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원자력발전소 — 부유식 원전 상업화 경쟁이 본격 시작됐다

2026. 5. 29. 23:10원자력 뉴스

"원전을 바다 위에 띄운다고요?"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은 분들이 이렇게 반응하십니다. 원자력발전소 하면 두꺼운 콘크리트 돔과 냉각탑이 땅 위에 단단히 뿌리내린 모습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바다 위에 배처럼 떠 있다니 — 직관적으로 더 위험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26년 5월, 러시아와 그리스에서 동시에 발표된 두 가지 소식이 이 기술이 이미 현실로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세계 유일'에서 '직렬 생산'으로 — 러시아의 도약

부유식 원전(FNPP, Floating Nuclear Power Plant)은 원자로를 선박이나 바지선(barge, 자체 동력 없이 예인선으로 이동하는 평저 선박)에 탑재해 해안이나 항구 가까이 정박시키는 발전 방식입니다. 육상 원전과 달리 땅을 거의 차지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이동·재배치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 특징입니다.

러시아는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업 운전 중인 부유식 원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북극 추쿠카 자치구의 페벡(Pevek)항에서 가동 중인 아카데믹 로모노소프(Akademik Lomonosov)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2026년 5월 27일,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Rosatom)이 한 단계 더 나아간 발표를 했습니다.

2세대 부유식 원전인 FPU-106에 탑재될 차세대 소형 원자로 RITM-200S 1호기가 완성됐다는 소식입니다. 이 원자로는 모스크바 인근 ZiO-Podolsk 기계제작 공장에서 제조를 마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발티스키(Baltisky) 조선소로 철도 발송됐습니다.

FPU-106은 RITM-200S 원자로 2기를 탑재해 총 106MWe(메가와트 전기)를 생산합니다. 1세대 아카데믹 로모노소프의 70MWe보다 50% 이상 발전용량이 늘었고, 연료 교환 주기 5~7년에 설계 수명 40년으로 설계됐습니다.

"러시아는 운영 중인 부유식 원전을 보유한 세계 유일한 국가로, 소형·원격 에너지 기술 분야에서 선도력을 유지하겠다."
— 로사톰 사무총장 알렉세이 리하쵸프(Alexey Likhachev)

 

현재 이 FPU-106 4기가 동시에 건조되고 있습니다. 목적지는 추쿠카 자치구의 바임스키(Baimsky) 동광(銅鑛) 채굴·가공 단지입니다. 광업 현장에 부유식 원전이 탄소중립 전력을 공급하는, 세계 최초의 원자력-광업 복합 프로젝트입니다. 완공 목표는 2031년입니다.

중요한 것은 '1호기 완성'이 아니라 '직렬 생산 체계 구축'이라는 신호입니다. ZiO-Podolsk 공장은 이미 RITM-200 계열 원자로 14기를 생산 중이며, 이번 RITM-200S 1호기를 포함하면 양산 체계가 본궤도에 오른 셈입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차가 한 대씩 출고되듯, 원자로도 공장 라인을 타고 생산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중해의 군도(群島)가 원전을 검토한다 — 그리스의 타당성 연구

같은 날짜, 지구 반대편에서도 의미 있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그리스의 Deon Policy Institute, 영국의 해양 원자력 기업 CORE POWER, 그리스 원자력 기업 Athlos Energy, 그리고 세계적인 선급 기관인 미국선급협회(ABS, American Bureau of Shipping)가 공동으로 '그리스 내 부유식 원전 PESTLE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PESTLE은 정치(Political)·경제(Economic)·사회(Social)·기술(Technological)·법률(Legal)·환경(Environmental) 요소를 종합 분석하는 타당성 평가 방법론입니다.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공식 FNPP 도입 가능성 연구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결론은 명확합니다. "근본적 기술 장벽 없음(No Fundamental Barriers)."

그리스를 주목하는 이유는 지리적 특성에 있습니다. 그리스는 6,000개 이상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입니다. 본토의 전력망은 2024년부터 태양광 과잉 공급으로 순수출국이 됐지만, 키클라데스(Cyclades)·도데카네스(Dodecanese) 같은 비연결 도서 지역은 여전히 수입 디젤 발전기에 의존합니다. 섬마다 디젤 연료를 배로 날라야 하는 비효율과 높은 전기요금이 수십 년째 해결되지 못한 과제입니다.

연구는 이 문제에 대해 부유식 원전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육지를 사용하지 않고 수요 인근 해상에 배치할 수 있고, 그리스의 오랜 해운·조선 전통을 활용하면 총 프로젝트 가치의 약 75%를 그리스 기업이 수행할 수 있다는 산업적 기회도 제시합니다. 타당성 연구는 적절한 규제 체계가 갖춰진다면 2035~2040년 그리스 도서 지역에 FNPP 상업 배치가 가능하다고 전망합니다.

그리스 총리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Kyriakos Mitsotakis)는 2026년 3월 파리 원자력 정상회의에서 SMR의 에너지 믹스 역할을 공식 검토하겠다고 선언하고 전담 장관급 위원회를 구성한 상태입니다. 정치적 의지와 기술적 가능성이 맞닿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증에서 경쟁으로 — 무엇이 달라졌나

두 소식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흐름이 보입니다. 부유식 원전이 '가능성을 실험하는 단계'에서 '상업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이미 7년 가까이 부유식 원전을 운영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양산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로사톰은 아프리카·중동 등 신흥시장 수십 개국에서 FNPP 수요가 있다고 밝히며 수출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반면 CORE POWER·ABS 등 서방 기업들은 그리스 연구처럼 규제 표준화 경로를 먼저 구축하며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두 접근 방식의 차이는 흥미롭습니다. 러시아는 "우리가 이미 만들고 있다"는 기술·제조 우위를, 서방은 "국제 규제 프레임워크를 우리가 만들겠다"는 표준화 선점 전략을 구사합니다. 어느 쪽이 시장의 판세를 결정할지는 앞으로 몇 년 안에 드러날 것입니다.

부유식 원전의 잠재 시장은 생각보다 넓습니다. 도서 지역과 원격지 에너지 공급, 북극·해양 자원 개발 현장, 디젤 발전기를 대체해야 하는 개발도상국 해안 도시, 그리고 바임스키처럼 전력망이 닿지 않는 광업 클러스터가 모두 그 대상입니다. 이 시장들의 공통점은 기존 육상 인프라를 새로 까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입니다. 부유식 원전은 그 틈새를 파고드는 기술입니다.


마무리 — 바다가 에너지 지도를 바꾼다

원전을 바다에 띄우는 발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이 기술은 이미 북극 해안에서 7년째 가동 중이고, 다음 세대 원자로는 공장 라인을 떠나 조선소를 향해 철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기술적 장벽보다 먼저 넘어야 할 벽은 규제와 사회적 수용성입니다. 그리스 연구가 정확히 이 점을 짚은 것처럼, 부유식 원전이 진짜 '에너지 지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국제 안전 기준의 정립과 지역사회의 신뢰 확보라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전력망이 닿지 않는 섬과 광산에 탄소 없는 전기가 공급되는 날이 얼마나 가까워질지 결정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