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이 다시 경제성을 가지려면, 건설비는 얼마까지 낮아져야 할까

2026. 7. 3. 00:35원자력 뉴스

최근 몇 년간 해외 대형 원전 프로젝트 소식을 접하면 "원전은 결국 너무 비싸서 못 짓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된 신규 원전 프로젝트들은 애초 계획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갔고, 이 소식이 반복해서 전해지다 보니 원전 경제성이라는 말 자체가 회의적으로 들리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숫자로 답하려는 시도가 최근 스위스에서 나왔습니다. "건설비가 정확히 얼마 밑으로 떨어져야 원전이 다시 경제성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연구자들이 구체적인 임계치를 제시한 것입니다.

스위스는 왜 지금 이 계산을 시작했나

스위스는 2018년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하는 조항을 법으로 정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스위스 연방정부가 이 금지 조항을 폐지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고, 2026년 8월 의회 심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원전을 다시 지을 수 있는 길을 열 것인가를 논의하는 시점에서, "그렇다면 실제로 지어질 만한 경제적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은 셈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취리히연방공대(ETH Zurich)와 폴 셰러 연구소(Paul Scherrer Institute, PSI)가 19명의 에너지 전문가와 함께 백서를 작성했습니다. 「Nuclear Power and the Future Swiss Energy System」이라는 제목의 이 백서는 2026년 6월 29일 발표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조건에서 스위스 신규원전 건설은 경제성이 없으나, 국가 보조·리스크 완화·건설비 절감이 병행되면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즉 지금 이대로는 어렵지만, 조건이 맞으면 가능하다는 것이며, 연구진은 바로 그 "조건"을 숫자로 구체화했습니다.

kW당 8,000스위스프랑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나왔나

연구팀은 4개의 서로 다른 에너지시스템 모델을 사용해, 2050년까지 스위스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가장 비용효율적인 발전원 조합을 계산했습니다. 여기서 핵심 변수로 삼은 것이 원전 건설비, 정확히는 발전 설비 1킬로와트(kW, 시간당 1,000와트의 전력을 낼 수 있는 발전 능력의 단위)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이었습니다.

먼저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실제로 관측된 수준인 kW당 1만2,000스위스프랑을 가정하자, 4개 모델 중 3개에서 신규 원전은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국가 보조금을 주고, 자본비용(투자자가 요구하는 수익률)을 8%에서 5%로 낮춰주는 리스크 완화책까지 동원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면 건설비가 kW당 5,000스위스프랑까지 낮아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 경우 2.6~4.9기가와트(GW, 100만 kW) 규모의 신규 원전이 채산성을 갖추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 지점인 kW당 8,000스위스프랑 수준에서는, 4개 모델 중 2개가 2GW 규모의 신규 원전 도입을 예측했습니다. 참고로 현재 스위스에 가동 중인 Beznau·Gösgen·Leibstadt 3개 발전소 4기의 총 설비용량이 약 3GW인 점을 고려하면, 이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닙니다.

왜 하필 이 숫자가 기준이 되었나

연구 저자 중 한 명인 PSI 원자력공학과학센터장 Andreas Pautz 교수는 이 임계치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건설비가 신규원전 경제성에 결정적 요인입니다. 최근 미국·유럽에서 나타난 高건설비는 초기 프로젝트 특유의 현상으로, 제작사가 이러한 비용초과의 교훈을 학습해 향후 원전 건설비를 kW당 8,000스위스프랑 수준으로 억제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8,000스위스프랑이라는 숫자는 이상적인 목표치가 아니라, 최근 대형 원전 프로젝트들이 겪은 초기 비용 초과가 반복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도달 가능한 수준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스위스원자력포럼(Swiss Nuclear Forum) 역시 이번 연구를 두고 다음과 같이 평가하며 환영했습니다.

"신규원전 반대가 아니라 특정 경제·규제 조건 하에서 비용최적화된 탄소중립 에너지시스템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원전 없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

한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연구는 스위스가 신규 원전 없이도 태양광·수력 등 기존·계획된 기술만으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그 경우에도 겨울철 전력 수입 의존은 계속된다는 점을 함께 지적했는데, 모델별로 순수입 규모가 5.4~12.4테라와트시(TWh)에 이릅니다. 즉 원전이 없어도 탄소중립은 가능하지만, 겨울철 전력을 이웃 나라에서 계속 사와야 한다는 것이 함께 제시된 그림입니다. 신규 원전이라는 선택지는 이 수입 의존을 줄이는 대안 중 하나로 검토되는 셈입니다.

이번 연구가 제시한 kW당 8,000스위스프랑이라는 기준선은 스위스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국가 보조와 리스크 완화가 병행되어야만 경제성이 확보된다는 결론은 독일의 원전 재가동 논의, 벨기에·이탈리아 등 다른 서유럽 국가의 원전 정책 논쟁에서도 반복될 수 있는 프레임이기 때문입니다. 건설비를 둘러싼 숫자 하나가, 앞으로 유럽 여러 나라의 원전 정책 논의에서 계속 소환될 가능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