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8. 05:24ㆍ원자력 뉴스
소형모듈원전(SMR, Small Modular Reactor)을 둘러싼 유럽 입찰 경쟁에서 유독 한 기업의 이름이 반복됩니다. Rolls-Royce SMR입니다. 2026년 6월 15일, 스웨덴 핵에너지 개발사 Videberg Kraft가 4년간 75개 옵션을 검토한 끝에 Rolls-Royce SMR을 최종 선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Rolls-Royce SMR은 영국, 체코에 이어 유럽 3개국 모든 공개 경쟁 입찰을 싹쓸이한 유일한 SMR 기업이 되었습니다.
경쟁자는 GE Vernova의 BWRX-300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 둘 다 검증된 설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결과를 만들었을까요?

스웨덴은 왜 Rolls-Royce를 선택했나
Videberg Kraft는 Vattenfall과 Industrikraft의 공동 소유 법인이며, 스웨덴 정부가 대주주로 참여할 예정입니다. 건설 예정지는 스웨덴 서해안 Värö 반도, 기존 Ringhals 원전 인근입니다. Rolls-Royce SMR 3기(각 470MWe, 합계 1,500MWe)를 배치해 연간 약 12TWh를 생산할 계획이며, 첫 호기 상업운전 목표는 2030년대 중반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타이밍입니다. 스웨덴 의회(Riksdag)는 Videberg Kraft 발표 당일 환경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7월 15일부터 연안 지역 추가 원전 부지 제한을 해제했습니다. 정부가 입법과 사업 파트너 선정을 동시에 움직인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평가가 아니라, 정부가 특정 방향을 먼저 정한 뒤 사업 구조를 맞추는 하향식 결정의 전형입니다.
스웨덴 입장에서 Rolls-Royce SMR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이미 체코 CEZ가 Rolls-Royce SMR의 공동 소유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럽 내에서 같은 설계를 채택한 국가들이 늘어날수록 공동 인허가, 공급망 공유, 부품 표준화가 가능해집니다. 단일 국가 프로젝트로 출발해도 복수 국가 생태계에 편입되는 구조입니다. 반면 BWRX-300은 유럽에서 아직 이 생태계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기술 이전에 표준화·공급망·파트너십이 결정한다
GE Vernova의 BWRX-300은 기술적으로 열등하지 않습니다. 미국, 캐나다, 폴란드에서 동시에 추진 중인 프로젝트이며, 비등원자로(BWR, Boiling Water Reactor) 방식에 기반한 검증된 계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럽에서 3전 3패를 당했습니다.
이 결과는 B2B 대형 계약의 의사결정 구조를 보여줍니다. 에너지 인프라 계약에서 구매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기술 실패가 아닙니다. 납기 지연, 공급망 단절, 규제 미승인이라는 세 가지 리스크입니다.
Rolls-Royce SMR은 이 세 가지 리스크를 낮추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첫째, 표준화입니다. Rolls-Royce SMR은 공장에서 모듈을 사전 제작한 뒤 부지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장 건설 기간과 오차를 줄이고, 여러 프로젝트 간 설계를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어 인허가 경험이 축적될수록 신규 프로젝트의 승인이 빨라지는 구조입니다. 첫 번째 국가에서 규제 승인을 받으면 두 번째, 세 번째 국가에서는 같은 검토를 반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둘째, 공급망 준비도입니다. 스웨덴 발표 당시 Rolls-Royce SMR은 이미 영국과 체코에서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습니다. 이는 공급업체들이 단일 고객이 아닌 복수 고객을 위한 설비 투자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규모임을 의미합니다. 부품 제조업체, 건설 업체, 엔지니어링 인력이 이미 시스템 안으로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스웨덴은 세 번째 고객으로 합류한 셈입니다. BWRX-300이 유럽에서 같은 생태계를 만들려면 최초 수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셋째, 정부 파트너십입니다. Videberg Kraft는 국영 기업 Vattenfall이 참여하고 스웨덴 정부가 대주주로 들어오는 구조입니다. 체코에서는 국영 에너지 기업 CEZ가 Rolls-Royce SMR의 공동 소유주입니다. 영국에서는 Great British Energy-Nuclear가 파트너입니다. 세 건 모두 정부 또는 국영 기업이 직접 사업 구조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리스크를 낮추고, 정치적 지속성을 보장하며, 민간 투자자에게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반대로 보면, 이 세 가지 요소 없이 기술만으로 경쟁에 나선 기업은 구매자의 리스크 회피 본능 앞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45년 만의 전환과 그 의미
스웨덴이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서는 것은 1980년 탈원전 국민투표 이후 45년 만입니다. 이 사실 자체가 상징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웨덴이 어떤 방식으로 이 전환을 선택했느냐입니다.
스웨덴은 기존 원자력 경험이 있는 나라입니다. Ringhals, Forsmark, Oskarshamn 원전이 가동 중이며 Vattenfall은 오랜 원전 운영 경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Videberg Kraft는 기존 원전 부지 인근을 선택했고, 국영 기업이 사업 구조의 핵심에 들어왔습니다. 규제 환경도 입법과 동시에 정비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 전환이 아니라, 기존 원전 인프라·인력·규제 경험을 SMR 도입의 발판으로 삼는 전략적 시퀀스입니다. 유럽에서 SMR을 도입하는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패턴이기도 합니다.
1,500MWe, 연간 12TWh. 스웨덴 연간 전력 소비의 약 6%를 충당할 이 프로젝트가 예정대로 2030년대 중반 상업 운전에 들어간다면, SMR이 실제로 그리드에 전력을 공급하는 첫 사례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유럽의 나머지 국가들이 참고할 레퍼런스가 탄생합니다.
GE Vernova가 유럽 수주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첫 번째 레퍼런스를 갖지 못한 기업은 두 번째 입찰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가동 중인 곳이 있습니까?"
SMR 시장은 지금 기술 경쟁이 아닌 레퍼런스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Rolls-Royce SMR은 유럽에서 그 경쟁을 3:0으로 이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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