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없는 나라가 원전 심사를 맡는다면: 폴란드 규제기관 4년의 기록

2026. 6. 29. 08:58원자력 뉴스

원전을 처음 도입하려는 나라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기술이 아닙니다. 원자로 설계는 이미 검증된 것을 사 오면 됩니다. 진짜 문제는 그 원자로가 안전한지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규제 역량이 자국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 판단을 남에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규제란 본질적으로 자국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폴란드가 지금 정확히 이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연구용 원자로 1기에서 상업 원전으로

폴란드의 원자력 이력은 길지 않습니다. 1974년부터 가동해 온 연구용 원자로 1기가 전부입니다. 연구로(Research Reactor)는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이나 중성자 실험에 쓰이는 소형 장치로, 전력을 생산하는 상업용 원전과는 규모와 복잡성이 전혀 다릅니다.

그런 폴란드가 2014년 원자력 발전 프로그램을 수립했습니다. 2020년 개정된 이 계획에 따르면 1,000 MWe 이상 대형 원자로 2~ 3기로 구성된 원전 1~2기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총 6~9 GWe 규모입니다. 2022년에는 노형(원자로 모델)으로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을 선정했습니다.

AP1000은 이미 미국과 중국에서 건설·운영된 바 있고, 영국에서도 규제기관의 표준설계 사전 검증을 통과한 설계입니다. 하지만 폴란드 입장에서는 이것도 충분히 선진 원자로 기술입니다. 상업 원전을 한 번도 인허가해 본 적 없는 규제기관이 이 설계를 심사해야 합니다.


50명짜리 전담팀을 꾸리기까지

폴란드 원자력 규제기관인 PAA(Państwowa Agencja Atomistyki, 국가원자력청)는 2020년 당시 직원이 102명이었습니다. 원전 인허가를 준비하면서 현재 180명 이상으로 늘었고, AP1000 심사를 전담하는 안전부서는 10~15명에서 50명 이상으로 성장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인상적이지만, 실제 어려움은 채용 이후에 시작됩니다. 핵공학 분야의 전문가는 민간 시장에서도 수요가 많습니다. 규제기관 급여는 경쟁력이 높지 않고, 일은 고도로 전문적입니다. PAA가 주목한 통계는 '입사 첫 해 이직률'이었습니다. 입사 첫 해를 넘기면 잔류율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온보딩(신규 직원 적응 지원) 프로그램과 안전문화 강화에 집중적으로 투자했습니다. 사람을 뽑는 것보다 붙잡는 것이 더 어렵다는 현실적 인식입니다.

인프라도 함께 구축했습니다. 방사선 감시망, 전산 안전해석 코드(Safety Analysis Code, 원자로 사고 시나리오를 컴퓨터로 모의 분석하는 도구), 이동형 실험실 등을 순차적으로 도입했습니다. 규제기관이 사업자의 주장을 독립적으로 검증하려면 이런 도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신청서가 오기 전부터 심사를 시작한다

PAA가 선택한 가장 눈에 띄는 전략은 사전 준비의 선행입니다. 2023년, 건설허가 신청서가 접수되기도 전에 50명 이상 규모의 사전 인허가팀(Pre-Licensing Team)을 구성했습니다. 여러 부서에서 차출한 합동 프로젝트 조직입니다.

이 팀이 한 일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폴란드 규제 요건과 미국 NRC(Nuclear Regulatory Commission,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요건을 항목별로 비교·분석했습니다. 같은 AP1000이라도 폴란드 법령과 미국 법령이 요구하는 내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내부 규제 지침을 새로 개발했습니다. 셋째, 건설허가 심사 전체 일정을 상세하게 수립했습니다. 넷째, 기술 지원 기관(TSO: Technical Support Organization, 규제기관이 전문 기술 심사를 위탁하는 독립 연구기관)을 조달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 팀의 구성원들은 향후 정식 심사도 그대로 맡습니다. 사전 단계에서 이미 팀워크와 정보 흐름을 익혔기 때문에, 신청서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실제 심사에 바로 돌입할 수 있습니다.

사업자인 PEJ(Polskie Elektrownie Jądrowe, 폴란드 원자력발전)와의 소통도 이례적으로 빈번합니다. 2025년 한 해에만 기술회의를 37회 열었고, 매주 정기 조정회의를 진행했으며, CEO급 정기 회의와 전용 IT 문서 공유 플랫폼도 운영했습니다. PAA는 AP1000의 핵심 기술문서인 PSAR(사전 안전분석보고서) 4장을 사전에 검토하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폴란드 법령에는 일반의견서(General Opinion) 제도도 있습니다. 신청서 제출 전 사업자가 특정 기술 쟁점에 대한 규제기관의 견해를 공식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법적 장애나 요건 불일치를 조기에 발견하는 데 유용하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정액 수수료가 부과되고, 심사 기간이 최대 9개월이며, 추가 정보를 요청할 수 없습니다. 제도 설계의 개선 여지가 남아 있는 부분입니다.


"바퀴를 다시 발명하지 않겠다"는 원칙

규제 역량이 부족한 신규 도입국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전략은 이미 쌓인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입니다. PAA는 이를 "바퀴를 다시 발명하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압축합니다.

NRC와는 구체적인 협력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노심물리(핵반응이 원자로 내부에서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다루는 분야)·확률론적 안전성 평가(PSA: Probabilistic Safety Assessment, 사고 발생 확률을 수치로 계산하는 분석 방법)·인허가 프로젝트 관리 등의 분야에서 현장교육을 받았습니다. AP1000은 이미 미국에서 4기, 중국에서 4기가 완공되었고, 영국 ONR(Office for Nuclear Regulation)의 GDA(Generic Design Assessment, 원자로 표준설계 안전성을 건설 이전에 검증하는 영국 고유의 제도) 심사도 마쳤습니다. 이 방대한 심사 이력을 폴란드 심사에 적극 참조합니다.

폴란드의 인허가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건설허가 신청서가 수주 내 접수될 예정이고, PAA는 접수 후 법적으로 2년 이내에 건설허가를 발급해야 합니다. 신청서가 2026년 중 제출된다면 2028년 건설허가 발급이 목표입니다. 이후 시운전허가, 운영허가의 3단계를 거칩니다.


원전 도입을 결정하는 것과 실제로 안전하게 운영하는 것 사이에는 규제 역량이라는 보이지 않는 다리가 놓여야 합니다. 폴란드의 4년은 그 다리를 짓는 과정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치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