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은 죽었다 — Chevron 폐지 후 NRC가 법정에서 살아남는 법

2026. 7. 2. 02:15원자력 뉴스

원자력 발전소의 운영 허가처럼 고도로 기술적인 판단을, 법률 전문가일 뿐인 판사가 다시 심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막연히 불안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는 이미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Nuclear Regulatory Commission)가 현실에서 마주한 상황입니다.

2024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로퍼 브라이트(Loper Bright) 판결은 40년간 유지된 '셰브론 존중(Chevron deference)' 원칙을 폐기했습니다. 셰브론 존중이란, 법률 조문이 모호할 때 그 해석을 전문 지식을 가진 행정기관에 맡기고 법원은 그 해석이 합리적이면 받아들인다는 원칙이었습니다. 이 원칙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제 법원이 "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법원이 직접 판단한다"는 태도로 돌아섰다는 뜻입니다. 2026년 NRC 규제정보콘퍼런스(RIC) 세션에서는 이 변화가 NRC의 인허가 결정에 실제로 어떤 파장을 미치는지가 다뤄졌습니다. 사법부가 기술적 판단에도 존중을 거둔다면, NRC의 결정은 얼마나 취약해질까요.

20분간 이어진 질문, 존중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순간

가장 생생한 답은 2025년 11월까지 NRC 법률고문(solicitor)으로 재직한 앤드루 애버바크(Andrew Averbach)의 경험담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지난해 10월 컬럼비아 특별구 순회항소법원(D.C. Circuit)에서 열린 '비욘드 뉴클리어 대 NRC(Beyond Nuclear v. NRC)' 사건 구두변론에 NRC 측 대리인으로 나섰습니다. 이 사건은 NRC가 원전 운영허가 갱신 심사에서 노후 설비와 기후변화로 인한 사고 위험을 국가환경정책법(NEPA) 절차상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다투는 소송이었습니다.

애버바크는 그 직전 나온 연방대법원의 '세븐 카운티 인프라스트럭처(Seven County Infrastructure)' 판결에 주목했습니다. 이 판결에서 카바노(Kavanaugh) 대법관은 환경영향을 의사결정에 어떻게 반영할지는 행정기관에 폭넓은 재량이 주어져야 한다며, NEPA에 대한 사법심사를 한마디로 "존중(deference)"이라 요약했습니다. 애버바크는 이를 자신의 필승 카드로 여기고 변론 서두에서, 세븐 카운티 판결에 따르면 기관은 기술적 판단뿐 아니라 어떤 정보가 의사결정에 의미 있는지를 정하는 데에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패널 판사 밀렛(Millett)이 곧바로 끼어들었습니다. "그 존중, 이해합니다. 하지만"이라는 말과 함께 이후 약 20분간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NRC가 사고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실제로 충분한 안전 여유를 판단할 근거가 있었는지, 진행 중인 감독 절차에만 기대어 사고의 확률가중 영향이 작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지를 캐물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변론이 열리던 그 시각 대형 허리케인이 플로리다 남부를 덮치고 있어, 기관이 기후변화 관련 사건에 실시간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에 실제 근거가 있는지가 더욱 절실한 질문이 되었습니다. "존중"이라는 단어만으로 심사가 느슨해지는 시대는 끝난 셈입니다.

그래도 살아남을 여지는 있다 — 판례가 말하는 존중의 조건

NRC의 기술적 판단이 법정에서 아무 보호도 못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애버바크는 연방대법원이 볼티모어 가스 앤 일렉트릭(Baltimore Gas and Electric) 판례에서 밝힌 원칙을 인용했습니다. 판사들은 NRC가 "과학의 최전선에서 활동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며, 일반 판사가 전문가들의 기술적 결정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법원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존중은 맹목적 믿음이 아닙니다. 애버바크는 실드 앨로이(Shield Alloy), 뉴욕 대 NRC(New York v. NRC) 등 자신이 직접 다퉜던 소송을 예로 들며, NRC가 스스로 "할 일을 다 했다"고 믿었던 순간에도 법원이 절차상 빠진 단계를 짚어내 첫 시도에서 패소했던 경험을 언급했습니다. 기관은 판단 과정을 법정에 낱낱이 보여줘야 하며, 결론만 던져놓고 전문가니까 믿어달라는 태도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셰브론이 사라진 자리, 오래된 관행도 다시 도마 위에

이 흐름은 NRC 대 텍사스(NRC v. Texas) 사건에서도 드러납니다. 이 사건에서 NRC는 결국 승소했지만,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 허가 본안 판단이 아니라 청원인들이 애초에 기관 심리 절차의 당사자가 되지 못해 연방법원에 소를 제기할 자격이 없었다는 절차적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본안에서는 고서치(Gorsuch) 대법관 등이, NRC가 원자력법(Atomic Energy Act)의 포괄적 위임 조항을 근거로 사용후핵연료의 원자로 외 저장을 허가해 온 40여 년 관행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애버바크는 이 관행이 셰브론 존중이 법률 해석의 틀로 작동하던, 법원이 정부 권한 행사에 지금보다 관대했던 시절 확립된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토머스 바나스키(Thomas I. Vanaskie) 전 제3순회항소법원 판사도 같은 세션에서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그는 로퍼 브라이트 판결로 법원이 이제 원자력법을 NRC의 기술적 전문성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석하게 되어, 소송 위험이 커지고 인허가권자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진단했습니다. NRC 대 텍사스에서 법원이 규제를 지지하면서도 향후 더 공격적인 주(州) 정부발 소송이 성공할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결론은 명확하다, 근거를 보여주지 않으면 존중도 없다

애버바크의 조언은 이 논의를 관통합니다. 로퍼 브라이트 이후에도 과거 셰브론 존중 하에 확립된 법 해석이 즉시 무효가 되진 않지만, 법원이 "더 나은 해석이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임시적 지위에 놓입니다. 따라서 NRC가 원자력법의 포괄적 권한 위임에 근거해 새 규정을 추진할 때는, 그 권한 행사를 법률 조문과 직접 연결 짓고 왜 그 규정이 의회가 부여한 틀에 들어맞는지 법원 앞에서 명확히 설명해야 합니다.

사법부가 기술적 판단에 대한 존중을 완전히 거둔 것은 아닙니다. 볼티모어 가스 판례가 보여주듯 "과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기관"이라는 전제는 여전히 힘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 존중은 이제 조건부입니다. 근거를 낱낱이 보여주고 법률 조문에 정확히 결부시키는 기관만이 법정에서 살아남습니다. 밀렛 판사의 20분은, 존중이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이 변론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