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선택 — 유럽 탈원전 마지막 도미노

2026. 5. 28. 04:41원자력 뉴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유럽에서는 탈원전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독일은 단계적 폐쇄를 선언했고, 스위스는 신규 건설 금지법을 통과시켰으며, 벨기에도 폐쇄 일정을 확정했습니다. 유럽 탈원전의 물결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2023년부터 그 물결이 반대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은 예정대로 마지막 원전을 껐지만, 스위스는 국민투표로 금지법을 뒤집었고, 벨기에는 폐쇄 계획을 철회한 연립정부를 구성했습니다.

도미노가 넘어지는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유럽에서 탈원전 정책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주요 국가는 사실상 스페인 하나 남았습니다.

스페인 원전, 지금 무슨 상황인가

스페인은 현재 7기의 원전을 운영 중입니다. 총 출력 7,123MWe로, 스페인 전력의 약 20%를 공급합니다. 2019년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로드맵에 따르면, 이 원전들은 2027년부터 2035년 사이에 단계적으로 폐쇄될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Almaraz 원전입니다. 스페인 서부 엑스트레마두라주에 위치한 이 원전은 1호기(1,011MWe)와 2호기(1,006MWe) 합쳐서 스페인 전력의 약 7%를 공급합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2027~2028년에 영구 폐쇄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Almaraz를 소유한 Iberdrola(지분 53%), Endesa(36%), Naturgy(11%)가 2025년 11월 정부에 운영 허가를 2030년까지 3년 연장해달라고 공식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안에 정부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유럽의회가 나선 이유

2026년 2월, 유럽의회 의원단이 Almaraz 부지를 직접 방문해 현장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공식 보고서에서 스페인 산체스 정부에 폐쇄 재고를 촉구했습니다. 보고서의 표현은 날카로웠습니다. Almaraz 폐쇄 결정이 "기술적 근거 없는 순수 정치·이념적 결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PP MEP Elena Nevado는 "어떠한 포괄적 영향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EU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에 원자력이 포함된 상황, EU Net-Zero Industry Act가 원자력 기술을 포함하는 점도 스페인 내 원전 연장 지지 진영이 내세우는 논거입니다.

스페인 핵안전위원회(CSN)는 연장 심사를 위한 추가 기술 자료를 2026년 2월까지 운영사에 요구했으며, 검토 후 정부에 기술 권고안을 제출할 예정입니다. 최종 결정권은 산체스 정부에 있습니다.

2025년 대정전이 바꾼 것

2025년 4월 28일,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습니다. 수백만 가구가 수 시간 동안 전기 없이 지냈습니다. 스페인이 자랑하던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 시스템이 안정성 측면에서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스페인 내 여론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원전의 기저부하(baseload) 안정화 역할, 즉 날씨와 무관하게 일정하게 전기를 생산하는 기능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Foro Nuclear(스페인 원자력협회) 회장은 "Almaraz 연장이 승인되면 나머지 6기 연장도 100% 확률"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결정이 7기의 미래를 결정한다

Almaraz 연장 결정이 이렇게 중요한 이유는 첫 단추 효과 때문입니다. 스페인의 원전 폐쇄 계획은 2019년 합의에 기반한 것으로, 법적 강제성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Almaraz 연장을 인정하면 그 논리가 나머지 6기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Foro Nuclear의 "100%" 발언은 과장이 아닙니다.

반대로 Almaraz 폐쇄를 예정대로 진행하면, 스페인은 7,123MWe의 기저전력을 2035년까지 단계적으로 잃게 됩니다. 이를 재생에너지와 가스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안정성·비용 문제를 2025년 대정전이 이미 예고했습니다.

Framatome, Westinghouse, GE Vernova 등 서방 원전 서비스 기업 32개사가 이미 산업 선언문에 서명하며 Almaraz 연장 지지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들 기업에게 스페인 7기의 수명 연장은 수십억 유로 규모의 서비스 시장을 의미합니다.

독일은 이미 문을 닫았습니다. 스위스와 벨기에는 다시 열었습니다. 스페인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2026년 안에 결정이 나올 이 선택은, 유럽의 에너지 미래를 그리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