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9. 23:19ㆍ원자력 뉴스
"빅테크가 원자력을 사들이고 있다"는 말,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드셨다면 그 감각은 틀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꽤 특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ChatGPT와 데이터센터가 원자력과 연결되는 걸까요? 그 구조를 함께 뜯어보겠습니다.
AI 데이터센터가 전기를 얼마나 먹는가
ChatGPT 한 번의 질의응답이 구글 검색의 약 10배 전력을 소비한다는 추산이 있습니다. 한 번 응답이 그 정도라면, 하루 수억 건의 요청을 처리하는 데이터센터 전체는 어느 수준일까요.
수치로 보면 실감이 납니다. Microsoft·Google·Amazon·Meta 등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AI 플랫폼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액은 2025년 한 해에만 약 4,430억 달러에 달했고, 2026년에는 7,000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건물들이 가동되려면 전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24시간, 365일, 끊김 없이.
재생에너지는 훌륭한 선택이지만, 바람이 불지 않거나 해가 지면 발전이 멈춥니다. 데이터센터는 일몰을 기다려줄 수 없습니다. 전력업계에서는 이런 전원을 기저부하(baseload) 전원이라고 부릅니다. 날씨와 무관하게 항상 일정량의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원을 뜻합니다. 원자력은 바로 그 기저부하의 대표 주자입니다.
TMI원이 다시 켜지는 이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는 TMI(Three Mile Island)라는 원전이 있습니다. 1979년 사고로 유명해진 바로 그 곳입니다. 그런데 이 원전의 1호기는 사고와 무관하게 2019년 경제적 이유로 조용히 문을 닫았습니다. 전기가 싸지면서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 원전이 지금 다시 켜지려 하고 있습니다.
운영사 Constellation Energy는 이 원전을 Crane Clean Energy Center(CCEC)로 재명명하고 재가동을 추진 중입니다. 용량은 835MW, 대도시 하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규모입니다. 이 전기를 통째로 사겠다고 나선 곳이 Microsoft입니다. 20년 장기 전력구매계약(PPA), 투자 규모 약 16억 달러, 여기에 미국 에너지부(DOE)가 10억 달러 대출까지 지원합니다.
규제 절차도 빠르게 풀리고 있습니다. 2026년 6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재가동의 환경영향이 중대하지 않다는 잠정 결론을 담은 환경영향평가(EA)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같은 달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인근 가스발전소의 계통 접속 권리를 이 원전으로 넘길 수 있도록 특례를 허가했는데, 덕분에 계통 연결 일정이 2031년에서 2027년으로 4년이나 당겨졌습니다.
규제, 계통, 금융이 동시에 정렬된 것입니다. 원전 재가동 역사에서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맞아 떨어진 사례는 사실 드뭅니다.
빅테크의 원전 베팅, 얼마나 현실적인가
그렇다면 이 흐름이 진짜 전기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걸까요?
카네기 국제평화기금(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이 2026년 6월 발표한 보고서 Beyond the Hype는 냉정한 숫자를 제시합니다. 현재 빅테크 4사(Microsoft·Google·Amazon·Meta)가 체결한 원자력 관련 계약의 총 용량은 약 13GW(장기 전력구매계약 6.9GW + 직접 파트너십 6.1GW)입니다. 그런데 이는 2035년까지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할 전력 수요의 20% 미만에 불과합니다.
보고서는 이 구조를 'AI는 스프린트, 원자력은 마라톤'이라는 말로 요약합니다. 데이터센터는 1~2년 안에 지어지지만, 원전은 허가에서 가동까지 수년이 걸립니다. 속도의 불일치가 구조적 문제입니다.
보고서가 더 주목하는 것은 '얽힘 리스크(entanglement risk)'입니다. 첫째, 평판 리스크입니다. 세계 어디서든 원전 사고가 나면, 그 전기를 사용한 빅테크 이미지에 즉각 타격이 옵니다. 둘째, HALEU 문제입니다. 차세대 소형 원자로(SMR)들이 주로 사용하려는 고농축 저농축 우라늄으로, 일반 원전 연료보다 농도가 높아 핵확산 민감성이 있습니다. 규제 체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셋째, 사용후핵연료 문제입니다. 미국에는 현재 최종 처분장이 없습니다. 빅테크가 원전 전기 수요를 키울수록, 해결되지 않은 핵폐기물 문제의 공동 책임자가 됩니다.
'원자력 + AI' 조합이 뜨겁게 달아오른 현장들
한편에서는 기술 자체가 빠르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핵융합 스타트업 Helion Energy는 2026년 6월 4억 6,500만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를 완료하며 기업가치 155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핵융합이란 태양이 에너지를 내는 방식과 같은 원리, 즉 수소 원자들을 압력·열로 합쳐 더 무거운 원자로 만들면서 에너지를 얻는 기술입니다. 이 회사의 7세대 프로토타입 Polaris는 올해 초 1억 5천만 °C(태양 코어의 약 10배) 플라즈마 온도를 달성했습니다. 이 역시 Microsoft와 2028년 전력 공급을 목표로 한 계약을 맺었습니다.
마이크로원자로 분야에서는 Amazon Web Services(AWS)가 미국 국립 아이다호 연구소(INL)의 MARVEL 마이크로원자로 실험 파트너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MARVEL은 나트륨-열파이프 냉각 방식의 초소형 연구용 원자로로, 2028년 완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AWS는 이 원자로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활용해 자사 데이터센터 전력 기술에 응용하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Microsoft는 TMI 재가동과 핵융합 양쪽에 모두 투자했고, Amazon은 마이크로원자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원자력의 어느 경로가 먼저 상업화되더라도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입니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원전을 다시 세상 무대로 끌어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빅테크의 공약과 실제 전력 공급 사이의 격차, 그리고 핵폐기물 처리나 핵확산 위험 같은 오래된 숙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원전이 '친환경 AI 전기'의 해답처럼 포장되는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원자력이 안전한가"가 아니라 "이 전기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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