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원자로에 새 연료만 넣으면 핵폐기물이 8분의 1로 줄어든다?

2026. 5. 9. 00:53원자력 뉴스

원자력 발전의 오래된 딜레마 중 하나는 사용후핵연료입니다. 전기를 만들고 난 연료가 수만 년 동안 방사성을 띠며 안전하게 보관돼야 한다는 사실은, 원자력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의 핵심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에서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토륨과 HALEU(고농축 저농축우라늄)를 섞은 연료, 즉 ANEEL(Advanced Nuclear Energy for Enriched Life) 연료가 기존 CANDU 원자로의 사용후핵연료 대비 연소도를 8배 이상 달성했다는 것입니다.

새 원자로를 만들 필요 없이, 기존 원자로에 연료만 바꾸면 폐기물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현실적인 이야기일까요?

CANDU 원자로는 어떻게 다른가 — 농축 없이도 돌아가는 이유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CANDU 원자로를 알아야 합니다.

한국의 월성 원전은 CANDU형 가압중수로(PHWR)입니다. 일반 경수로가 가벼운 물(경수)로 원자로를 식히고 중성자를 조절하는 것과 달리, CANDU는 중수(重水, heavy water)를 사용합니다. 중수는 일반 물보다 중성자를 흡수하는 능력이 훨씬 낮습니다. 덕분에 중성자를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천연우라늄(농축하지 않은 우라늄)을 그대로 연료로 쓸 수 있습니다.

경수로 기반 원전들이 모두 농축우라늄을 필요로 하는 것과 대비됩니다. 농축 공정이 필요 없다는 것은 연료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고, 농축 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나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장점에는 단점이 숨어 있습니다. 천연우라늄을 쓰는 CANDU는 연료를 비교적 빨리 교체해야 합니다. 방출연소도(燃燒度, burnup)가 낮기 때문입니다. 연소도란 연료 1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양(GWd/MTU)으로, 이것이 낮다는 것은 같은 전력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연료를 넣고 꺼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사용후핵연료가 더 많이 나옵니다.

ANEEL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나

CCTE(Clean Core Thorium Energy)가 개발 중인 ANEEL 연료의 접근법은 이렇습니다.

토륨(Thorium)을 연료의 주재료(fertile matrix, 증식 기반 물질)로 사용하고, 여기에 소량의 HALEU(U-235 농축도 5~20% 우라늄)를 초기 핵분열 구동재(driver)로 섞습니다. CANDU 원자로의 기존 연료봉 형태와 크기를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원자로 자체를 개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토륨인가? 토륨 자체는 핵분열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성자를 흡수하면 핵분열이 가능한 우라늄-233(U-233)으로 변환됩니다. 즉, 핵분열이 진행될수록 새로운 핵분열 물질이 생겨나는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HALEU만 있을 때보다 훨씬 오랫동안 높은 출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핵연료를 카세트 테이프에 비유한다면, 기존 CANDU 연료는 45분짜리이고, ANEEL은 같은 플레이어에서 6시간짜리가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60 GWd/MTU — 이 숫자가 왜 중요한가

이번 INL 실험에서 ANEEL 연료는 60 GWd/MTU(기가와트일/메트릭톤 우라늄) 이상의 연소도를 달성했습니다.

CCTE가 밝힌 기존 CANDU 연료의 전형적 방출 연소도는 이보다 8분의 1 수준입니다. 따라서 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가정하면, ANEEL은 기존 연료 대비 약 8분의 1의 사용후핵연료를 발생시키는 셈입니다.

실험은 2024년 5월 INL의 ATR(Advanced Test Reactor, 선진 시험 원자로)에 12개의 소형 연료봉(rodlet)을 장전하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ATR은 일반 원자로보다 중성자 세기가 강한 환경을 만들어, 수십 년간의 원자로 운전 조건을 가속하여 모사할 수 있는 연구 시설입니다.

12개 중 8개는 20, 40 GWd/MTU 목표를 달성한 후 이미 후조사시험(PIE, Post-Irradiation Examination)을 받고 있습니다. 나머지 4개가 60 GWd/MTU 이상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PIE는 조사 후 연료봉을 절단해 내부 미세구조, 가스 방출량, 피복관 변형 등을 정밀 분석하는 과정입니다.

'이번엔 진짜'일까 — 상용화까지 남은 관문들

토륨 연료는 1950년대부터 가능성이 논의됐지만 번번이 '미래 기술'에 머물렀습니다. 이번은 다를까요?

몇 가지 긍정적인 신호가 있습니다. 기존 CANDU 형태를 유지하는 연료 설계는 신규 원자로 건설 비용 없이 기존 fleet에 적용 가능합니다. 캐나다 국립연구소인 CNL(Canadian Nuclear Laboratories)이 full-scale 실증 번들 제조를 맡기로 했습니다. 실험실 크기가 아닌 실제 원자로에서 쓰는 크기의 연료 다발을 만들어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관문도 많습니다.

현재까지의 결과는 소형 연료봉(rodlet) 단위의 가속 조사시험입니다. 실제 CANDU 연료 다발은 rodlet 묶음이며, 실제 원자로의 열수력 조건, 진동, 온라인 연료교체 환경에서의 거동은 별도로 검증해야 합니다.

또한 ANEEL은 HALEU를 필요로 합니다. HALEU 공급망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습니다. 기존 CANDU 연료의 핵심 장점이 "농축 불필요"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HALEU 조달 비용이 연소도 향상의 경제적 이익을 상쇄하는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관점에서도 새로운 분석이 필요합니다. 토륨 기반 사용후핵연료는 핵종 구성이 기존 우라늄 연료와 다릅니다. 붕괴열과 장기 방사선 특성을 별도로 평가해야 합니다.

규제 경로도 복잡합니다. 연료를 변경하는 것은 원자로 노심의 핵 특성, 출력 분포, 안전 여유도에 영향을 주는 중대 변경입니다. 캐나다 핵안전위원회(CNSC)의 사전 심사 과정이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ANEEL의 현재 단계는 '가능성 확인'입니다. 상용화 확정 발표가 아닙니다. 그러나 "60 GWd/MTU 달성"이라는 숫자는 그 가능성을 실험적으로 뒷받침하는, 의미 있는 이정표입니다.

월성 CANDU 4기를 운영하는 한국 입장에서, 이 기술의 진행 상황은 주목할 만합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가 국내 원자력 정책의 핵심 쟁점 중 하나라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