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9. 13:24ㆍ원자력 뉴스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감독을 줄인다는 말을 들으면 불안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검사를 줄이면 사고가 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데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추진 중인 개혁의 핵심은 정확히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합니다. 검사 횟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위험도가 낮은 곳에 쏠려 있던 자원을 위험도가 높은 곳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Risk-Informed(위험도 정보 기반)' 규제의 본질입니다.
2026년 3월 NRC가 개최한 규제정보컨퍼런스(RIC 2026) T5 세션에서 공개된 내용을 중심으로, 이 전환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줄인다"는 것이 무엇을 줄이는 걸까요?
원자력 규제 감독 체계를 논의할 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감소'라는 단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입니다.
NRC의 핵심 감독 체계인 ROP(Reactor Oversight Process, 원자로감독프로세스)는 2000년 도입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9·11 테러 이후 보안 분야가 분리되고, 2002년 Davis-Besse 사건(오하이오주 원전에서 원자로 압력용기 상부헤드의 심각한 부식이 발견된 사고)을 거치며 규정이 계속 추가되었습니다. 그 결과, 안전 중요도가 실질적으로 낮은 항목에도 동일한 수준의 서류 작업과 검사 노력이 투입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Cross-Cutting Issues Program(원전 운영 전반의 조직 문화 취약점을 감시하는 체계)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안전 중요도가 매우 낮은 'Green Finding'(경미한 지적사항)조차 23개 세부 속성 중 하나로 분류하도록 요구했습니다. NRC와 사업자가 각각 독립적으로 분류 작업을 수행하면서 이견이 잦았고, 실제 안전 향상보다 분류 자체에 과도한 노력이 쏠렸습니다. 이번 개편에서 이 프로그램은 23개 세부항목에서 3대 영역(인적성과, 문제식별해결, 안전의식 업무환경)으로 대폭 단순화되었습니다.
이미 시행된 변경 사항만 보아도 방향이 명확합니다. 검사 표본을 명목 수준에서 최소 수준으로 조정하여 검사 노력이 약 15% 감소했고, 중복 검사와 이중 처리 절차도 폐지되었습니다. 전체 개편이 완료되면 ROP 감독·검사 부담은 약 38% 감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수치는 "안전을 덜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중복과 형식에 투입되던 자원을 걷어낸다는 의미입니다.

NMSS 사례: 숫자로 보는 위험도 기반 재배분
이 세션에서 특히 주목할 내용은 NMSS(Office of Nuclear Material Safety and Safeguards, 핵물질안전보안국)의 구체적인 성과입니다. NMSS는 연료시설, 사용후핵연료 저장, 방사성 폐기물 처리, 해체 시설 등을 관할하는 부서로, 2007년부터 위험도 정보 기반 감독 체계를 추진해 왔습니다.
NMSS의 Gerond George 검사감독 지부장은 이번 개편의 목표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동일한 안전성(Same Safety), 더 스마트한 감독(Smarter Oversight)" — 안전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위험도와 성과 정보를 활용해 자원 배분을 효율화한다는 것입니다.
ADVANCE Act(미국 원전 산업 활성화를 위한 법률)와 행정명령 14300에 따라 구성된 실무작업반은 약 250~300건의 개선안을 도출했습니다. 그 가운데 실제 절감 효과가 수치로 확인된 항목들을 보면 그 규모가 뚜렷합니다.
- 검사·출장 통합 대시보드 구축: 연간 약 700시간 절감
- 하이브리드 검사 도입 (현장 방문 없이 원격으로 수행하는 검사): 건당 출장시간 최대 20시간 절감
- 연료시설 검사시간 단축: 연간 640시간 절감
- 사용후핵연료 저장 분야 반복검사 생략: 연간 800시간 절감
- 우수 사업자 대상 가상 성과검토회의 전환: 연간 240시간 절감
이 수치들의 공통점은, 절감이 이루어진 항목들이 모두 '위험도가 낮음을 데이터로 확인한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의 경우, 수동형(Passive) 저장 방식은 능동적인 냉각 설비나 전원이 필요 없는 구조로, 위험도가 극히 낮습니다. 이 분야에서 반복검사를 줄이는 것은 안전을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도 데이터가 뒷받침하는 합리적 판단입니다.

위험도 데이터로 자원을 움직인다는 것
"그렇다면 위험도가 낮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이것이 바로 이번 개혁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제입니다.
Decommissioning Plant Coalition(DPC, 원전 해체 사업자 연합체)의 Michael Callahan은 이 점을 명확히 지적했습니다. 과거 NMSS가 작성한 'REG CON' 자료 —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위험도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문서 — 를 재발굴해, 현재 데이터로 더욱 견고한 위험도 설명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수동형 저장시설의 극히 낮은 위험도를 데이터로 입증하는 것이 감독 체계 재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도구가 VLSSIR(Very Low Safety Significance Issue Resolution, 매우 낮은 안전중요도 이슈 신속처리 프로세스)입니다. 2021년 물질검사 프로그램에 도입된 이 절차는 안전중요도가 극히 낮은 사안을 별도 경로로 신속하게 해결하는 제도입니다. 올해에만 3건에 적용되었고, 해체 분야 등으로 확대가 진행 중입니다.
해체 분야에서는 위험 중요 활동 수준에 따라 검사 주기를 조정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현행 3년 주기를 위험도에 따라 4~5년으로 연장하거나 단축하는 방식으로, 획일적인 주기 대신 시설별 실제 위험도에 맞는 검사 빈도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산업계를 대표하는 NEI(Nuclear Energy Institute, 미국 원자력 에너지 산업계 로비·정책 기관)의 Tim Riti 이사는 이번 개혁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도 공유했습니다. 원자로 자동정지 및 사고전구사건(ASP) 건수가 큰 폭으로 감소했고, 성능 저하를 나타내는 'Greater-than-Green' 지표도 현저히 줄었습니다. 산업계의 안전 성과가 이미 향상되어 있음을 데이터로 확인한 상태에서, 그에 맞지 않게 과중했던 감독 부담을 조정하는 것이 이번 개편의 논리적 근거입니다.
이것이 한국에 시사하는 것
NRC의 이번 개혁이 흥미로운 이유는, "규제를 풀었다"가 아니라 "규제를 스마트하게 만들었다"는 틀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ADVANCE Act와 행정명령 14300이 NRC에 규제 개혁을 요구했지만, NMSS의 Gerond George는 이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ADVANCE Act와 행정명령은 기존 작업을 가속화한 계기일 뿐, 새로운 방향 전환은 아닙니다." 2007년부터 이미 진행해 온 방향이었다는 것입니다.
감독 체계 개편 과정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투명성입니다. 20명 작업반이 직원·산업계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했고, 그 결과 NRC 내부 검토 결과와 업계 제안이 상당 부분 일치했습니다. NEI의 39개 권고안 중 다수가 SECY-25-0045(NRC가 위원회에 제출하는 공식 정책 문서)에 반영되었습니다. 나아가 일부 항목에서는 NRC가 산업계 제안보다 더 진전된 개선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사업자가 자체 발견한 White 지적사항(안전 중요도가 낮음-중간 수준의 이슈)에 대해 Action Matrix(규제 조치 매트릭스) 열 변경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방안이 그것입니다.
"신속하되 서두르지 말 것(Be quick, don't be in a hurry)"이라는 DPC의 표현은 이 개혁의 균형감을 잘 담고 있습니다. 위험도 데이터로 감독 자원을 재배분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NRC와 NMSS의 사례는 그것이 이미 진행 중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제 조건은 언제나 같습니다. 데이터가 먼저입니다.
이 글을 읽기 전과 후, '감독 축소'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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