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떻게 SMR 규제 강국이 될 수 있을까 — NSSC의 2030 로드맵

2026. 6. 29. 09:01원자력 뉴스

"SMR(소형모듈원전)이 미래 에너지라는 건 알겠는데, 한국의 규제 환경은 준비가 되어 있나요?"

이 질문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기술이 아무리 앞서 있어도, 규제가 따라오지 못하면 상용화는 공염불이 됩니다. 대한민국 원자력안전위원회(NSSC)가 2026년 2월 공개한 'SMR 규제체계 구축 로드맵'은 바로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대한 공식 답변입니다.

기존 규제체계의 어디가 문제였나

대한민국의 원자력 규제는 원자력안전법을 정점으로 한 위계적 법령체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체계 자체는 탄탄합니다. 그런데 이 체계는 처음부터 대형 경수로(기존 핵발전소 방식)와 전력 생산이라는 두 가지 전제 위에 설계되었습니다.

SMR은 이 전제를 흔듭니다. 출력 규모도 다르고, 냉각 방식도 다르며, 설치 위치와 활용 목적(열공급, 해양추진 등)도 다릅니다. 기존 규제는 이처럼 다양한 경우의 수를 수용할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규제 방식 자체에 있었습니다. 기존 방식은 규정주의(Prescriptive) 방식, 즉 "이렇게 설계하라"고 세부 항목을 일일이 명시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검증된 설계에는 안정적이지만, 새로운 기술을 마주했을 때는 경직됩니다. 규정에 없는 것은 허용하기 어렵고,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 문이 매우 좁습니다.

SMART100이 남긴 교훈

이 문제가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SMART100입니다.

SMART100은 전기 출력 110 MWe급 일체형 가압경수로로, 펌프나 밸브 없이 자연순환 원리만으로 냉각재를 돌리는 완전 수동형 안전계통을 갖춘 국내 최초의 SMR입니다. 2019년 표준설계인가(SDA, Standard Design Approval)를 신청해 2024년 9월에 취득했으니, 인허가에만 약 5년이 걸린 셈입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외부 전원계통의 물리적 독립성 요건이었습니다. 기존 규정은 원자로가 외부 전원과 물리적으로 독립된 안전 전원을 갖추도록 요구합니다. 하지만 SMART100은 원격지에 소규모로 배치되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이 요건을 문자 그대로 충족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예외 조항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외 승인을 받기까지의 과정에서 위원회 심의는 상당한 논란을 낳았습니다. 규정에 예외 조항이 있어도, 규정주의적 문화에서 예외를 실제로 인정받는 일은 제도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수동형 안전계통에 대한 신뢰성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심사관들이 "이 설계가 안전한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과 경험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설계 초기부터 규제기관과 긴밀하게 협의했더라면 달라졌을 부분이었습니다.

2030 로드맵: 무엇을 어떻게 바꾸려 하나

SMART100의 교훈을 안고 NSSC가 내놓은 것이 2030년을 목표로 한 SMR 규제체계 구축 로드맵입니다. 2026년 2월에 공개된 이 계획은 세 축으로 구성됩니다.

첫째, 규제체계의 단계적 전환입니다. 2028년 원자력안전법 개정에 착수하여 해양추진, 열공급, 산업용 등 다양한 활용 목적을 규제 범위 안에 명시적으로 포함할 계획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기술기준의 방향 전환입니다. 성능기반(Performance-Based) 및 위험도정보(Risk-Informed) 기술기준을 도입한다는 것인데, 이는 "어떻게 만들어라"가 아니라 "어떤 안전 성능을 달성하라"는 방식으로 규제 언어 자체를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용융염원자로(MSR) 등 비경수로 노형을 위한 대안 규정도 따로 마련할 예정입니다.

둘째, 효율적 안전성 평가체계 구축입니다. 현재 MOU 형태로 운영 중인 사전 인허가 검토(사전에 설계 개념을 규제기관과 협의하는 절차)를 법제화합니다. SMART100 인허가 과정에서 "설계 초기부터 협의가 있었더라면"이라는 교훈이 직접 반영된 것입니다. 나트륨냉각고속로(SFR), 용융염원자로(MSR), 고온가스로(HTGR) 등 노형별로 이해관계자 워킹그룹을 2026년 4월부터 가동할 예정입니다.

셋째, 규제 인프라와 역량 강화입니다. NSSC,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한국핵비확산·핵안보기술원(KINAC)에 SMR 전담 심사 조직을 신설합니다. 심사관들이 새로운 노형을 실제로 심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전문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IAEA, NHSI(원자력조화 및 표준화 이니셔티브), SMR Regulatory Forum 등 국제협력에도 적극 참여합니다.

이 로드맵이 나오기까지의 선행 조치도 주목할 만합니다. NSSC는 이미 2025년 10월 기술기준 대체 적용 고시를 제정했습니다. 현행 규정을 곧이곧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혁신 설계에 대해 대안적 기술기준을 인정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먼저 마련한 것입니다. SMR(170 MWe×4모듈 구성, 붕산 없이 운전하는 무붕산 설계, 완전수동형, 비안전등급 전원 설계)이 2025년 2월 표준설계인가를 신청한 것에 대응하는 조치이기도 합니다. 이 설계는 SMART100보다 훨씬 급진적이어서, 유연 해석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규제 전환의 진짜 어려움은 기술이 아니다

로드맵을 보면 방향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NSSC 스스로도 인정하는 핵심 과제가 있습니다. 기술 개선이나 법령 정비를 넘어, 규정주의적 규제 문화 자체를 바꾸는 일입니다.

규정주의 문화란 조문에 명시된 것만 허용하고, 명시되지 않은 것은 불허하는 관성입니다. 이 관성은 단순히 나쁜 습관이 아닙니다. 원자력처럼 사고의 결과가 치명적일 수 있는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안전 본능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바꾸는 일은 법 조문 하나를 고치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훨씬 많은 신뢰 축적을 필요로 합니다.

또 하나의 긴장이 있습니다. 정부가 SMR 진흥 특별법을 시행하면서 규제 준비 속도에 대한 압박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산업과 규제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은 좋지만, 이 과정에서 규제기관의 독립성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인허가를 빠르게 내주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고, 새로운 기준 위에서 안전을 실질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목표여야 합니다. NSSC가 로드맵에서 규제 독립성 유지를 명시적으로 강조한 것은 바로 이 이유입니다.

법령과 조직이 정비되는 2030년, 한국이 SMR 분야에서 진짜 강국이 될 수 있는지의 열쇠는 결국 규제기관이 얼마나 신뢰받는 전문기관으로 자리 잡느냐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