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3. 00:37ㆍ원자력 뉴스
"스코틀랜드에도 원전을 지을 수 있는 좋은 땅이 있다는데, 왜 이야기만 나오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을까요?" 최근 영국발 뉴스를 접한 분들이라면 이런 의문이 드셨을 겁니다.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평가까지 나왔는데도 첫 삽조차 뜨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 답답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기술은 준비됐다는 공식 평가가 나왔습니다
2026년 7월 1일, 영국 정부의 원자력 개발 전담기구인 GBE-N(Great British Energy-Nuclear)이 스코틀랜드 내 신규원전 후보부지에 대한 기술평가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영국 에너지장관이 2025년 가을 GBE-N에 의뢰한 이번 연구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존 대형원전보다 출력과 크기를 줄여 공장에서 부품 단위로 제작·조립하는 원자로)와 대형원전을 모두 포괄해 후보지를 기술적 관점에서 평가한 것입니다.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스코틀랜드가 "높은 잠재력(high potential)"을 지닌 지역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GBE-N은 이 결과를 발표하면서 중요한 단서를 함께 달았습니다.
GBE-N은 이번 보고서가 제시한 부지가 전체 후보지의 완전한 목록이 아니며, 특정 부지의 식별이 곧 개발 승인이나 개발의도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즉 "지을 수 있는 땅"이라는 평가와 "실제로 짓는다"는 결정 사이에는 아직 큰 간극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스코틀랜드가 품고 있는 후보지들
보고서는 기존 원자력·에너지 발전 관련 부지, 브라운필드 부지(과거 산업·발전 시설이 있었던 땅으로, 기반 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어 재개발에 유리한 부지), 그리고 미개발지 중 개발지정구역이나 기존 인프라 인접지역을 중점적으로 검토했습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지역이 식별되었습니다.
- Torness(East Lothian): 스코틀랜드에 남은 유일한 가동 원전으로, 2030년 폐쇄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 Dounreay(Caithness): 과거 원자력 연구·시험로가 있던 지역입니다.
- Hunterston(North Ayrshire): 舊원전 부지입니다.
이 외에도 Firth of Forth 하구 및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 일대에서 추가 잠재부지가 식별되었습니다. 눈에 띄는 공통점은 셋 중 둘이 이미 원자력 시설이 있었거나 있는 자리라는 점입니다. 냉각수 확보, 송전망 연결, 부지 안전성 데이터 등 신규 부지를 처음부터 조사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개발이 가능하다는 실용적 이유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2030년, Torness가 문을 닫으면 남는 자리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Torness의 위치입니다. Torness는 현재 스코틀랜드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가동 원전이면서, 동시에 이번 GBE-N 평가에서 "높은 잠재력" 부지로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발전소는 2030년 폐쇄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스코틀랜드가 앞으로 5년 안에 원자력발전 공백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발전소가 문을 닫는다고 해서 부지 자체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송전선로, 냉각 취수 설비, 도로 등 기반 인프라가 그대로 남아 있는 브라운필드 부지라는 점에서, 향후 정치적 여건이 바뀔 경우 같은 자리에서 신속하게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여건이 바뀐다면"이라는 전제가 붙는 이야기입니다. 그 전제가 지금 충족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막고 있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입니다
원자력 정책은 영국 중앙정부의 소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발전소를 지으려면 해당 부지의 계획 승인(planning consent)을 받아야 하고, 이 권한은 스코틀랜드 정부에 있습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정부(SNP)는 신규원전에 대한 계획 승인을 거부해 온 기존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가 잉글랜드·웨일스에서는 Sizewell C 승인, 웨일스 SMR 추진 등으로 원전 확대에 속도를 내는 동안, 스코틀랜드는 기술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도 정책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격차는 고용 통계에서도 드러납니다. 영국 원자력산업협회(NIA) 최고경영자 Tom Greatrex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신규원전 프로젝트에 필요한 부지·기술인력·수십 년간의 엔지니어링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강력한 지역사회 지지도 확보하고 있다. 잉글랜드·웨일스에 투입되는 것과 동일한 투자·기회가 스코틀랜드에도 제공되어야 한다."
NIA에 따르면 영국 원자력 산업은 현재 사상 최대인 9만8,000명을 고용하고 있고, 지난 1년간 1만1,0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신규 프로젝트 부재로 스코틀랜드는 영국 내에서 가장 낮은 고용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지도 있고, 인력도 있고, 기술 평가에서도 합격점을 받았지만, 정작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할 결정 하나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남는 질문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합니다.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데 필요한 것은 안전한 땅과 검증된 기술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땅에서 실제로 삽을 뜰 수 있게 하는 정치적 합의가 함께 필요합니다. 스코틀랜드의 후보지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짓지는 못하지만 지을 수는 있는" 상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Torness가 문을 닫는 2030년이 다가올수록, 기술 평가와 정치적 결정 사이의 이 간극이 어떻게 좁혀지는지가 스코틀랜드 에너지 정책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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