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된 연구로가 처음으로 전기를 만들다.

2026. 5. 8. 07:39원자력 뉴스

원자력 하면 대형 발전소, 수백 메가와트의 전기, 그리고 복잡한 안전 규제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 인식 속에서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작은 연구용 원자로가 처음으로 전기를 만들었다"는 소식은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전기로 AI 서버를 돌린다고 합니다. 과연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찬찬히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TRIGA 연구로란 무엇인가

유타 대학교(University of Utah)의 TRIGA Mark I 연구로는 1975년에 건설된 수조형(pool-type) 연구로입니다. TRIGA는 Training, Research, Isotopes, General Atomics의 약자로, 교육·연구·동위원소 생산을 목적으로 전 세계 대학과 연구기관에 널리 보급된 연구로 계열입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이런 연구로를 전력생산용 원자로(power reactor)와 구분해 비발전용 원자로(non-power reactor)로 분류합니다. 쉽게 말해, 전기를 만드는 것이 본래 목적이 아닌 시설이라는 뜻입니다.

유타 대학교의 TRIGA는 열출력 100 kWth(킬로와트 열출력) 수준의 소형 시설입니다. 지난 50년 동안 이 로는 중성자를 이용한 연구,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학생 교육에 활용되어 왔지만, 단 한 번도 전기를 생산한 적이 없었습니다. 연구로 관리자 Ted Goodell은 "아는 범위 내에서 대학 연구로가 전기를 생산하는 첫 번째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50년의 운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인 셈입니다.

어떻게 전기를 만드는가 — 버려지던 열의 재발견

이번 실증(proof-of-concept)의 핵심은 Elemental Nuclear Energy Corp.이 개발한 저온 헬륨 기반 소형 브레이턴 사이클(compact Brayton Cycle) 전력변환장치입니다. 브레이턴 사이클은 가스 터빈의 작동 원리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헬륨을 작동 유체로 사용합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연구로는 운전 중 냉각계통을 통해 열을 외부로 배출합니다. 지금까지 이 열은 사실상 버려졌습니다. 이번 장치는 그 냉각수로부터 약 50 kWth의 열을 회수해 헬륨 터빈을 돌리는 데 사용합니다. 터빈 출력은 약 13 kW이며, 계통 손실을 제외한 순 전기 출력 목표는 2~3 kWe(킬로와트 전기출력)입니다.

이 숫자는 분명 크지 않습니다. 수십~수백 메가와트(MWe)를 소비하는 대형 AI 데이터센터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번 실증은 상업용 원자로의 경제성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원리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이 실험은 유타 대학교 공과대학 핵공학 프로그램, Elemental Nuclear Energy Corp., 유타 대학교 과학계산·이미징연구소(Scientific Computing and Imaging Institute)가 협력해 2026년 여름 진행할 예정입니다.

왜 하필 AI GPU 노드인가

생산된 전기가 고성능 GPU 노드에서 실제 AI 워크로드(live AI workload)를 실행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은,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서는 맥락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DOE)와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BNL) 자료에 따르면,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2014년 58 TWh에서 2023년 176 TWh로 증가했습니다. 2028년에는 325~580 TWh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이는 2023년 미국 전체 전력 소비의 약 4.4%를 차지하던 데이터센터 비중이 2028년에는 최대 12%에 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AI 연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탄소 배출 문제가 데이터센터 운영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원자력은 탄소 배출 없이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대형 그리드에 연결하지 않고 현장(onsite)에서 직접 전력을 생산·공급하는 방식, 이른바 '온사이트 클린 펌 파워(onsite clean firm power)' 개념이 빅테크 기업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번 유타 대학교 실증은 바로 그 논의가 실험실 수준에서 실제 시스템으로 첫발을 내딛는 장면입니다. 3 kWe 규모의 실증이 그 로드맵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기술 검증의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작은 전기가 열어가는 큰 질문

50년 동안 전기를 만든 적 없던 연구로가 처음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로 AI 서버를 돌리는 장면은 기술적 스펙터클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담고 있습니다. 버려지던 열을 회수해 유용한 에너지로 바꾸는 것, 연구·교육 시설이 에너지 기술 혁신의 플랫폼이 되는 것, 그리고 원자력과 AI 인프라가 처음으로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것.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2~3 kWe는 작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술의 상업화는 누군가가 처음으로 그것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에서 시작됩니다. 원자력이 AI 시대의 에너지 문제를 푸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 첫 번째 답이 유타 대학교 캠퍼스의 작은 수조 안에서 나오려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