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돈으로 짓고 전기 팔아 갚는다, 튀르키예 원전의 실험

2026. 7. 1. 04:39원자력 뉴스

원전 하나를 지으려면 막대한 초기 자본이 필요합니다. 보통 수십조 원 규모의 건설비를 그 나라 정부나 기업이 먼저 마련해야 하고, 이 부담 때문에 원전을 도입하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내는 국가가 많습니다. 그런데 튀르키예는 이 돈을 한 푼도 먼저 내지 않고 원전을 짓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 답을 들여다보면 원전 수출 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가 함께 보입니다.

누가 짓고, 누가 갚나요

튀르키예 메르신주에 들어서는 Akkuyu(아쿠유) 원전은 러시아가 설계한 VVER(가압경수로의 일종으로, 러시아식 노형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Gen 3+ 모델, 1,200MW급 원자로 4기로 구성됩니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독특한 점은 재원조달 방식입니다. 세계 원자력 산업 최초로 BOO(Build-Own-Operate, 건설·소유·운영) 모델이 적용됐습니다.

일반적인 원전 수출은 발주국이 건설비를 부담하고 완공 후 자국이 소유·운영합니다. 반면 BOO 모델은 러시아가 건설비 전액을 부담하고, 완공 후에도 원전을 직접 소유하며 운영까지 맡습니다. 튀르키예는 땅을 내주고, 러시아는 그 위에 원전을 지어 전기를 팔아 투자비를 회수하는 구조입니다. 쉽게 말하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건축비를 빌려주는 대신, 건축업자가 자기 돈으로 집을 지은 뒤 그 집에서 나오는 임대 수익으로 건축비를 회수하는 셈입니다. 초기 자본력이 부족한 신흥국 입장에서는 거액의 차입 없이 원전을 보유할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1호기는 지금 어디까지 왔나요

지난 6월 30일 이스탄불에서 열린 NPPES 산업포럼에서 Akkuyu Nuclear JSC 이사회 의장 Anton Dedusenko는 "2026년을 1호기 가동의 해로 만들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호기 건설공사는 이미 완료됐고, 연료집합체 시뮬레이터 장전과 원자로 조립도 마쳤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저온수압시험(cold hydraulic test)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1호기 건설공사는 완료됐고, 연료집합체 시뮬레이터 장전과 원자로 조립도 마쳤다."

 

저온수압시험이라는 용어가 낯설게 느껴지실 텐데, 원자로와 배관, 밸브 같은 1차 계통 설비에 실제 운전압력 수준의 물을 채워 넣고 압력을 가해 누설이나 결함이 없는지 확인하는 시험입니다. 핵연료를 넣기 전, 그릇이 제대로 물을 담아낼 수 있는지부터 검증하는 단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Rosatom(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대표이사 Alexey Likhachev는 러시아 국영통신 TASS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1호기의 핵연료 장전과 기동은 가을로 예정돼 있다. 7월 중 기동 직전 핵심 시험단계인 고온시험(hot test)으로 전환해 설계조건 하에서 원자로 기기·계통의 신뢰성을 검증할 예정이다."

 

고온시험은 냉각수압시험 다음 단계로, 실제 설계온도와 설계압력 조건을 그대로 재현해 원자로 기기와 계통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시험입니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핵연료를 장전하고 원자로를 가동할 수 있습니다. 즉 1호기는 지금 핵연료를 넣기 직전, 마지막 두 단계의 시험만 남겨 둔 상태입니다.

한편 2호기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습니다. 격납건물(원자로를 둘러싸 방사성물질의 외부 유출을 막는 콘크리트·철강 구조물) 내부돔 설치가 완료된 것입니다. 특수 구조강으로 제작된 15개 조립섹션으로 구성된 반구형 돔을, 약 40명의 전문인력이 7시간에 걸쳐 정밀하게 거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Dedusenko 의장은 "1호기에서 달성되고 있는 마일스톤들이 나머지 3개 호기 건설의 표준 패턴을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는데, 4기를 같은 설계로 순차 건설하며 앞선 호기의 경험이 뒤따르는 호기의 공정을 단축시키는 학습곡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BOO 모델, 신흥국 원전 도입의 새로운 문을 열까요

BOO 모델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원전 도입의 가장 큰 장벽인 초기 자본 부담을 사실상 없애기 때문입니다. 발주국은 막대한 차입이나 재정 지출 없이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을 확보할 수 있고, 공급국인 러시아는 장기간에 걸쳐 전력판매 수익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면서 동시에 운영 노하우와 영향력을 그 나라에 장기간 묶어 둘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구조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발주국 입장에서는 초기 부담이 없는 대신, 전력 가격과 운영 전반에 대한 통제권을 일정 기간 공급국에 넘기게 됩니다. 에너지 안보를 외부 사업자에게 상당 부분 의존하게 되는 구조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자본 조달이 막혀 있던 신흥국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로로 평가받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모델이 서방의 대러 제재 국면 속에서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글로벌 원전 수출 시장이 더 이상 하나의 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미국·프랑스·한국 등 서방 진영의 수출 모델과, 러시아·중국이 주도하는 진영의 수출 모델이 서로 다른 재원조달 방식과 정치적 셈법으로 신흥국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구도가 굳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Akkuyu 1호기가 올가을 핵연료를 장전하고 실제로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이 BOO 모델은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검증된 선례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선례는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처럼 원전을 원하지만 자본이 부족한 다른 신흥국들의 선택지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큽니다.

원전을 짓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나라가 원전이라는 선택지 앞에 설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Akkuyu 1호기의 고온시험과 핵연료 장전 소식이 들려올 다음 몇 달이, 그래서 더 눈여겨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