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원자로 사고를 예측할 수 있을까

2026. 7. 2. 08:58원자력 뉴스

원자로에서 사고가 시작되면, 방사성 물질이 언제 어디로 퍼질지, 주민을 대피시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해야 합니다. 후쿠시마 사고를 떠올리며 "그 판단을 결국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실제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도 같은 질문을 두고, 최근 1년간 AI 기술을 비상대응(EP, Emergency Preparedness) 체계에 적용하는 연구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사고 진행을 미리 예측하는 신경망, 여러 모델의 판단을 하나로 정리하는 디지털 트윈,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주민에게 보낼 메시지를 검증하는 언어모델(LLM)입니다. 이 세 가지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며, 왜 "결정을 대신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고를 미리 읽어내는 신경망, LSTM

첫 번째 사례는 예측형 비상대응입니다. NRC는 퍼듀 대학과 협력해 LSTM(Long Short-Term Memory)이라는 신경망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LSTM은 순서가 있는 데이터, 즉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데이터를 다루는 데 특화된 인공신경망의 한 종류로, 1997년 제프 호크라이터와 위르겐 슈미트후버가 제안한 이후 자연어 처리와 음성 인식 분야에서 널리 쓰여 온 알고리즘입니다.

원자로 사고는 시간에 따라 상태가 계속 변화하는 전형적인 시계열 현상입니다. 냉각재 온도, 압력, 노심 손상 정도 같은 수치들이 순간순간 달라지고, 그 흐름 속에 다음에 벌어질 일의 단서가 숨어 있습니다. LSTM은 바로 이런 흐름을 학습해서, 사고가 어떤 속도로 진행될지, 방사성 물질이 언제쯤 외부로 방출될지를 미리 추정합니다. 이 예측값은 대피 여부를 판단하는 의사결정자에게 시간이라는 가장 중요한 자원을 벌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흩어진 판단을 하나로, 퍼지 로직과 디지털 트윈

두 번째 사례는 퍼지 논리(Fuzzy Logic)와 디지털 트윈을 결합한 접근입니다. 퍼지 논리는 1965년 UC 버클리의 로트피 자데 교수가 제안한 개념으로, "참(1) 아니면 거짓(0)"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약간 참", "대부분 거짓"처럼 모호한 상태를 수학적으로 다루는 논리 체계입니다. 세탁기나 에어컨의 자동 제어부터 지하철 자동운전까지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RTM(Response Technical Manual, 방사능 비상 시 현장 대응 요원이 참고하는 기술 지침서)에 포함된 4개의 노심손상 모델을 통합하는 데 활용됩니다. 사고가 나면 여러 모델이 저마다 다른 손상 정도를 추정하는데, 이 추정값들을 디지털 트윈(실제 원자로의 상태를 컴퓨터 안에 실시간으로 재현한 가상 모형) 안에서 퍼지 논리로 종합해 하나의 최적 추정값을 도출합니다. 네 개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의 신뢰할 만한 신호로 정리해주는 셈입니다. 그 결과 의사결정자는 어떤 모델을 믿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대신, 실제 대응과 피해 완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위기의 순간, 말 한마디를 검증하는 LLM

세 번째 사례는 언어모델(LLM)을 활용한 감성분석입니다. 사고 상황에서 기관이 내보내는 메시지 한 줄 한 줄은 주민의 행동을 좌우합니다. NRC는 이 위기 소통 메시지를 LLM으로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생성하고 수정하며, 위험소통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자동으로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성과는 Health Physics 학술지에 논문으로 게재될 예정입니다.

이는 단순히 문장을 다듬는 작업이 아닙니다. 공포심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정보는 빠짐없이 전달하는 것, 그리고 그 메시지가 사전에 합의된 위험소통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지를 사람이 일일이 검토할 시간이 없는 위기 상황에서 기계가 먼저 걸러주는 역할입니다.

왜 "결정을 대신하지 않는" 도구로 설계되었는가

이 세 가지 사례를 관통하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위험관리에는 크게 세 가지 접근이 있습니다. 불확실성과 결과가 모두 클 때 일단 과잉 보호조치를 취하는 예방적(Precautionary) 접근,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지역 주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숙의적(Discursive) 접근, 그리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체계적이고 투명하며 반복 가능한 절차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위험정보 기반(Risk-Informed) 접근입니다. NRC는 이 중 위험정보 기반 접근을 비상대응의 미래 방향으로 보고 있습니다.

LSTM 예측, 디지털 트윈의 통합 추정값, LLM의 메시지 검증은 모두 이 위험정보 기반 접근을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도구들이 "대피하라" 혹은 "대피하지 말라"는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델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정보를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해주는 역할에 머무릅니다. 최종 판단은 여전히 의사결정자의 몫이며, 모델은 그 판단이 더 강건하고 근거 있게 내려질 수 있도록 돕는 보조 수단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NRC가 강조하는 결론도 다르지 않습니다. "진정한 비상대비는 이미 발생한 사고에 얼마나 잘 대응했는가가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 상황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로 평가된다"는 것입니다.

AI가 사고를 예측하고 메시지를 검증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사람의 판단이 뒤로 밀려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기계가 정리해준 명료한 정보 위에서, 사람이 더 빠르고 더 근거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다음에 원자력 비상대응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면, "누가 결정했는가"보다 "그 결정이 얼마나 투명하고 반복 가능한 절차를 거쳤는가"를 먼저 물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