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18. 06:35ㆍ원자력 뉴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만 척의 컨테이너선, 유조선, 벌크선이 전 세계 바다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들이 소비하는 연료는 연간 3억 5천만 톤에 달하는 중유(Heavy Fuel Oil)입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3%가 해운업에서 나옵니다. 항공업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IMO(국제해사기구)는 2050년 해운업 넷제로 목표를 선언했습니다. 수소, 암모니아, LNG 등 대안 연료가 검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원자력도 있습니다.
2026년 5월 14일, 두 가지 사건이 같은 날 일어났습니다. 서유럽 핵안전규제자협회(WENRA)가 핵추진 상선에 대한 국제 규제 프레임워크 마련을 촉구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미국 NRC도 해양 원자력 규제에 관한 공개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해양 원자력이 규제 논의 단계로 진입한 것입니다.
군함은 이미 70년째 원자력으로 달리고 있다
핵추진 선박이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은 이미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핵추진 잠수함 USS Nautilus가 항해를 시작한 것이 1955년입니다. 러시아 해군도 핵추진 선박을 광범위하게 운용합니다.
민간 선박에도 사례가 있습니다. 러시아의 핵추진 쇄빙선 단이 북극해 항로를 열어왔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핵추진 상선 NS Savannah는 1959년 미국이 Atoms for Peace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건조했습니다.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핵 평화 이용의 상징이 됐지만, 경제성 문제로 1972년 운항을 중단했습니다.
군함과 달리 상선은 왜 핵추진이 어려웠을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입니다.
규제 공백 — 핵추진 상선이 항구에 들어올 수 있을까?
군함은 기항하는 항구에서 특별 지위를 갖습니다. 국제법상 군함은 기항국 법령의 규제를 받지 않는 면제 특권이 있습니다. 따라서 핵추진 군함이 항구에 들어올 때 별도의 민간 안전 규정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상선은 다릅니다. 핵추진 상선이 어느 나라 항구에 입항하려면, 그 나라의 법령이 허용해야 합니다. 국제 항로를 다니려면 수십 개 나라의 규정을 모두 통과해야 합니다.
현재 핵추진 상선을 규율하는 국제 기준이 사실상 없습니다. IMO 산하에 일부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실질적 구속력이 없고 현대 원자로 기술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WENRA가 지적한 규제 공백입니다.
WENRA가 촉구하는 것 — IMO + IAEA 공동 프레임워크
WENRA는 EU 18개 회원국과 스위스·영국·우크라이나 등의 핵안전 규제기관으로 구성된 협의체입니다. 이들의 권고는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IMO와 IAEA가 긴밀히 협력해 IMO 기존 코드를 개정하되, IAEA 최신 안전기준을 반영해야 합니다. 해양 규제는 IMO가, 핵안전 기준은 IAEA가 각각 담당하는 구조를 결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설계·안전성·운영사의 충분한 성숙도를 입증한 후에만 해상 운항을 인가해야 합니다. 서둘러 기준을 만들어 검증되지 않은 원자로가 바다에 나가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입니다.
WENRA의 요구는 세 가지 구체적 원칙으로 제시됩니다.
- 국가 간 일관된 안전 요건 적용 — 나라마다 기준이 달라서는 안 된다
- 안전 목표의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명시 — 모호한 규정이 아닌 명확한 기준
- 해양 환경의 특수 위험 고려 — 동요, 염분 부식, 충돌, 침수 등 육지 원전과 다른 조건
한국 조선업이 있는 곳
여기서 한국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HD KSOE(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重 조선 부문)와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업입니다. 이들은 이미 핵추진 선박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HD KSOE는 SMR 탑재 선박 연구를 공식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한국은 원자로 설계·건설 역량(KEPCO, 두산에너빌리티)과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 건조 역량을 동시에 보유한 몇 안 되는 나라입니다. 핵추진 상선 시장이 열린다면, 이 두 역량을 결합한 국가가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규제 프레임워크가 만들어지고, 기술이 검증되고, 국가 간 합의가 이루어지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2026년 5월 14일 나왔습니다.
WENRA의 성명과 NRC의 공개 회의가 같은 날 열린 것은, 글로벌 핵추진 상선 규제 논의가 가능성 탐색 단계에서 프레임워크 설계 단계로 진입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나라가 이 논의를 주도하느냐에 따라, 미래 해양 원자력 시장의 규칙이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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