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8. 02:37ㆍ원자력 뉴스
달에 기지를 짓는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장기간 머물고, 과학 장비를 가동하고, 탐사 로버를 충전합니다. 전기가 필요합니다. 지구에서라면 태양광 패널을 펼치면 됩니다. 그런데 달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달의 밤은 지구 기준으로 약 14일 동안 지속됩니다. 그 2주 동안 표면 온도는 영하 170도까지 내려갑니다. 태양광 패널은 아무 역할을 못합니다. 배터리만으로 2주를 버티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달 남극처럼 영구적으로 햇빛이 닿지 않는 지역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그래서 NASA와 미국 에너지부(DOE)가 달에 원자로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2026년 1월, 두 기관은 2030년 전후 달 표면 원자로 실증을 공식 목표로 재확인했습니다.
달에서 원자로가 필요한 이유 — 2주짜리 밤의 문제
달 기지에 필요한 전력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사람이 숨 쉬는 공기를 만들고, 얼음에서 물을 뽑고, 생활 공간의 온도를 유지하고, 통신 장비를 돌리고, 과학 실험을 수행합니다. 이 모든 것에 전기가 필요합니다.
NASA가 목표로 하는 달 표면 원자로의 발전 용량은 초기 40킬로와트(kWe) 수준입니다. 일반 가정용 에어컨 한 대가 약 1~2킬로와트를 쓰니, 소규모 연구 기지 전체에 필요한 전력을 충당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2030년대에는 100킬로와트 이상으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달 표면 전력망은 원자로 혼자 감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달의 낮에는 태양광이 보조하고, 단기 저장에는 배터리와 연료전지가 쓰이며, 원자로는 기저 부하(Base Load), 즉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정하게 공급해야 하는 전력을 담당하는 구조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FSP란 무엇인가요? — 달 표면 원자로의 개념과 구조
달 표면 원자로를 부르는 공식 명칭은 FSP(Fission Surface Power, 핵분열 표면 전력)입니다. 핵분열, 즉 우라늄 원자가 쪼개질 때 나오는 열로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를 달 기지에 공급하는 시스템입니다.
2022년 NASA는 세 개의 컨소시엄에 개념 설계 계약을 주었습니다. 록히드 마틴/BWXT, 웨스팅하우스, 그리고 IX(Intuitive Machines + X-energy) 조합이었습니다. 항공우주 시스템 통합 역량과 원자로 설계·제작 역량을 묶은 구조입니다.
FSP의 기술적 핵심 과제는 '열을 어떻게 버리느냐'입니다. 지구에서는 공기나 물로 열을 식힐 수 있지만, 달 표면의 진공에서는 그게 안 됩니다. 열을 우주 공간으로 방출하는 방열판(Radiator)이 필요한데, 이 방열판의 크기와 무게가 시스템 전체 설계를 좌우합니다. 달 표면의 먼지(레골리스)가 방열판에 달라붙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원자력은 전기만 만들지 않습니다 — 우주 추진으로도
달 표면 원자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기술로 연결됩니다. 원자로를 달 위에 세우는 것과, 원자로를 우주선에 달아 추진력을 얻는 것은 상당 부분 같은 기술 기반을 씁니다.
NEP(Nuclear Electric Propulsion, 핵전기추진)는 원자로가 만든 전기로 이온 추진기를 돌리는 방식입니다. 한 번에 강한 추진력을 내지는 못하지만, 오랜 시간 조금씩 밀면서 매우 높은 속도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화성 화물 사전 배치, 외행성 탐사, 소행성 탐사 등 긴 여정에 유리합니다.
NTP(Nuclear Thermal Propulsion, 핵열추진)는 원자로의 열로 수소를 직접 가열해 노즐로 분출하는 방식입니다. 화학 연료 로켓보다 두 배 가까운 효율을 낼 수 있어, 유인 화성 임무에서 비행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미국은 현재 FSP와 NEP에 필요한 원자로·연료·전력변환 기술을 먼저 함께 개발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습니다. 달 표면 발전과 우주 추진, 두 목적을 하나의 기술 플랫폼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2026년 4월 발표된 NSTM-3(National Space Technology and Missions-3)는 이 방향을 정책 차원에서 못 박았습니다.
미국만 뛰는 게 아닙니다 — 달 전력을 둘러싼 국제 경쟁
달에 원자로를 먼저 세우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단순히 전기를 만드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달 남극에는 영구음영지역, 즉 태양빛이 영원히 닿지 않는 크레이터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물 얼음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은 식수가 되고, 전기분해하면 산소와 수소가 됩니다. 산소는 호흡에, 수소는 로켓 연료에 쓸 수 있습니다. 달에서 연료를 만들 수 있다면, 달이 심우주 탐사의 보급 기지가 됩니다. 원자로로 전기를 공급하지 않고서는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합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ILRS(International Lunar Research Station)라는 이름으로 달 남극 기지 구축을 추진 중입니다. 2035년 전후 달 표면 핵전원 구축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영국은 Rolls-Royce가 달 표면 소형 원자로 설계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달에 먼저 안정적인 전력 인프라를 구축한 나라가 달 남극의 자원 탐사, 통신 거점, 물류 기지를 선점하게 됩니다. 원자로 하나가 그 경쟁의 핵심 자산이 됩니다.
2030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가깝습니다. 미국은 달 표면에 원자로를 세우기 위한 설계 경쟁을 이미 시작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그 뒤를 쫓고 있습니다. 달을 탐사한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달에서 전기를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 하는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이 원자력이라는 점만큼은 지구와 달이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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