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 13:02ㆍ원자력 뉴스
SMR(소형모듈원자로, Small Modular Reactor)이 여러 나라에 보급되려면 각 나라 규제기관에서 따로 인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같은 설계라도 나라마다 심사 기준이 다르면 설계를 조금씩 바꿔야 하고, 그때마다 비용과 시간이 늘어납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하나의 인허가가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추진하는 GFARR(Global Framework for Advanced Reactor Reviews, 선진원자로 규제심사 국제 프레임워크)은 이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목표는 많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과 결이 다릅니다.

GFARR은 왜 '하나의 인허가'가 아닌가
GFARR의 지향점은 '모든 나라를 위한 하나의 인허가(one license for all countries)'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고 재사용 가능한 하나의 심사 근거(one credible and reusable review basis)'입니다. 이 구분이 프레임워크 전체의 설계 철학을 가릅니다.
각국의 원자력 인허가는 자국 법령과 심사관행에 뿌리를 두고, 최종 판단과 책임은 여전히 각국 규제기관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GFARR은 이 구조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대신 여러 규제기관이 공통으로 활용할 심사범위, 심사기준, 지침과 템플릿을 만들어 같은 설계를 나라마다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는 중복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규제 주권은 그대로 두되, 그 주권을 행사할 때 참고할 공통의 기술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식입니다.
GFARR은 2022년 IAEA가 출범시킨 상위 구상 NHSI(Nuclear Harmonization and Standardization Initiative, 원자력 조화·표준화 구상)의 한 축에서 나옵니다. NHSI는 선진원자로와 SMR의 다국가 보급을 지원하는 다자 협력 플랫폼으로, 규제기관 간 협력을 다루는 Regulatory Track(장기적으로 GFARR 수립이 목표)과 산업계 표준 조화를 다루는 Industry Track으로 나뉩니다. GFARR은 Regulatory Track의 장기 목표이자, Phase I(~2024) 성과물을 통합하는 상위 체계입니다.
여러 갈래의 검토경로
GFARR은 모든 나라가 같은 방식으로 참여하도록 강제하지 않습니다. 국가별 법체계와 규제역량 차이를 인정하고 복수의 검토경로를 제공합니다.
National review는 자국 규제기관이 GFARR 기준을 보조적으로 참고하는 방식입니다. Collaborative review(협력검토)는 각국이 독립적으로 심사하되 정보와 쟁점을 공유하고, Joint review(공동검토)는 공동팀을 꾸려 함께 검토해 공동 결과를 도출합니다. Leveraging(활용)은 이미 GFARR 절차로 나온 심사결과를 다른 나라가 활용하는 것으로, 중복검토를 줄이는 데 가장 직접적인 경로입니다.
이 네 경로는 우열 관계가 아니라 나라별 상황에 맞춘 선택지입니다. 규제역량이 충분한 나라는 참고만 할 수도, 신규 도입국은 joint review나 leveraging으로 검증된 결과에 기댈 수도 있습니다. 초기 GFARR의 기술 범위도 설계기준, 원자로 노심·연료, 공학적 안전계통, 계측제어, 안전해석 등 사전인허가 핵심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다져나갑니다.

2028년 첫 문서까지, EAGLES-300 파일럿
GFARR은 완성된 규정집이 아니라 진행형 프레임워크입니다. 2026년은 기술범위와 심사경로의 뼈대를 준비하고, 2027년에는 지침과 템플릿을 구체화합니다. 2028년에 최초의 공식 문서가 완성되며, 이후 2028~2033년 약 5년간 pilot testing(파일럿 시험)으로 실제 심사에 적용해 효과를 측정합니다. 2033~2035년에는 그 결과를 반영해 문서를 개정하고 범위를 확장합니다. 파일럿에만 5년을 배정한 것은 GFARR이 문서 완성이 아니라 실제 심사 현장의 검증으로 힘을 갖는 체계임을 보여줍니다.
이 파일럿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사례가 EAGLES-300입니다. lead-cooled(납냉각) 방식의 Generation IV(4세대) SMR 계열인 EAGLES-300은 벨기에·이탈리아·루마니아 규제기관과 유럽 기술기관이 참여하는 국제 사전인허가 협력 사례로, GFARR Blueprint(청사진 문서)는 2025~2027년의 이 공동검토 경험을 향후 GFARR에 직접 반영할 계획입니다. 기존 경수로 안전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lead-cooled 기술은, GFARR이 다양한 원자로 기술을 포괄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됩니다.
누구에게 어떤 이득이, 어떤 한계가 있나
GFARR이 자리를 잡으면 설계자와 투자자는 여러 나라의 규제 기대 수준을 미리 파악해 인허가 리스크와 자금조달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규제기관은 제한된 전문인력을 공동 활용하며 심사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원전을 처음 도입하는 나라는 검증된 기준과 템플릿으로 자체 규제역량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다만 지진, 홍수, 냉각수 확보 같은 부지특정성 문제는 여전히 나라와 부지별로 따로 판단해야 하고, 보안·방호 설계처럼 정보 민감성이 높은 영역은 공개적 공유에 제약이 따릅니다. 고온가스로, 용융염로, 액체금속로 등은 안전성 입증 구조 자체가 달라 기존 기준을 그대로 옮기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재사용 가능한 근거라는 발상의 의미
GFARR을 국제 인허가 제도로 오해하면, 2028년 이후에도 각국이 여전히 따로 심사하는 모습을 보고 "달라진 게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재사용 가능한 심사 근거'로 이해하면 평가 기준이 달라집니다. 최종 판단은 각자 내리되,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새로 검토하지 않아도 되는 공통의 발판이 얼마나 튼튼한가가 핵심입니다. 지금은 기초를 다지는 단계이지만, EAGLES-300 같은 파일럿 사례를 통해 이 발상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앞으로 하나씩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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