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0. 00:19ㆍ원자력 뉴스
'사용후핵연료'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분들에게 처리 곤란한 위험 폐기물로 들릴 것입니다. 수만 년을 관리해야 하는 방사성 물질, 아직 처분 방법도 정해지지 않은 골칫거리. 그렇게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사용후핵연료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용히 바뀌고 있습니다. 2026년 6월 18일, 두 기업이 이 '폐기물'을 다시 연료로 만들겠다는 협력을 발표했습니다. 단순한 연구 협약이 아닙니다. 미국 에너지부(DOE)가 지원하는 국가 프로그램과도 연계된 움직임입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사용후핵연료는 정말 '폐기물'인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된 핵연료는 반응이 끝나면 사용후핵연료가 됩니다. 이 안에는 실제로 사용된 물질도 있지만, 아직 에너지를 낼 수 있는 물질도 상당량 남아 있습니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대표적입니다.
사용후핵연료에서 이 유용한 물질을 뽑아내는 과정이 재처리(Reprocessing)입니다. 재처리를 거치면 우라늄·플루토늄 혼합물을 다시 연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를 MOX 연료(Mixed Oxide Fuel), 즉 혼합 산화물 연료라고 합니다. 핵연료를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쓰는 '닫힌 연료주기(Closed Fuel Cycle)'입니다.
미국은 약 9만 미터톤에 달하는 사용후핵연료를 보관 중입니다. 재처리 기술 기업 Shine은 이를 두고 "전략적 에너지 자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표현이 아주 틀리지는 않습니다. 이 안에는 상당한 에너지 잠재력이 묻혀 있습니다.

미국이 수십 년간 재처리를 하지 않은 이유
그렇다면 왜 미국은 지금까지 재처리를 하지 않았을까요? 여기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1977년 카터 행정부는 핵비확산(Nuclear Non-Proliferation) 정책의 일환으로 상업 재처리를 사실상 금지했습니다. 재처리 과정에서 플루토늄이 분리되면, 이것이 핵무기 제조에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미국의 핵연료 정책은 '일회용(Once-Through)' 방식, 즉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지 않고 심층 처분장에 영구 저장하는 방향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이 기조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6년 1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국가 정책을 재검토하는 DOE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미 하원 에너지상업위원회는 6월 9일 「핵연료재활용법(Nuclear REFUEL Act)」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민간 기업들의 움직임이 정책 변화와 맞물려 속도를 내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Shine과 Newcleo, 무엇을 하려는가
2026년 6월 18일 협력을 발표한 두 기업은 각자 다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Shine(미국)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연간 100톤의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수 있는 파일럿 시설을 2030년대 초 가동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Newcleo(프랑스)는 액체납 냉각 선진 원자로와 MOX 연료 제조 시설을 유럽에서 개발 중입니다.
양사의 협력 구도는 이렇습니다. Shine이 재처리한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플루토늄 혼합물을 추출하면, Newcleo가 이를 MOX 연료로 제조합니다. 그리고 Newcleo 원자로에서 이 MOX 연료를 태운 뒤 나온 사용후연료를 다시 Shine이 재처리하는 순환 구조입니다. 대서양 양안에서 미국(재처리)과 유럽(연료 제조)이 역할을 나눈 최초의 민간 주도 폐쇄 연료주기 시도입니다.
여기에 더해 Shine은 DOE 산하 ARPA-E(에너지 고등연구계획국)의 CURIE 프로그램이 지원하는 MARIE 컨소시엄에도 동시에 참여했습니다. EPRI(전력연구원)가 주도하는 이 컨소시엄은 미국 최초 상업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 타당성을 평가하는 분석 도구를 개발 중입니다. 정부 지원 연구와 민간 기업 협력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던지는 질문
이 흐름이 한국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은 수십 년간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이라 불리는 건식 재처리 기술을 연구해 왔습니다. 미국의 습식 재처리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사용후핵연료에서 유용한 물질을 회수한다는 목적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재처리 연구는 한-미 원자력협정(123 협정)의 제약 속에서 진행돼 왔습니다. 미국이 상업 재처리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다면, 이 협정의 맥락도 변화할 수 있습니다. 미국 내 민간 재처리 산업이 형성되기 시작한다면, 한국의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이 국제 협력의 맥락에서 새로운 자리를 찾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시에 한국은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저장소에 쌓아두면서 심층 처분장 논의를 수십 년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이 재처리 옵션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면,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 논의에서도 '재처리'가 다시 테이블 위에 올라올 수 있습니다.
'폐기물'이라고 불러온 것이 실은 아직 쓸 수 있는 자원일지도 모릅니다. 그 판단이 어느 방향으로 굳어질지는 앞으로 몇 년간의 기술 실증과 정책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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