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수출 vs. 핵 확산 금지 — 미·사우디 123협정의 딜레마

2026. 5. 18. 06:54원자력 뉴스

2026년 5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습니다. 1,420억 달러 규모의 방산 거래가 체결됐고, 수십 개의 협력 협정에 서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방문과 맞물려, 미국 의회에서는 조용하지만 중대한 심의가 진행 중입니다. 미·사우디 민간 핵에너지 협력을 위한 Section 123 협정, 즉 원자력협력협정입니다.

이 협정이 통과되면 미국 원자력 기업들이 사우디 원전 시장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논쟁이 있습니다. 사우디가 "우라늄을 직접 농축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입니다. 원전을 팔기 위해 핵 확산 위험을 얼마나 감수해야 하는가. 이것이 지금 워싱턴을 흔드는 질문입니다.

123협정이란 무엇인가 — 원자력 협력의 기본 계약

미국 원자력법(Atomic Energy Act) 제123조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민간 원자력 협력을 하기 위한 조건을 규정합니다. 이 조항에 따라 체결하는 협정을 123협정이라고 부릅니다. 한국도 미국과 123협정을 맺고 있고, 이를 근거로 미국산 핵연료와 기술을 사용합니다.

핵심은 비확산 조건입니다. 상대국이 핵무기 제조에 악용될 수 있는 기술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아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미국은 원자력 협력을 할 수 없습니다.

황금기준이란 무엇인가 — UAE가 설정한 선례

2009년 미국은 UAE와 123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 협정의 특징은 UAE가 자발적으로 세 가지를 약속했다는 점입니다. 첫째, 우라늄 농축 포기. 둘째,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포기. 셋째, IAEA 추가의정서 수용.

이 세 가지 약속은 핵비확산 분야에서 '황금기준(Gold Standard)'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원전을 원하지만 핵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였고, 많은 나라들이 이것을 기준으로 미국의 협력 조건을 협상했습니다.

그런데 사우디는 다릅니다.

사우디가 핵연료 주기를 원하는 이유

빈살만 왕자는 공개 발언에서 "완전한 핵연료 주기(full nuclear fuel cycle)를 개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우라늄 농축부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까지, 스스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표면적 이유는 에너지 자립입니다. 사우디는 세계 우라늄 매장량의 16%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스로 농축하면 외국 연료 공급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사우디는 이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고 핵무기 문턱에 서 있는 동안, 사우디가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있어야 하는가. 빈살만 왕자는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우리도 가져야 한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습니다.

우라늄 농축 능력은 핵무기 제조의 핵심 단계입니다. 민간 원전용 저농축과 무기급 고농축은 같은 기술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사우디가 농축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조건이 갖춰지면 핵무기 프로그램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확보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딜레마 — 팔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판다

Arms Control Association을 비롯한 핵비확산 전문가들은 현재 심의 중인 미·사우디 123협정 문안이 사우디의 농축 프로그램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황금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협정이라는 것입니다.

의회에서는 초당적으로 황금기준 적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상원에서는 'No Nuclear Weapons for Saudi Arabia Act of 2026'(S.4243)이 발의됐습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논리를 내세웁니다. "미국이 사우디 원전 사업에서 빠지면, 중국과 러시아가 공백을 채울 것이다." 실제로 Rosatom은 이미 사우디와 협의를 진행 중이고, 중국 원자력기업들도 중동 시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황금기준을 고집하다가 시장을 잃으면, 비확산 측면에서도 더 불리해진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이 딜레마의 핵심입니다. 황금기준을 지키면 사우디 시장을 잃고 중국·러시아에게 기회를 준다. 황금기준을 완화하면 시장은 얻지만 핵비확산 체계에 균열을 낸다.

한국 원전 수출에 던지는 질문

이 논쟁은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UAE 바라카 원전을 수출했고, 현재 체코 두코바니 수주를 앞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원전 수출을 확대하려면 중동·아시아·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을 공략해야 합니다.

미국이 사우디와 황금기준 없이 협정을 체결하면, 다른 나라들도 "우리도 농축을 원한다"고 요구할 여지가 생깁니다. 이집트, 요르단, 터키 등이 그 다음 협상 테이블에서 같은 논리를 꺼낼 수 있습니다.

원전을 수출하는 나라는 원전 기술만 파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의 핵비확산 입장도 함께 팝니다. 어떤 조건을 용납하는가가, 향후 글로벌 핵안보 질서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미·사우디 협정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 결과는 원전 수출국 모두에게 하나의 선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