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 중인 원전에 드론이 날아왔다 — IAEA 수장이 현장에서 한 말

2026. 6. 9. 11:19원자력 뉴스

"자포리자보다 더 위험했다."

2026년 6월, IAEA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Rafael Grossi)가 UAE 바라카(Barakah) 원자력발전소를 직접 방문한 뒤 한 말입니다. 드론 피격을 당한 그 원전에 직접 발을 딛고, 세계 언론 앞에서 꺼낸 첫 마디였습니다.

자포리자(Zaporizhzhia)라면 누구나 기억하실 겁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 포격 위협에 노출되어 전 세계가 아찔하게 지켜봤던 그 원전입니다. 그런데 바라카 사건이 그보다 더 위험했다고요?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번 사건이 원자력 안전에 던지는 질문이 무엇인지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냉각정지와 가동 중 — 왜 다른 위험 등급인가

자포리자 원전이 위협받던 당시, 원자로들은 냉각정지(cold shutdown) 상태였습니다. 즉 핵분열 반응이 완전히 멈추고 잔열(decay heat)만 식혀지는 단계였습니다.

반면 바라카 원전은 달랐습니다. 5월 17일 드론이 원전 내부 경계 밖 발전기에 직격했을 당시, 원자로는 가동 중(in operation)이었습니다. 핵분열이 한창 일어나고 있는 상태, 다시 말해 원자로 안에서 막대한 열과 방사선이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조건이었습니다.

가동 중인 원자로에서 전력이 갑자기 끊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1차 냉각재 펌프가 멈추고, 잔열 제거가 늦어지면 핵연료봉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2011년 후쿠시마 사고의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쓰나미로 외부 전력을 잃고, 비상 디젤 발전기마저 침수되면서 냉각 기능이 마비된 것이었습니다.

이번 바라카 사건에서는 드론이 외부 전력 공급에 관여된 발전기를 직격했고, 그 결과 외부 전원 상실이 발생해 원자로 한 기가 자동 정지(automatic trip)됐습니다. 방사선 누출이나 계통 손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왜 국제 원자력 안전 기구의 수장을 현지로 날아오게 했는지, 이제 이해가 되실 겁니다.


APR1400의 자동 정지 — 이번에 어떻게 작동했나

바라카 원전은 한국이 설계하고 수출한 APR1400 원자로를 기반으로 합니다. 총 4기 규모 200억 달러짜리 프로젝트로, 아랍 세계 유일의 상업 원전입니다. UAE 전력 수요의 약 25%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APR1400에는 외부 전원이 끊겼을 때 작동하는 다중 안전 계통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가동 중이던 원자로는 외부 전원 상실이 감지되는 순간 자동으로 제어봉(control rod)을 삽입해 핵분열을 정지시켰습니다. 제어봉은 중성자를 흡수해 핵분열 연쇄반응을 즉각 차단하는 장치입니다. 전력이 없어도 중력만으로 삽입되도록 설계되어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반응을 멈출 수 있습니다.

UAE FANR(연방원자력규제청) 부의장 하마드 알 카아비(Hamad Al Kaabi)는 이후 "수년간의 안전·훈련·준비 투자 덕분에 발전소가 안전하게 유지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결과적으로 APR1400 설계의 안전 계통이 실제 공격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증명한 사례가 됐습니다.

"이번 공격은 매우 정교하게 표적화된 작전이었습니다. 핵시설의 안전 기능에 필수적인 전력 구조물을 의도적으로 겨냥했습니다." — IAEA 사무총장 그로시, Euronews 인터뷰


새로운 현실 — 원전 물리적 방호의 뉴노멀

그로시 사무총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핵시설 공격이 "이제는 현실"이 됐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국제 원자력 산업이 이에 대비한 절차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았음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이 발언이 중요한 이유는 IAEA가 지금까지 원전의 물리적 방호(physical protection)를 주로 테러리스트의 침입이나 사보타주를 가정해 설계해왔기 때문입니다. 소형·저비용 드론이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와 핵시설 주요 인프라를 정밀 타격하는 시나리오는 기존 방호 체계의 핵심 가정 밖에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제 사회가 다음 질문들과 씨름하게 됐습니다.

첫째, 외부 전원 계통 강화입니다. 원전의 안전 기능은 다중의 전원 공급에 의존합니다. 비상 디젤 발전기, 배터리, 외부 계통선 등이 겹겹이 설계되어 있지만, 드론 공격처럼 특정 전력 구조물을 외과적으로 제거하는 위협에는 새로운 대비가 필요합니다.

둘째, 안티드론(anti-drone) 시스템의 원전 적용입니다. 공항이나 군사시설에 도입된 드론 탐지·무력화 기술을 원전의 방호 체계 안으로 통합하는 국제 기준 수립이 시급해졌습니다.

셋째, IAEA 핵안보 지침(NSS, Nuclear Security Series) 개정 논의입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이미 핵시설 공격이 "퍼져가는 현상(growing phenomenon)"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자포리자, 바라카로 이어지는 사례는 이 현상이 예외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UAE는 이번 사건을 즉시 IAEA에 공식 보고했고, IAEA는 이를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위로 규정하며 국제 사회의 공식 논의를 촉구했습니다.


바라카가 남긴 것

이번 사건은 여러 층위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는 안도입니다. 드론이 실제로 원전 내부에 침입했음에도 방사선 누출이나 계통 손상 없이 원자로가 안전하게 정지됐습니다. APR1400의 설계 철학, 그리고 UAE의 수년에 걸친 훈련과 준비가 실전에서 검증됐습니다.

다른 하나는 경고입니다. 이번에는 전력 구조물이 표적이었고 결과가 통제됐습니다. 하지만 드론이 다른 목표물을 향했다면, 혹은 복합 공격의 일부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IAEA 수장이 직접 현지를 방문해 "자포리자보다 위험했다"고 말하게 만든 것은 그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원자력 발전소는 설계 단계에서 수많은 사고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이에 대비합니다. 이번 사건은 그 시나리오 목록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돼야 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고를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한 것은 피격에도 끄떡없었던 바라카 원전 그 자체였습니다.

원전이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원전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기준이, 세상의 변화만큼 빠르게 진화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