 스스로 격리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시설이 세계에 던지는 질문

Onkalo의 완공은 단순히 핀란드 한 나라의 성취가 아닙니다. 현재 전 세계 31개국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으며, 수십 년 치의 사용후핵연료가 임시 저장 시설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임시'라는 표현이 수십 년을 이어온 상황입니다. 영구적인 해결책을 마련한 나라는 지금까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Onkalo가 처음입니다.

유럽연합은 현재 Onkalo의 성공을 배경으로 방사성폐기물 관리 지침(2011/70/Euratom)의 개정을 논의 중입니다. 원자력 르네상스, 즉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새로운 원전이 늘어나는 흐름 속에서 폐기물 관리 기준도 함께 높아져야 한다는 논의입니다. 스웨덴, 프랑스, 체코 등도 자국의 심층처분장 건설을 추진 중이며, 이 나라들은 모두 핀란드가 걸어온 길을 참조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현재 한국의 사용후핵연료는 각 원전 부지의 임시저장 시설에 보관 중이며, 포화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중간저장 시설 부지를 두고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Onkalo는 기술적 해결책과 함께 사회적 합의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핵폐기물이라는 단어가 주는 막막함은, 막연한 두려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Onkalo는 그 막막함이 공학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수십만 년을 버티도록 설계된 구리 용기와 화강암 암반을 바라볼 때,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저주'가 아니라 '충분히 긴 시간과 충분한 책임감을 가진 사회가 풀 수 있는 문제'임이 드러납니다. 다음으로 궁금해지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