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도 못 받았는데 왜 원전 부지를 찾아 나섰을까

2026. 7. 3. 00:42원자력 뉴스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사업은 접는 것이 상식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미국 애리조나주의 3대 전력회사가 정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신규 원전 부지 조사비용을 지원받으려 미국 에너지부(DOE)에 보조금을 신청했다가 떨어졌는데도, 자기 돈을 들여 부지 찾기에 나선 것입니다. 언뜻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결정 뒤에는 전력수요라는 냉정한 숫자와, 앞으로 원자로를 고를 때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두 가지 현실적 제약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보조금 없이도 자체 예산을 쓴 이유

애리조나주의 Arizona Public Service(APS), Salt River Project(SRP), Tucson Electric Power(TEP) 세 회사는 2026년 7월 1일을 전후해 신규 원전 부지를 찾기 위한 예비 조사, 이른바 부지선정조사(siting study)에 착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소스 문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사는 2025년 초 미국 에너지부(DOE)에 조사비용 지원을 위한 보조금을 신청했으나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 예산으로 6개월간의 단계적 스크리닝을 진행하기로 했다.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조사를 강행했다는 점입니다. 그 배경에는 이미 가동 중인 원전이 있습니다.

APS·SRP가 공동 소유한 Palo Verde 발전소는 애리조나주 전력의 약 4분의 1을 공급하는 미국 내 발전용량 2위 원전이다.

 

애리조나 전력의 4분의 1을 이미 원전 하나가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이 지역에서 원자력이 낯선 선택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3사 모두 2025년에 최대전력수요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인구와 경제가 계속 늘어나는 지역에서, 이미 검증된 발전원을 다시 검토하는 것은 보조금 여부와 무관하게 필요한 판단이었던 셈입니다. 다만 이번 조사는 첫 단계일 뿐입니다. 3사는 舊석탄화력 발전소 부지를 포함해 주 전역의 후보지를 업계 표준 방법론으로 단계적으로 걸러내고, 하반기에는 지역사회 설명회를 거쳐 조기부지허가(Early Site Permit, ESP) 신청 여부를 판단할 계획입니다. 신규 원전을 지을지, 짓는다면 어떤 노형을 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SB1418 거부권, 무엇이 막혔나

원전 부지 확보와 별개로, 애리조나 주의회에서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존 대형 원전보다 출력이 작고 공장에서 모듈 단위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차세대 원자로)의 인허가 문턱을 낮추려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무산이었습니다.

SMR 관련 인허가 문턱을 낮추려던 주 의회 법안(SB1418, 카운티의 SMR 부지 승인 저지 권한 제한 및 인허가위원회 관할 기준 상향)은 케이티 홉스 주지사가 2026년 6월 19일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되었다.

 

이 법안은 카운티(우리로 치면 기초자치단체에 가까운 행정단위) 정부가 SMR 부지 승인을 가로막을 수 있는 권한을 제한하고, 대신 주 인허가위원회가 더 폭넓게 관할하도록 기준을 바꾸려던 것이었습니다. 즉 지역 단위의 반대가 SMR 건설을 저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법안이었는데, 주지사가 서명을 거부하면서 기존처럼 카운티 차원의 승인 절차가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는 3사가 향후 SMR을 노형으로 선택할 경우, 대형원전보다 오히려 지역 인허가 단계에서 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원자로 자체의 기술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누가 부지 승인 권한을 쥐고 있느냐는 정치적 변수가 노형 선택에 실질적인 무게로 작용하는 대목입니다.

콜로라도강 냉각수, 왜 발목을 잡나

원전은 원자로에서 발생한 열로 증기를 만들어 터빈을 돌리고, 그 증기를 다시 물로 되돌리기 위해 대량의 냉각수가 필요합니다. 애리조나처럼 건조한 지역에서는 이 물 확보 자체가 만만치 않은 과제입니다.

신규 원전 부지 확보 과정에서는 콜로라도강 취수량 감소에 따른 냉각수 확보 문제도 주요 장애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콜로라도강은 미국 서남부 여러 주가 공유하는 수자원으로, 최근 몇 년간 가뭄과 과다 취수로 유량이 줄어들고 있는 강입니다. 이 강에서 끌어올 수 있는 물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은, 냉각수를 많이 쓰는 대형원전 노형에는 불리한 조건이 하나 더 생긴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소스 문서는 이 문제를 애리조나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라 미국 서남부 건조지역 전체의 공통 리스크로 짚고 있습니다.

냉각수 확보 제약은 서남부 건조지역 신규원전 프로젝트의 공통 리스크 요인으로, 재활용수·저품질 지하수 활용 등 대체 냉각기술에 대한 수요가 병행 확대될 전망이다.

 

재활용수나 저품질 지하수 같은 대체 냉각기술에 대한 수요가 함께 커질 것이라는 전망은, 앞으로 이 지역에서 원자로를 고를 때 냉각 방식이 출력이나 안전성 못지않게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노형 선택, 아직 열린 질문

정리하면 애리조나 3사는 아직 신규 원전 건설 자체를 확정하지 않았고, SMR과 대형원전 중 어느 쪽을 택할지도 결론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조사 착수 자체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늘어나는 전력수요 앞에서, 보조금이라는 외부 변수보다 자체 판단이 우선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SB1418 거부권과 콜로라도강 냉각수 제약이라는 두 가지 현실은, 앞으로 노형을 고를 때 기술적 성능표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지역 인허가 권한을 누가 쥐는지, 물을 어디서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가 원자로 선택의 실질적인 조건이 되는 셈입니다. 조사 결과가 나오고 후보 부지가 좁혀질 하반기, 그리고 실제 노형이 저울질될 시점을 지켜볼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