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RC에 거절당한 원자로 회사가 4년 만에 설계기준 승인 획득: Oklo Aurora

2026. 5. 9. 00:48원자력 뉴스

2022년 1월, 미국 원자력 스타트업 Oklo는 뼈아픈 통보를 받았습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자사의 Aurora 원자로 건설·운전 통합 허가 신청서를 반려한 것입니다. "안전하지 않다"는 판정이 아니었습니다. "정보가 부족해서 심사를 계속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더 냉혹한 결정이었습니다. 합격·불합격을 판단하기도 전에 시험장에서 쫓겨난 셈이었으니까요.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26년 5월 6일, Oklo는 같은 NRC로부터 Aurora 설계의 핵심 설계기준 보고서 승인을 받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그것도 통상 심사기간의 절반 미만이라는 '가속 심사'로. 무엇이 바뀐 것일까요?

거절의 진짜 의미 — 안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NRC의 2022년 거절을 두고 많은 언론이 "원자력 스타트업의 좌절"로 보도했지만, 규제 전문가의 시각에서 이 결정은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NRC는 Aurora 설계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사고 시 방사선 영향 분석, 안전계통 분류 등 몇 가지 핵심 기술 주제에 대해 제출된 정보가 심사를 진행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쉽게 말하면, 답안지의 답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답안지 자체가 너무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판정을 "without prejudice(편견 없이)"라고 부릅니다. "이 설계는 영구히 거절"이 아니라 "충분한 정보를 갖추면 다시 신청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수년간의 준비와 투자가 뒤집힌 것이었습니다.

전략의 전환 — "한 방"에서 "단계별 확정"으로

2022년 거절 이후 Oklo가 선택한 길은 단순히 신청서를 보완해 재제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규제 접근 방식 자체를 바꿨습니다.

기존의 방식은 이랬습니다. 원자로 설계를 완성한 뒤, 모든 기술 자료를 담은 대형 신청서를 NRC에 한꺼번에 제출합니다. NRC는 수천 페이지 문서를 검토하고, 수년에 걸쳐 질의와 응답을 주고받습니다.

Oklo가 전환한 방식은 달랐습니다. 'Topical Report(주제별 보고서)' 전략입니다. 핵심 기술 주제를 개별 보고서로 분리해 사전에 NRC 승인을 받는 방식입니다. 이번에 승인받은 PDC(Principal Design Criteria, 주요 설계기준) 보고서가 그 첫 번째 성과입니다.

PDC란 무엇인지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자로를 설계할 때는 "이 냉각계통은 어떤 조건에서도 작동해야 한다", "이 격납구조는 이 정도 압력을 견뎌야 한다"처럼 안전에 관련된 구조물·계통·기기(SSC)의 설계 기준을 먼저 정해야 합니다. 이 최상위 기준 체계를 PDC라고 부릅니다. 집을 짓기 전에 건축 규칙을 먼저 확정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PDC가 사전에 승인되면, 이후 실제 인허가 신청에서 같은 기준을 두고 다시 논쟁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재작업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topical report 전략의 핵심입니다.

Aurora는 어떤 원자로인가

PDC 승인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Aurora가 어떤 원자로인지 알아야 합니다.

Aurora는 나트륨 냉각 고속로(Sodium-cooled Fast Reactor)입니다. 기존 원자력발전소에서 쓰는 물 대신 액체 나트륨으로 원자로를 식히는 방식입니다. 최대 출력 75 MWe(메가와트 전기)의 소형 원자로로, 일반 원자력발전소(약 1,000 MWe)에 비하면 작지만, 그래서 더 빠르게 건설하고 더 넓은 곳에 배치할 수 있습니다.

Aurora의 또 다른 특징은 금속 연료를 쓴다는 점입니다. 일반 원전이 우라늄 산화물 연료를 쓰는 것과 달리, 금속 형태의 우라늄 합금을 연료로 사용합니다. Oklo는 1964년부터 1994년까지 아이다호에서 30년간 운전했던 실험 원자로 EBR-II의 설계와 운전 경험을 Aurora 개발의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현재 Oklo는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 부지에 첫 번째 Aurora를 건설 중입니다. 2025년 9월 착공식을 가졌고, 건설·조달·시공은 대형 건설사 Kiewit Nuclear Solutions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왜 절반 시간에 끝났나 — 규제환경의 변화

이번 PDC 승인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속도 때문입니다. Oklo에 따르면 NRC는 제출 후 접수 통보를 통상 30~60일이 아닌 15일 만에 발급했고, 전체 심사도 통상 기간의 절반 이하로 완료했습니다.

이 배경에는 미국의 규제 환경 변화가 있습니다.

2024년 7월, 미국 의회는 ADVANCE Act를 초당적으로 통과시켰습니다. NRC가 신규 원자로 인허가를 더 효율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처리하도록 요구하는 법입니다. 안전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심사 절차의 중복과 비효율을 줄이는 방향입니다.

2025년 5월에는 행정명령 14300호(EO 14300)가 서명됐습니다. 4세대 원자로, 소형모듈원자로(SMR), 마이크로원자로 등 신형 원자로 기술의 보급을 앞당기기 위해 규제·비용 장벽을 낮추겠다는 정책 선언입니다.

이런 제도적 압력 속에서, NRC는 TerraPower의 나트륨 냉각 원자로 건설허가 안전 심사를 18개월 만에 완료하는 선례도 만들었습니다. 50년 이상 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비경수로 건설심사였습니다.

이번 승인으로 무엇이 달라지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번 PDC 보고서 승인은 Aurora 원자로의 건설·운전 허가가 아닙니다. Oklo가 Aurora를 운영해도 된다는 최종 허락이 아닙니다.

PDC 승인은 마치 건물을 짓기 전에 "이 건물의 구조 설계 원칙은 적합하다"는 확인을 받은 것에 가깝습니다. 실제 건물을 짓고 거주하려면 개별 건축 허가, 소방 점검, 준공 검사 등 여러 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원자력 인허가로 돌아오면, 이후에도 사고 해석, 안전계통 분류, 원자로 용기 성능, 비상 대응 체계, 연료 제조 승인 등 수많은 기술 쟁점이 개별적으로 검토돼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번 승인의 의미는 큽니다. 2022년 거절의 핵심 원인이었던 "정보 불충분" 문제를 Oklo가 단계적으로 해소하고 있다는 규제적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설계 기준의 뼈대가 확정됐다는 것은, 이후 신청서에서 같은 쟁점을 반복해 논증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한국 원자력 산업이 주목해야 할 이유

미국 선진 원자로 시장이 "누가 더 좋은 원자로를 만드느냐"에서 "누가 규제 전략을 더 잘 짜느냐"로 경쟁의 축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Oklo 사례는 기술 역량만큼이나 규제 문서화 역량, 사전 협의 전략, 단계적 승인 접근법이 선진 원자로 상업화의 핵심 경쟁력임을 보여줍니다. 한국도 SMART, 혁신형 SMR(i-SMR) 등 선진 원자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완성된 신청서를 한꺼번에 내는 방식"보다 "핵심 기술 주제를 사전에 규제기관과 확정해 나가는 방식"이 얼마나 더 효과적인지, Oklo의 4년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절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전략을 바꾼 사람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