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9. 11:21ㆍ원자력 뉴스
포탄이 날아다니는 와중에 핵시설 공사를 멈추지 않았다면, 그것은 무모함일까요, 아니면 절박한 전략적 선택일까요?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에도 우크라이나는 체르노빌 격리구역 안에서 공사를 강행했고, 2026년 5월 마침내 정식 운영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 시설이 완성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단순한 토목 공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년 2억 달러를 러시아에 지불해야 했던 구조, 그리고 그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20년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왜 우크라이나는 해마다 2억 달러를 러시아에 보냈을까요
원자력발전소는 연료를 태우고 끝나지 않습니다. 사용된 연료, 즉 사용후핵연료(Spent Nuclear Fuel)는 강력한 방사성을 유지하며 수십 년 이상 엄격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는 자국에 15기의 원자로를 보유하게 됐지만,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고 처리하는 능력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선택지는 사실상 하나뿐이었습니다. 러시아의 국영 원자력 기업 Rosatom에 연료를 보내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연간 약 2억 달러(한화 약 2,700억 원). 이것이 우크라이나가 매년 Rosatom에 지불하던 사용후핵연료 처리 비용입니다. 에너지를 생산하면서도 그 뒤처리를 위해 지정학적 경쟁국에 거액을 계속 내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에너지 독립을 논하기 전에 이 의존 구조부터 끊어야 한다는 인식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현실화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체르노빌 격리구역 안에 저장시설을 짓기로 한 이유
2005년, 우크라이나 국영 원자력 기업 Energoatom은 미국 기업 Holtec International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중앙집중식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CSFSF, Centralised Spent Fuel Storage Facility)을 설계·건설하는 계약이었습니다. 부지로 선정된 곳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사람의 거주가 금지된 체르노빌 격리구역 내부였습니다.
이 선택에 의아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필 왜 체르노빌 격리구역일까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명확합니다. 격리구역은 이미 광대한 부지가 확보되어 있고, 인근에 거주 인구가 없으며, 수십 년간 방사성 환경 관리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입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입지 조건—충분한 부지, 낮은 인구 밀도, 기존 방사선 관리 체계—을 이미 갖춘 셈입니다.
건설은 2017년에야 착공했습니다. 계약 체결 후 12년이 걸렸습니다. 정치적 반대, 예산 문제, 부지 선정 논란 등 여러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됐습니다.
전쟁 중에도 공사를 멈추지 않은 이유
전면 침공 직후 러시아군은 체르노빌 원전 부지를 일시 점령했습니다. 격리구역 일대는 전선과 멀지 않은 교전 지역이 됐습니다. 이 상황에서 CSFSF 공사를 계속한다는 결정은, 단순히 공기(工期)를 맞추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이 시설은 전쟁이 끝난 뒤의 생존과 직결된 인프라였습니다. Rosatom에 내던 연간 2억 달러를 끊는 것, 그리고 사용후핵연료라는 가장 민감한 원자력 물질을 자국 땅에서 자력으로 관리하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는 에너지 주권의 핵심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도 이 의존 구조가 남아 있다면, 재건 국면에서도 러시아에 대한 레버리지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Holtec의 HI-STORM 190 수직 환기 저장 시스템과 HI-STAR 190 운반 용기가 적용된 이 시설은 건식 저장(Dry Storage)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건식 저장이란, 사용후핵연료를 물이 아닌 콘크리트·금속 용기 안에 밀봉하여 자연 공기 순환으로 냉각하는 방식입니다. 대규모 수조 시설이나 지속적인 냉각수 공급이 필요 없어, 전력 공급이 불안정한 환경에서도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전쟁 중 공사를 강행할 수 있었던 기술적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완공이 의미하는 것 — 그리고 아직 남은 질문
2026년 5월 28일, 우크라이나 국가핵규제검사원(SNRIU)이 CSFSF에 정식 운영 허가를 부여했습니다. 이로써 이 시설은 2023년 말부터 진행하던 시범운영 단계를 마치고 완전한 상업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수용 용량은 우크라이나 VVER-1000 원자로에서 나온 핵연료 집합체 12,010개, VVER-440에서 나온 4,520개, 합계 16,530개입니다.
"CSFSF 운영 허가 취득은 우크라이나 핵산업이 국제 최고 수준의 안전 기준에 따라 대규모 기술 복합 프로젝트를 이행하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 Energoatom 대행 이사회 의장 Kovtonyuk
이 시설의 완공은 우크라이나의 탈(脫)Rosatom 전략에서 마지막 퍼즐 조각 중 하나입니다. 연료 공급 측면에서는 이미 Westinghouse가 우크라이나 원전에 서방 핵연료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까지 자국화됨으로써, 우크라이나 원자력의 러시아 의존 구조는 구조적으로 해소됩니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자포리자 원전(ZNPP)입니다. 유럽 최대 원전인 자포리자는 2022년 3월 이후 러시아가 점령 중이며, 현재 모든 원자로가 냉각 정지 상태입니다. 2026년 5월에는 드론이 6호기 터빈 건물을 직격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CSFSF가 완공됐다 해도, 자포리자의 사용후핵연료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 속에 놓여 있습니다. 전후 재건 국면에서 이 원전을 어떻게 되돌려받고, 사용후핵연료를 어디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이 질문은 CSFSF 완공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원자력 정책의 가장 복잡한 숙제로 남을 것입니다.
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은 공사가 완공됐다는 사실은, 에너지 주권이 얼마나 절박한 과제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절박함 앞에서 기술은 꽤 튼튼한 답을 내놓기도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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