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9. 06:15ㆍ원자력 뉴스
"AI 데이터센터 때문에 전기요금이 오른다"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수만 대의 서버가 24시간 돌아가고, 냉각 시스템만으로도 웬만한 공장보다 많은 전기를 씁니다. 전력 수요가 늘면 요금도 오른다 — 이 논리는 직관적으로 납득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작동한 곳이 딱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PJM 전력시장입니다.
다른 지역이 아닙니다. 같은 미국 안에서도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은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전기요금이 뛰지 않았습니다. PJM에서만 특정 메커니즘이 작동했고, 그 결과 펜실베이니아와 메릴랜드 가정의 전기요금이 2024년 대비 2025년에 각각 17.5%, 18.4% 올랐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가장 큰 폭의 상승입니다. 왜 PJM에서만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답은 '용량 시장'이라는 구조에 있습니다.

용량 시장이란 무엇인가 — '전기 예비 보험료'의 논리
전력 시스템을 이해할 때 많은 분들이 놓치는 시장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용량 시장(capacity market)입니다.
우리가 매달 내는 전기요금에는 크게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내가 쓴 전기의 생산·공급 비용(에너지 가격)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전기를 쓰지 않는 시간에도 발전소가 '대기'하는 데 드는 비용입니다. 후자가 바로 용량 요금, 즉 '전기의 예비 보험료'입니다. 여름 폭염이나 겨울 한파처럼 수요가 급증하는 순간에도 전력망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평소에 쓰이지 않는 발전 용량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준비 상태를 유지하는 비용을 시장이 지불하는 방식이 용량 시장입니다.
PJM은 펜실베이니아·뉴저지·메릴랜드를 포함한 13개 주와 워싱턴 DC를 관할하는 미국 최대 도매 전력시장입니다. 약 6,500만 명이 이 시장에서 생산된 전기를 씁니다. 그리고 PJM은 이 용량 시장을 별도로 운영합니다. 문제는 이 시장의 가격이 1년 만에 833% 폭등했다는 것입니다.
수치로 보면 이렇습니다. 2024/25 공급연도 기준 PJM 용량 가격은 MW-day당 28.92달러였습니다. 그런데 2025/26 공급연도에는 269.92달러로 뛰었습니다. 1년 만에 9배 이상이 된 것입니다. 2026/27 공급연도에는 329.17달러, 2027/28 공급연도에는 333.44달러로 추가 상승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왜 가격이 이렇게 폭등했나 — 세 가지 충돌
이 폭등을 설명하는 원인은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한 결과입니다.
첫 번째는 수요의 급격한 증가입니다. AI 모델 훈련과 추론에 특화된 데이터센터들이 PJM 관할 지역에 집중적으로 들어서면서 향후 수요 예측치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PJM은 미래 수요에 맞춰 확보해야 할 용량 필요량을 상향 조정했고, 더 많은 예비 용량이 필요해졌습니다.
두 번째는 공급의 지체입니다. 새로운 발전소를 짓고 전력망에 연결하려면 계통연계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이 대기 줄이 수년째 늘어져 있고, 건설 비용도 상승했습니다. 수요는 빠르게 늘었지만 그에 맞는 신규 발전 자원이 제때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것입니다.
세 번째가 결정적입니다. PJM 용량 시장의 구조적 특성입니다. 이 시장에서는 용량 비용을 '데이터센터에만' 청구하는 메커니즘이 없습니다. 데이터센터가 수요 증가의 주된 원인이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한 용량 비용은 PJM 관할 지역의 모든 전력 소비자에게 균등하게 분산됩니다. 수요를 만들어낸 주체와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가 분리된 구조입니다.

같은 PJM 안에서도 다른 결과 — 발전소를 '가진' 유틸리티의 차이
그렇다면 PJM 관할 지역의 모든 소비자가 같은 충격을 받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분기가 있습니다.
버지니아에서 전력을 공급하는 도미니언 에너지(Dominion Energy)를 보겠습니다. 도미니언은 자체 발전설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PJM 용량 시장에서 가격이 798% 폭등하는 동안, 도미니언 고객의 전기요금 영향은 1% 미만에 그쳤습니다. 자체 설비로 필요한 용량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장 가격 급등의 직격탄을 피했습니다.
반면 자체 발전설비 없이 시장에서 전력을 구매해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유틸리티들은 달랐습니다. 용량 시장에서 급등한 가격을 그대로 사와야 했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소매 전기요금에 반영됐습니다. 펜실베이니아 +17.5%, 메릴랜드 +18.4% — 이 숫자가 만들어진 경로입니다.
개별 주의 소매 유틸리티 계약, 즉 '대형 부하 관세(large load tariff)'를 활용하면 데이터센터가 직접 추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유틸리티는 이 방식으로 데이터센터 고객에게 별도 요금을 부과합니다. 그러나 PJM의 도매 용량 시장 차원에서는 이런 개별 청구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용이 사회 전체로 퍼지는 구조, 즉 '사회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규제의 빈틈이 만들어낸 청구서
이 상황이 완전히 방치된 것은 아닙니다. 2026년 1월, PJM 관할 주지사들과 연방 에너지부 장관, 내무부 장관이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소비자 용량 요금 상한을 연장하고, 데이터센터 수요를 충당할 신규 발전을 지원하며, 무엇보다 데이터센터가 그 발전 용량 비용을 직접 부담하도록 제도를 설계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 대응이 주목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때문에 전기요금이 오른다'는 명제가 자동으로 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장 구조 안에서만 그 인과관계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이 사태가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에도, 텍사스에도, 뉴욕에도 데이터센터는 있습니다. 하지만 PJM 방식의 용량 시장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비용이 사회화되지 않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전력 기술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시장 설계의 이야기입니다. 누가 수요를 만들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며, 그 연결 고리를 제도가 어떻게 정의하는가. 이 구조가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같은 수요 증가가 전혀 다른 청구서로 이어집니다.
앞으로 AI 인프라 확장과 전력 수요 증가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질 것입니다. 그때 '전기요금이 오르는가'라는 질문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시장 구조 안에서, 누구에게 청구되는가'를 함께 묻게 된다면 — 이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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