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 02:17ㆍ원자력 뉴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소형모듈원전(SMR, Small Modular Reactor — 기존 대형 원전보다 출력은 작지만 공장에서 미리 만든 모듈을 조립해 짓는 차세대 원전)과 마이크로원자로가 미국 곳곳에서 새로운 부지를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지가 하필 우리 동네라면 어떨까요. "연방정부가 안전하다고 승인했으니 문제없다"는 말과 "우리 지역 일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목소리가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2026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Nuclear Regulatory Commission) 연차 규제정보회의(RIC)의 한 패널 세션에서는, 원자력 르네상스가 본격화될수록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관할권 다툼이 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습니다. 원전 부지 선정과 폐기물 처리를 둘러싸고 주가 연방 규제를 막아설 수 있는지, 이른바 '선점(preemption)' 문제가 원자력 확대의 다음 전쟁터로 떠오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선점이란 무엇이고, 왜 원자력에서 첨예한가
선점(preemption)은 연방법이 특정 영역을 규율하고 있을 때, 주법이나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그 영역에 다른 규정을 두는 것을 무효로 만드는 헌법 원리입니다. 미국 연방헌법의 최고성 조항(Supremacy Clause)에 근거를 둡니다. 원자력에서는 원자력에너지법(Atomic Energy Act)이 방사선 안전 규제 권한을 NRC에 배타적으로 위임하고 있다는 전제가 오랫동안 통용돼 왔습니다. 원자로가 얼마나 안전한지, 어떤 기준으로 운영돼야 하는지는 연방(NRC)의 몫이고, 주정부는 원칙적으로 그 영역에 별도 규제를 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경계가 최근 흔들리고 있습니다. RIC 패널에서 전직 NRC 법률고문(solicitor) 앤드루 아버바흐(Andrew Averbach)는 "선점 문제는 NRC에 있는 내내 씨름했던 문제이고 계속 이슈가 되고 있다"며, 원자력 르네상스가 본격화될수록 "더 많은 주가 건설되는 시설에 우려를 갖게 될 것이고, 앞으로 소송을 위한 비옥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버지니아 우라늄 판례 — 선점의 범위가 좁아진 순간
출발점은 '버지니아 우라늄(Virginia Uranium)' 판례입니다. 아버바흐에 따르면 "NRC는 이 사건에서 승소하지 못했고, 연방대법원이 선점에 더 좁은 시각을 취한 것도 사실"입니다. 주정부가 원자력에너지법이 다루지 않는 영역, 예컨대 우라늄 채굴 자체를 금지하는 것처럼 NRC가 직접 규제하지 않는 경제적·환경적 판단에 대해서는 독자적으로 규제할 여지가 있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아버바흐는 곧바로 단서를 달았습니다. "선점 주장은 문제가 되는 주법이나 지방자치단체 규정이 NRC 자체가 직접 규제하는 대상을 규제하는 한, 버지니아 우라늄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즉 이 판례는 선점의 범위를 좁혔을 뿐 없앤 것이 아닙니다. 원자로 안전성, 방사성 폐기물 처분처럼 NRC가 라이선스로 직접 규율하는 영역에서는 주법이 여전히 연방법에 밀려날 수 있습니다.
뉴욕주 허드슨강 방류 금지법 — 선점이 살아있다는 증거
이 원칙이 실제로 작동한 사례가 있습니다. 뉴욕주는 폐쇄된 인디언포인트(Indian Point) 원자력발전소의 폐기물을 허드슨강(Hudson River)에 방류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주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방류는 NRC 라이선스로 이미 승인된 행위였습니다. 뉴욕 남부지방법원(Southern District of New York)은 이 주법이 NRC 라이선스에 의해 선점된다고 판단하며 무효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아버바흐는 "그 사건은 현재 제2순회항소법원(Second Circuit)에 계류 중이며, 항소심에서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이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직관적으로 반대할 만한 사안—강에 폐기물을 흘려보낸다는 것—임에도 법원이 연방 라이선스의 손을 들어줬다는 데 있습니다. NRC가 이미 안전하다고 판단해 라이선스를 내준 행위라면, 주정부가 사후에 이를 금지해도 연방 규제가 우선한다는 논리입니다. 아버바흐는 이런 유형의 선점 소송이 앞으로도 다수 제기될 것이며 "면허취득자(licensee)가 주정부를 상대로 승소하는 사례가 상당수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SMR·데이터센터 붐이 이 싸움을 더 키우는 이유
왜 하필 지금 이 문제가 부각될까요. 같은 세션에서 연방항소법원 판사 출신 토머스 배나스키(Thomas I. Vanaskie)는 다른 각도에서 위험 신호를 짚었습니다. 그는 "NRC 대 텍사스(NRC versus Texas)" 사건에서 법원이 임시저장시설(Interim Storage Partners)에 대한 NRC의 규제 권한은 인정했지만, "더 공격적인 주정부의 도전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SMR과 마이크로원자로를 둘러싸고, NRC가 법정 권한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주장에 기반한 주정부의 도전을 다뤄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2024년 연방대법원의 '로퍼 브라이트(Loper Bright)' 판결이 있습니다. 법 해석이 모호할 때 법원이 전문 행정기관의 판단을 존중해 온 40년 관행인 셰브런 존중(Chevron deference)을 뒤집고, "법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은 법원의 의무"라는 원칙을 재확인한 판결입니다. 배나스키의 표현을 빌리면 "로퍼 브라이트는 해석 권한을 전문성에서 일반 판사에게로 옮겨, 모든 규칙 제정에 대한 이해관계를 높였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NRC가 안전하다고 판단했으니 법원도 존중한다"는 논리가 통했지만, 이제는 법원이 법 조문 자체를 꼼꼼히 따지면서 NRC 권한 범위를 좁게 해석할 여지가 커졌습니다. 배나스키는 "NRC 대 텍사스 사건에서 NRC가 이겼음에도, 법원의 논리는 셰브런 이후 환경—법 조문이 통제하고 기관 해석에 특별한 존중이 없는 환경—을 반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첨단 원자로와 연료주기 시설에 관한 주요 NRC 라이선스 결정이 앞으로 주정부 주도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데이터센터發 전력 수요와 원자력 확대 정책이 겹치며 긴장은 더 커집니다. 아버바흐는 "의회와 행정부 모두 원자력 발전량을 늘리고 새 전력원을 가능한 한 빨리 온라인화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면서도, "규제 절차를 걸림돌로만 취급하는 태도는 오히려 원자력 르네상스를 지연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속도를 내려다 절차를 부실하게 밟으면 법정에서 더 크게 발목 잡힐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규제권 다툼은 어디로 향하는가
버지니아 우라늄 판례로 연방 선점의 범위는 분명히 좁아졌습니다. 하지만 NRC가 라이선스로 직접 규율하는 영역—원자로 안전 기준, 방사성 폐기물 처분 방식 등—에서는 뉴욕주 허드슨강 사례처럼 연방 규제가 여전히 우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그 경계선이 항상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게다가 로퍼 브라이트 판결 이후 법원이 행정기관의 전문적 판단을 예전만큼 존중하지 않게 되면서, 주정부 입장에서는 소송을 걸어볼 유인이 커졌습니다.
SMR·데이터센터發 원전 붐이 계속되는 한, 이런 유형의 소송은 줄기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원전을 더 빨리, 더 많은 곳에 지으려는 힘과 그 부지를 둘러싼 지역의 발언권을 지키려는 힘이 팽팽히 맞서는 이 지형도를 지켜보는 것이, 앞으로 원자력 산업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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