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민간 원전 시장이 열린다 — Adani 10GW 선언의 의미

2026. 6. 26. 03:57원자력 뉴스

아시아 최대 재벌이 원자력에 뛰어들었습니다. 법 개정 단 1년 만의 일입니다. 2026년 6월 24일, 인도의 아다니(Adani) 그룹 회장 가우탐 아다니는 연례 주주총회 무대에서 'Adani Atomic Energy' 출범과 함께 2035년까지 10GW(기가와트) 원자력 발전 용량 확보 계획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인도 현재 원전 설비 용량이 8.8GW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단일 민간 기업이 현재 인도 전체 원전 규모에 맞먹는 설비를 10년 안에 짓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무엇이 이 선언을 가능하게 했고, 이것이 글로벌 원전 시장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봅니다.


왜 지금인가: 인도 원자력법 개정이 바꾼 지형

오랫동안 인도 원전은 국가 독점 영역이었습니다. 국영기업 NPCIL(핵발전공사)과 NTPC(국가열전력공사)가 모든 원전을 운영했고, 민간 기업은 원천적으로 원전 사업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이 벽을 허문 것이 2025년 원자력에너지법(Atomic Energy Act) 개정입니다.

개정법은 민간 기업의 원전 사업 참여를 공식 허용했습니다. 그 직후 인도 정부는 '원자력에너지 미션'을 통해 2047년까지 100GW 원전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습니다. 인도 전력부 전문가위원회가 추산한 필요 투자액만 약 2,040억 달러(약 274조 원)에 달합니다. 정부 재정만으로는 불가능한 규모입니다. 결국 민간 자본 유입은 목표 달성의 필수 조건이었고, 아다니 그룹이 그 첫 번째 주자로 나선 것입니다.

아다니 그룹의 FY2025-26년 인프라 투자 총액은 1.5조 루피(약 180억 달러)로, 인도 민간 부문 신규 투자의 30% 이상을 차지합니다. 재무적 규모만 놓고 보면, 이 선언이 단순한 포부에 그치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다.


10GW를 어떻게 짓나: SMR과 대형 원전의 투트랙

가우탐 아다니 회장은 "부지는 이미 확보됐다"고 밝혔습니다. 건설 전략의 윤곽도 구체적입니다.

현재 알려진 첫 번째 경로는 우타르프라데시 주정부와 협의 중인 PPP(민관협력사업) 방식의 SMR(소형모듈원전) 프로젝트입니다. 200MW급 SMR 8기, 총 1,600MW 규모입니다. SMR은 출력이 300MW 이하인 소형 원전으로, 표준 설계를 공장에서 모듈 단위로 제작해 현장 조립하는 방식입니다. 대형 원전에 비해 건설 기간이 짧고 초기 투자 부담이 낮아, 민간 기업이 원전 사업에 첫발을 내딛기에 적합한 형태입니다.

기술 도입 측면에서는 복수의 해외 파트너가 거론됩니다. 미국 Westinghouse의 AP1000(대형 가압수형 원전)과 BWRX-300(SMR), 인도 고유 기술인 PHWR(가압중수로), 그리고 한국의 KHNP(한국수력원자력)·두산에너빌리티가 잠재 공급망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어느 기술이 선택되느냐는 단순한 기술 비교가 아니라, 인도가 각국과 체결한 '123협정'(원자력협력협정, 미국 원자력법 123조에서 유래한 양자 핵협력 기본 조약)과 핵책임법의 적용 범위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이번 선언에 3GW 데이터센터 플랫폼 구축 계획이 함께 포함됐다는 점입니다. AI 연산 수요를 원자력의 24시간 안정적 전력 공급, 즉 '라운드-더-클락 파워(round-the-clock power)'로 충당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전력망 안정성이 낮은 인도에서 데이터센터급 고밀도 전력 수요를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충족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글로벌 원전 수출 시장의 새 전쟁터

Adani Atomic Energy가 2035년 목표를 달성할 경우, 인도 내 서열은 NPCIL, NTPC에 이어 제3위 원전 운영자가 됩니다. 그러나 이 선언의 파장은 인도 국내에 그치지 않습니다.

현재 글로벌 원전 수출 경쟁은 미국·한국·프랑스·러시아·중국이 각축하는 구도입니다. 체코·폴란드·루마니아 등 동유럽이 주요 각축장이었다면, 인도는 그 다음으로 열리는 새 전장입니다. 10GW라는 규모 자체가 단일 국가 민간 원전 프로젝트로는 세계 최대급으로, 이 시장을 선점하는 기업은 레퍼런스(실적)와 규모의 경제를 동시에 확보하게 됩니다.

다만 외국 기업의 인도 원전 시장 진입에는 구조적 장벽이 남아 있습니다. 인도 핵책임법은 사고 발생 시 기술 공급자에게도 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어, 공급자 책임 범위를 둘러싼 협상이 여전히 미결 상태입니다. 추가 법 개정 여부와 기술 벤더별 123협정 체결 현황이 외국 기업의 실질적 참여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인도의 선택이 보여주는 것

에너지 전환 논의에서 원자력은 오랫동안 '과거의 기술' 또는 '너무 느리고 비싼 선택지'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인도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서사를 뒤집습니다. 세계 최대 인구 국가의 최대 재벌이, 법 개정 1년 만에, 현재 자국 전체 원전 용량에 맞먹는 규모를 민간 자본으로 짓겠다고 나섰습니다.

이 선언 하나만으로 10GW가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핵책임법 개정, 123협정 갱신, 부지별 인·허가, 기술 이전 협상 — 넘어야 할 관문이 많습니다. 그러나 민간 원전 시장의 개방과 대규모 투자 선언이 맞물린 이 순간은, 2030년대 글로벌 원전 수출 지형을 다시 그릴 기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도가 그 전장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