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저의 후계자 — 50년 만에 다시 켜진 미국 심우주 전력 공급망

2026. 5. 19. 10:22원자력 뉴스

태양계 끝자락을 향해 지금 이 순간도 날아가고 있는 보이저 탐사선에 탑재된 장치가 있습니다. 핵연료에서 열을 뽑아 전기로 바꾸는 RTG, 즉 방사성동위원소 열전기발전기입니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가 아직도 지구와 통신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이 장치 덕분입니다. 그런데 그 뒤를 잇는 기술이 반 세기 가까이 사실상 방치되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2026년 5월 15일, 미국 방산·기술기업 L3Harris Technologies가 중요한 발표를 했습니다. 차세대 RTG(Next Gen RTG)가 4월 2일 CDR(Critical Design Review, 설계최종확정 검토)을 통과했다는 소식입니다. 설계가 완성됐다는 의미이자, 이제 실제로 만들어질 준비가 됐다는 신호입니다. 왜 하필 지금이고, 이 공급망이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심우주에서 태양은 쓸모가 없습니다

화성 정도까지는 태양광 패널이 작동합니다. 하지만 목성 너머부터는 태양빛이 너무 약해서 태양전지판으로는 탐사선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RTG입니다.

RTG의 원리는 단순합니다. 플루토늄-238(Pu-238)이라는 방사성 원소가 스스로 붕괴하면서 열을 냅니다. 이 열을 열전소자(thermoelectric element)가 전기로 변환합니다. 연료 전지도 아니고, 핵분열 원자로도 아닙니다. 원소가 자연적으로 내는 열을 가로채는 구조입니다. 움직이는 부품이 없고, 수십 년을 유지보수 없이 작동합니다. 보이저 1·2호가 발사된 지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도 지구와 교신할 수 있는 것이 이 기술 덕분입니다.

Curiosity와 Perseverance 화성 탐사차에도 같은 방식의 MMRTG(다목적 방사성동위원소 열전기발전기)가 탑재됐습니다. 이번 Next Gen RTG는 그 후속 설계로, 생애 초기 출력 약 250W를 내면서도 기존 MMRTG와 비슷한 중량을 유지합니다. 진공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어 외행성 탐사에 더 적합합니다.


50년의 공백 — 왜 미국은 이 기술을 방치했나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심우주 탐사 RTG 기술은 사실상 정체 상태였습니다. 새로운 설계 개발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공급망 자체가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연료인 Pu-238의 생산이었습니다.

Pu-238은 핵무기에 쓰이는 Pu-239와는 전혀 다른 동위원소입니다. 핵무기와는 관계없지만, 생산 시설과 인프라는 국가 차원에서 유지해야 합니다. 미국은 냉전 이후 Pu-238 생산을 중단했고, 한동안 러시아산에 의존했습니다. DOE(미국 에너지부)와 ORNL(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이 국내 생산을 재개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RTG 제조 역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술은 있지만 실제로 만들 수 있는 조직과 시설이 장기간 유지되지 않으면 공급망은 끊어집니다. DOE/INL(아이다호 국립연구소)이 2021년 L3Harris에 Next Gen RTG 계약을 체결한 것은 이 공급망을 의식적으로 복원하려는 결정이었습니다.


공급망의 완성 — 세 축이 모두 갖춰졌습니다

Next Gen RTG의 구조를 보면 미국이 어떻게 이 공급망을 재건했는지 보입니다.

주계약자 L3Harris가 시스템 통합을 맡습니다. Teledyne Energy Systems가 핵심 부품인 열전변환 소자를 담당하고, BAE Systems가 단열재를 공급합니다. 그리고 그 위로, 연료인 Pu-238은 DOE/ORNL이 생산합니다. 완성된 RTG는 NASA의 우주선에 통합됩니다.

Pu-238 생산(ORNL) → RTG 제조(L3Harris) → 우주선 통합(NASA). 이 세 단계가 모두 작동할 때 비로소 심우주 탐사가 가능합니다. CDR 통과는 이 공급망의 중간 단계, 즉 RTG 설계가 완성됐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일정도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2027년에는 PRR(Production Readiness Review, 생산준비검토)을 목표로 하고, 실제 비행 유닛은 2030년대 초 심우주 탐사선에 탑재될 예정입니다.


다음 목적지는 천왕성입니다

Next Gen RTG의 1차 적용 대상은 천왕성 궤도선(Uranus Orbiter)입니다. 탐사선 한 대에 두 개의 Next Gen RTG가 탑재됩니다. 전력을 공급하는 동시에, 극도로 차가운 외행성 환경에서 탐사선 내부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도 합니다.

천왕성은 오랫동안 전용 궤도 탐사선을 보내지 못한 외행성입니다. Next Gen RTG는 천왕성 탐사선뿐 아니라 해왕성, 트리톤, 카이퍼벨트 천체, 성간 선구체 임무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공식 발표됐습니다. 태양계 바깥쪽 세계를 향한 탐사 임무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지는 전력 기반이 갖춰지는 셈입니다.

보이저 이후 수십 년간 닫혀 있던 외행성 탐사의 문이, 이번 CDR 통과로 다시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은 선언이 아니라 공급망으로 증명됩니다

원자력 기술이든, 우주 기술이든, 핵심은 같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공급망이 갖춰졌을 때 의미가 생깁니다. 미국이 2021년 L3Harris와 계약을 맺고 5년간 설계를 완성한 것, 그리고 그 배후에 ORNL의 Pu-238 생산 재개와 Teledyne·BAE의 부품 공급이 맞물린 것 — 이것이 바로 공급망 복원의 실체입니다.

보이저 탐사선이 아직도 날아가고 있는 것은 1970년대에 만든 RTG가 버텨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후계자가 이제 설계 단계를 마쳤습니다. 2030년대 초, 천왕성을 향해 새 탐사선이 출발할 때, 그 전력을 공급하는 장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 오늘 그 이야기를 기억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