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미국이 NRC 없이 원자로를 켰다 — 60년 규제 체계를 우회한 DOE 실험

2026. 6. 9. 11:03원자력 뉴스

"원자로를 켠다"는 뉴스를 들으면 NRC(Nuclear Regulatory Commission,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관여한다고 자연스럽게 떠올리실 겁니다. 1954년 원자력법 제정 이후 미국에서 민간 원자로를 가동하려면 반드시 NRC 인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2026년 6월 4일, 그 전제가 처음으로 깨졌습니다. Antares Nuclear이라는 민간 기업이 NRC 인허가 없이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에서 마이크로반응로의 임계를 달성했고, 에너지장관 Chris Wright는 이를 "미국 원자력의 역사적 순간"이라고 불렀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NRC를 우회하는 법적 근거 — 원자력법의 숨겨진 조항

NRC는 민간 원자력 시설을 규제하는 독립 기관입니다. 그런데 원자력법(Atomic Energy Act)에는 오래전부터 또 다른 조항이 존재했습니다. DOE(미국 에너지부)는 연방 정부 소유·운영 시설에 한해 NRC 인허가 없이 원자로를 인가할 수 있는 고유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주로 국방 목적의 정부 시설에 적용되어 왔기 때문에, 수십 년간 민간 영역과는 무관한 규정처럼 여겨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5월 서명한 행정명령(EO 14301)은 이 오래된 조항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DOE가 관리하는 국립연구소 부지에서, DOE가 직접 인가하는 방식으로 민간 기업의 원자로 실증을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Antares의 Mark-0가 가동된 INL(아이다호 국립연구소)은 연방 정부 소유 시설이기 때문에, DOE가 NRC를 거치지 않고도 합법적으로 실증을 승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탈법이 아닙니다. 원자력법 안에 원래부터 있던 경로입니다. 다만 민간 기업이 이 경로를 실제로 활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Mark-0 임계 달성,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임계(criticality)"라는 단어는 종종 위험한 사고와 연결되어 오해를 받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임계는 핵분열 연쇄반응이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 스스로 유지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원자로가 처음 켜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Antares의 Mark-0는 500kW급 나트륨 히트파이프 냉각 방식의 마이크로반응로입니다. 냉각재로 물 대신 나트륨 히트파이프를 사용하는 이 설계는, 냉각재 펌프가 없어도 열이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수동 안전 구조를 갖춥니다. 연료는 TRISO(삼중 피복 이소트로픽) 방식의 HALEU(고농축 저농축 우라늄)입니다. TRISO 연료는 핵분열 생성물을 세 겹의 세라믹과 탄소층으로 감싸 고온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설계된 연료입니다.

이번 임계는 '제로전력 임계(zero-power criticality)'였습니다. 실제 전기를 생산한 것이 아니라, 연쇄반응이 자립적으로 유지됨을 처음 확인한 단계입니다. 이 과정에서 반응로 물리 파라미터, 제어시스템, 노심 성능 데이터를 검증합니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엔진이 처음으로 시동이 걸린 것과 같습니다. 실제 주행(전력 생산)은 2027년 Mark-1 단계에서 이루어집니다.

"Mark-0는 이 목표의 첫 번째 이정표다." — DOE Reactor Pilot Program 공식 발표 (2026-06-04)

 

DOE 파일럿 프로그램이 노리는 것 — 패스트트랙 상업화 경로

DOE Reactor Pilot Program(RPP)에는 현재 11개 민간 기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중 Antares·Radiant Industries·Valar Atomics 등 최소 3개사가 FDSA(최종 문서화 안전분석, 반응로 운전을 승인받기 위한 최종 안전 문서)를 이미 확보했으며, Valar Atomics는 2025년 11월에 이미 제로전력 임계를 달성한 상태입니다.

EO 14301의 목표는 2026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까지 최소 3기의 선진반응로가 임계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이 날짜가 상징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핵 독립기념일(Nuclear Independence Day)"이라는 표현이 업계에서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Radiant Industries와 Deployable Energy의 추가 임계가 D-30일 이내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진짜 의미는 임계 달성 자체가 아닙니다. DOE 실증 후 NRC 연계 패스트트랙 라이선스 경로(fast-track commercial licensing)가 활성화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기존 NRC 상업 인허가는 설계 단계부터 시작하면 10년 이상이 걸리기도 합니다. DOE 파일럿에서 실제 운전 데이터를 먼저 확보하면, NRC 심사 시 데이터 공백을 메울 수 있어 전체 인허가 기간이 수년 단축될 수 있습니다. 실증 후 상업화까지의 장벽이 구조적으로 낮아지는 것입니다.

군사 응용과 오프그리드 시장 — 임계 이후의 로드맵

Antares의 Mark-0 임계 달성에는 미 육군이 통합 파트너로 직접 참여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기술 실증이 아닙니다. 미 육군의 Janus 프로그램은 해외 군사기지나 외딴 전선 기지에 마이크로반응로를 배치하여 에너지 자립성(Energy Resilience)을 확보하려는 계획입니다. 2028년 군사기지 배치가 목표입니다.

군사 기지는 전력망에서 떨어진 경우가 많고, 유류 보급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지속적인 전력이 필요합니다. 마이크로반응로는 소형이면서도 수년간 연료 교체 없이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이 수요에 딱 맞습니다. 이번 임계 달성으로 군사·도서·산간·우주 등 기존 전력망이 닿지 않는 오프그리드 시장에서 마이크로반응로의 실현 가능성이 처음으로 실증됐습니다.

한편 UCS(우려 과학자 연맹)의 Edwin Lyman은 "상업적 실행 가능성과 무관한 초기 단계"라는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실제로 아직 전력 생산도 이루어지지 않은 제로전력 임계 단계이며, 상업 배치까지는 비용, 연료 공급, 규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Antares 측은 임계→발전→상용 배치 3단계 로드맵이 예정 일정대로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지만, 신기술이 실증에서 상업 제품이 되기까지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경우는 원자력 역사에서 드물지 않습니다. 이 점은 솔직하게 짚어두는 것이 맞습니다.


60년 동안 NRC를 거쳐야만 가능했던 민간 원자로 운전이, 원자력법 안에 오래전부터 있던 경로를 통해 처음으로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건이 진짜 의미를 갖는지는 2027년 Mark-1이 실제 전기를 생산하는 순간, 그리고 7월 4일까지 3기가 임계에 도달하는지 여부가 보여줄 것입니다. 규제 체계의 변화가 어떻게 기술 개발의 속도를 바꾸는지, 그 실험이 지금 아이다호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