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길이 안에서만 통하는 완력 — 핵력이 전기적 반발을 이기는 법

2026. 7. 7. 08:34원자력 이야기/001. 원자력과 방사선 기초

콘서트장 인파 속에서,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딱 옆 사람뿐

사람이 꽉 들어찬 콘서트장을 떠올려 보세요. 내가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바로 옆, 팔이 닿는 사람 한둘 정도가 전부죠. 저 멀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는 아무리 팔을 뻗어봐야 손이 닿지 않습니다. 대신 손을 맞잡은 사람끼리는 웬만해서는 잘 놓지 않을 만큼 꽉 붙잡고 있고요.

그런데 이 콘서트장에서 모든 사람이 손에 작은 확성기를 하나씩 들고 계속 "삐-" 소리를 낸다고 해봅시다. 이 소리는 옆 사람한테만 들리는 게 아니라 장내 전체에 울려 퍼집니다. 멀어질수록 소리는 작아지지만, 완전히 안 들리는 거리란 없어요. 그리고 이 소음은 나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 확성기 소리가 전부 뒤섞여 쌓입니다.

지난 편("같은 극 자석은 밀어내는데...")에서 우리는 "양성자는 +전하를 띠어서 서로 밀어내는데, 원자핵이 안 흩어지고 뭉쳐 있는 건 이 반발을 이겨내는 핵력이라는 힘이 붙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딱 한 문단으로만 짧게 언급하고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그 문장 속에 숨어 있던 "핵력이 대체 어떻게 전기적 반발을 이기는가"를 제대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답이 바로 위에서 말한 "손잡기 vs 확성기 소리"의 차이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확성기 소리는 안 줄어드는데, 손잡기는 팔 길이가 다다

원자핵 속에는 양성자와 중성자(둘을 합쳐 핵자라고 부릅니다)가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이 핵자들을 서로 붙잡아 원자핵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을 핵력이라고 부릅니다. 핵력은 아주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힘이지만, 딱 한 가지 결정적인 조건이 있어요. 아주아주 가까운 거리, 대략 1~2.5펨토미터(fm, 1fm은 1000조분의 1미터입니다) 안에서만 작동하고, 그 거리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거의 0으로 뚝 떨어져 아예 느껴지지 않습니다. 딱 콘서트장에서 팔이 닿는 사람하고만 손을 잡을 수 있는 것과 똑같죠.

반면 양성자끼리 서로 밀어내는 전기적 반발력(쿨롱 힘)은 사정이 다릅니다. 이 힘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해지긴 하지만(정확히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서 약해집니다), 원리상 아무리 멀어져도 완전히 0이 되지는 않아요. 확성기 소리처럼 멀어도 계속 어느 정도는 전달되는 셈입니다.

그래도 가까이만 오면 100배의 완력

여기서 궁금해지죠. 전기적 반발력이 아무리 멀리까지 간다 해도, 어차피 원자핵 안 양성자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둘 다 "초근거리"에서 겨루는 셈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초근거리에서는 핵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합니다. 흔히 소개되는 비교로는, 핵자들이 실제로 맞닿는 거리(약 1fm)에서 핵력의 세기가 전기적 반발력보다 대략 100배 안팎 강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손을 맞잡은 두 사람 사이의 악력이, 확성기 소리가 그 거리에서 만드는 소음보다 100배는 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일단 손이 닿을 거리까지만 들어오면, 확성기 소음 정도는 가볍게 이겨버리는 거예요. 문제는 "일단 손이 닿을 거리까지 들어오는" 그 과정 자체인데, 이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겠습니다.

내가 잡을 수 있는 손은 한정되어 있다 — 핵력의 편식(포화성)

여기서 아주 중요한 차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콘서트장에서 내가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인파가 아무리 늘어나도 바로 옆 한둘뿐입니다. 인파가 100명이든 10만 명이든, 내 손은 두 개뿐이니까요. 핵력도 똑같습니다. 한 핵자가 실제로 강하게 결합하는 상대는 아주 가까이 있는 이웃 몇 개뿐이고, 원자핵에 핵자가 아무리 많아져도 이 숫자는 크게 늘지 않습니다. 이런 성질을 포화성(saturation)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확성기 소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파가 늘어날수록 "가능한 확성기 짝꿍의 조합 수" 자체가 훨씬 빠르게 불어납니다. 사람이 10명이면 서로 짝지을 수 있는 쌍은 45개지만, 100명이면 무려 4,950개나 됩니다. 원자핵 속 양성자도 마찬가지예요. 전기적 반발력은 원자핵 안의 모든 양성자 쌍끼리 전부 작동하고 다 더해지기 때문에, 양성자 수가 늘어날수록 반발력의 총합은 손잡기의 결합력보다 훨씬 빠르게 불어납니다.

결국 원자핵이 무거워질수록(양성자 수가 많아질수록), 손잡기로 버틸 수 있는 결합력은 크게 늘지 않는데 확성기 소음(반발력 총합)은 계속 누적됩니다. 이게 바로 무거운 원자핵일수록 상대적으로 불안정해지기 쉬운(방사성붕괴가 잘 일어나는) 이유의 물리적 배경 중 하나입니다. 다만 정확히 어느 지점부터 얼마나 불안정해지는지, 그 안정성의 구체적인 곡선 이야기는 다음 편(010. 안정한 원자핵과 불안정한 원자핵)에서 본격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그 손을 잡으려면 일단 확성기 소음부터 뚫어야 한다 — 쿨롱 장벽과 별의 온도

지금까지는 "이미 붙어 있는 원자핵 안에서" 핵력과 반발력이 겨루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원래 떨어져 있던 두 원자핵을 새로 붙이려면(이걸 핵융합이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될까요?

두 원자핵이 손을 맞잡으려면 일단 팔이 닿는 거리(핵력이 작동하는 약 1~2fm)까지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거리에 닿기 전까지는 계속 확성기 소음(전기적 반발)이 밀어냅니다. 마치 언덕을 하나 넘어야 반대편으로 내려갈 수 있는 것과 비슷해서, 이 반발의 언덕을 쿨롱 장벽이라고 부릅니다. 이 언덕을 넘을 만큼 두 원자핵이 빠른 속도로(정확히는 충분한 운동에너지로) 부딪혀야만, 비로소 핵력이 작동하는 거리까지 파고들어 손을 맞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입자들의 속도, 즉 운동에너지의 평균치를 우리는 "온도"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핵융합에는 초고온이 필요하다"는 말은 사실 "쿨롱 장벽을 넘을 만큼 빠르게 부딪혀야 한다"는 말과 똑같은 이야기인 셈이에요. 태양 중심부는 온도가 약 1500만°C에 이르고, 여기에 어마어마한 밀도·압력이 수십억 년간 유지되는 데다 양자역학적인 "터널링" 효과(장벽을 완전히 못 넘어도 확률적으로 통과하는 현상)까지 더해져, 수소 원자핵들의 핵융합이 꾸준히 일어납니다.

그런데 지구에서 인공적으로 핵융합을 일으키려는 연구(토카막 같은 장치)는 태양처럼 어마어마한 중력으로 오랜 시간 가둬둘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대신 온도를 태양 중심보다 훨씬 더 높은 1억°C 이상까지 끌어올려서 반응이 일어날 확률을 보충하는 방식을 씁니다. 별은 압력과 시간으로, 지구의 실험실은 온도로 같은 쿨롱 장벽 문제를 다르게 풀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의 한 줄 정리

  • 핵력은 핵자를 강하게 끌어당기지만 약 1~2.5fm 이내의 초근거리에서만 작동하고, 전기적 반발력(쿨롱 힘)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원리상 거리 제한 없이 작동한다
  • 다만 핵자들이 실제로 맞닿는 초근거리에서는 핵력이 전기적 반발력보다 대략 100배 안팎 강하다고 흔히 이야기된다
  • 핵력은 이웃 몇 개하고만 결합하는 포화성이 있지만, 전기적 반발력은 원자핵 속 모든 양성자 쌍끼리 누적되어 원자핵이 무거워질수록 반발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쌓인다 (무거운 원자핵이 불안정해지기 쉬운 이유 중 하나,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서)
  • 서로 떨어진 두 원자핵을 융합시키려면 핵력이 작동하는 거리까지 접근하기 전에 전기적 반발이 만드는 언덕, 즉 쿨롱 장벽을 먼저 넘어야 한다
  • 이 장벽을 넘으려면 큰 운동에너지, 즉 초고온이 필요하며, 태양은 압력과 시간으로, 지구의 인공 핵융합 연구는 훨씬 더 높은 온도로 이 문제를 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