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과 기장, 왜 이 두 곳인가 — 한국 신규 원전 부지 확정이 의미하는 것

2026. 6. 20. 00:23원자력 뉴스

원전을 새로 짓는다는 뉴스를 들으면 "또 논란이 생기겠구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부지 선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역 갈등과 님비(NIMBY) 논쟁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2026년 6월 18일 한국수력원자력(KHNP)이 발표한 신규 원전 부지 선정 결과는, 그 논란 너머로 살펴봐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어느 마을에 원전이 들어서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이 에너지 정책의 계획 단계에서 실행 단계로 넘어갔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영덕과 기장, 무엇이 들어서는가

KHNP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신규 원전 부지선정평가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두 부지를 최종 확정했습니다.

첫 번째는 경북 영덕군으로, 대형 원전 2기(총 2.8GWe 규모)가 들어섭니다. 2.8GWe는 기가와트(GW) 전기 출력 단위로, 대략 서울시 전체 가정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에 해당합니다. 영덕은 같은 경쟁 후보였던 울주(울산)를 누르고 선정됐습니다. 이곳에 들어설 원자로는 APR1400, 즉 한국이 독자 개발한 1,400MWe급 가압경수로입니다. 현재 UAE 바라카 원전을 포함해 국내외에서 운영되고 있는 검증된 설계입니다.

두 번째는 부산 기장군으로, 혁신형 소형모듈원전(i-SMR, 700MW)이 건설됩니다. i-SMR은 KHNP와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 컨소시엄이 개발 중인 170MWe급 일체형 가압경수로입니다. SMR(Small Modular Reactor)이란 기존 대형 원전의 주요 설비를 하나의 모듈로 통합한 소형 원자로를 말합니다. 2026년 2월 국회를 통과한 「SMR 특별법」에 따라 정부는 2030년까지 1조 2,000억 원(약 8억 3,000만 달러)을 핵심 설계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두 부지 모두 2038년 완공을 목표로 합니다. 이번 부지 확정은 지난 1월 정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을 확정한 뒤 KHNP가 착수한 공모 절차가 마무리된 결과입니다.


왜 지금 이 결정이 중요한가

"원전을 더 짓겠다"는 정부 발표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부지가 확정됐다는 것은 계획이 현실로 내려온 단계입니다. 환경영향평가, 인허가 신청, 착공 일정이 뒤따르는 구체적인 행정 절차가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국내 공급망 측면에서도 신호가 분명해집니다. 두산에너빌리티(원자로 압력용기·증기발생기), 한전기술(설계), 한전KPS(정비) 등 국내 원전 공급망 기업들은 신규 수주 파이프라인을 가시화할 수 있게 됩니다. 원전 산업은 초기 투자 이후 60년 이상 가동되는 장기 프로젝트이므로, 부지 확정 시점부터 공급망의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또한 한국이 현재 추진 중인 원전 수출과도 직결됩니다. 체코, 폴란드, UAE,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APR1400 수출을 논의 중인 상황에서, 국내에서 동일 설계의 추가 건설이 확정됐다는 사실은 "레퍼런스"를 늘리는 효과를 냅니다. 해외 발주처 입장에서는 "실제로 짓고 운영해본 기술"인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i-SMR 부지 기장, 무엇이 다른가

기장에 들어설 i-SMR은 단순히 '작은 원전'이 아닙니다. 개념 자체가 다릅니다.

기존 대형 원전은 원자로, 증기발생기, 가압기, 냉각재 펌프가 각각 분리된 설비로 이어져 있습니다. i-SMR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압력용기 안에 통합합니다. 냉각재 배관이 사라지고 설비가 단순해지면서, 원전 최악의 사고 시나리오 중 하나인 '냉각재 상실 사고(LOCA)'의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낮아집니다.

국내에서 i-SMR이 실제로 건설되고 운영되면, 한국은 향후 글로벌 SMR 시장에 진출할 때 "국내 실증 실적"을 근거로 내세울 수 있습니다. 2030년대 글로벌 SMR 시장은 미국(BWRX-300), 중국(링롱원 ACP100), 영국(Rolls-Royce SMR) 등 여러 설계가 경쟁하는 구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경쟁에서 한국이 자리를 잡으려면, 기장의 i-SMR 실증이 결정적인 기반이 됩니다.


남은 과제: 계획이 현실이 되려면

부지 확정은 시작입니다. 이후에는 사전 환경 조사, 인허가 신청, 지역주민 수용성 확보라는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지역주민 수용성은 어느 나라에서든 신규 원전 건설의 핵심 변수입니다. 영덕과 기장 모두 지역사회와의 충분한 소통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술적으로도 i-SMR은 아직 최종 설계 인증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2030년까지 진행될 핵심 설계 투자, 그리고 이후 규제 당국의 인허가 심사가 일정대로 진행되는지가 2038년 완공 목표 달성의 열쇠입니다.

한국이 에너지 전환과 원전 수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영덕의 대형 원전과 기장의 i-SMR은 그 전략의 두 축입니다. 계획표가 현실로 이어지기까지는 아직 많은 단계가 남아 있지만, 부지 확정이라는 첫 걸음은 분명히 내딛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