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에서 청정에너지로 — 플루토늄 34톤의 재탄생

2026. 6. 17. 00:13원자력 뉴스

냉전 시대의 유산이 청정에너지로 바뀔 수 있을까요? 핵무기 해체 과정에서 나온 플루토늄이 30년 넘게 창고에 쌓여 있다는 사실을 들으면, 많은 분들이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실 겁니다. "저게 위험하지 않냐"는 불안과, "저걸 어디다 쓸 수 있지 않냐"는 막연한 기대. 그 두 감정이 동시에 맞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어떨까요? 미국 에너지부(DOE)가 최근 내린 결정은 바로 그 역설적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냉전이 남긴 숙제 — 34톤의 플루토늄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를 대규모로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기급 플루토늄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는데, 미국만 해도 약 34톤의 잉여 플루토늄이 발생했습니다. 이 34톤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 감이 잘 안 오실 겁니다. 원자폭탄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플루토늄이 대략 4~8kg 수준이니, 산술적으로 수천 기의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입니다.

문제는 이 플루토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였습니다. 1990년대,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 감축 협정(PMDA)을 맺으면서 잉여 플루토늄을 MOX 연료(혼합산화물 연료,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섞어 만드는 원자로 연료)로 전환해 기존 원자로에서 태워 없애기로 합의했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 MOX 연료 제조 공장을 짓기 시작했고, 수십억 달러가 투자됐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2018년 결국 중단됐습니다.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수십 배 불어났고, 완공 전망도 불투명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DOE가 선택한 대안은 플루토늄을 불활성 물질과 섞어 뉴멕시코의 WIPP(Waste Isolation Pilot Plant, 지하 심층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에 묻는 방식이었습니다. 귀한 에너지 자원을 그냥 땅속에 넣어버리는 셈이었고, 핵 비확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감시 가능성이 낮아질수록 오히려 위험해지지 않냐"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폐기물에서 연료로 — DOE가 선택한 새 경로

그런데 2026년 6월, 흐름이 달라졌습니다. DOE가 이 잉여 플루토늄을 차세대 원자로의 연료로 활용하는 방안을 공식적으로 추진하기로 했고, 두 회사를 고급 협상(Advanced Negotiations)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Oklo Inc.와 Flibe Energy입니다.

Oklo가 개발 중인 Aurora는 마이크로 고속로입니다. 고속로란 일반 원자로와 달리 고에너지 중성자를 이용해 핵분열을 일으키는 원자로로, 금속 형태의 연료를 사용합니다. 플루토늄을 금속 연료 형태로 가공하면 Aurora의 연료로 직접 쓸 수 있다는 기술적 경로가 이미 확인돼 있습니다. Oklo는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 부지에서 이미 예비안전분석서(PDSA) 승인을 받았고, 2026년 7월 4일 임계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Flibe Energy는 LFTR(Liquid Fluoride Thorium Reactor, 액체 불화물 용융염 원자로)을 개발합니다. 이 원자로는 연료를 고체 막대 형태가 아닌 액체 상태로 녹여 순환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플루토늄을 불화물 형태로 용해해 연료로 투입하는 경로가 기술적으로 가능합니다. 기존에는 정부 지원 없이 독자 자금으로만 개발을 이어오던 Flibe에게 이번 협상 선정은 사업 생존력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됩니다.

 

핵 비확산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무기 재료였던 플루토늄을 원자로 연료로 쓰는 것이 비확산 관점에서 더 위험하지 않냐는 겁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WIPP에 묻는 방식은 플루토늄을 불활성 물질과 섞어 지하 깊이 매립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단기적으로는 접근이 어려워지지만, 감시 시스템이 약해지거나 상황이 달라지면 회수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반면 원자로 연료로 태워 없애면 플루토늄은 핵분열 산물로 변환돼 물리적으로 무기로 재가공하기 극도로 어려운 형태가 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 하에 원자로 내에서 소각하는 것이 비확산 측면에서 더 확실한 처리 방법인 셈입니다.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의 차세대 원자로들은 대부분 HALEU(고농축 저농축 우라늄, High-Assay Low-Enriched Uranium)를 연료로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HALEU 생산 시설은 현재 피케톤의 단일 시설만 존재하고 연간 생산량도 900kg에 불과합니다. 잉여 플루토늄을 선진로 연료로 전환하면 HALEU에 대한 의존을 분산할 수 있고, 국가 자산을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이중 효과를 가집니다.

역설이 현실이 되는 조건

물론 이것이 단순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무기급 플루토늄을 원자로 연료로 가공하는 과정은 기술적으로 까다롭고, 안전 요건도 엄격합니다. Oklo와 Flibe 모두 아직 상업 규모의 플루토늄 연료 가공 경험이 없으며, DOE와의 고급 협상이 실제 계약 체결로 이어지기까지는 기술 검증, 안전 심사, 비확산 검토 등 여러 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방향 자체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30년 가까이 풀리지 않던 플루토늄 처리 문제를 "어떻게 없애느냐"가 아닌 "어떻게 쓰느냐"는 질문으로 바꾼 것입니다. 핵무기 감축의 부산물이 차세대 청정에너지의 연료가 된다는 역설, 그 역설이 가능한 조건은 이미 갖춰지고 있습니다.

냉전이 남긴 34톤의 숙제가 청정에너지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다음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Oklo Aurora가 올해 7월 실제로 임계에 도달한다면, 그게 왜 역사적인 사건인지 — 그 이야기는 곧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