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은 밀고, 지방은 등 돌린다 — 캐나다 SMR 정책의 딜레마

2026. 6. 20. 00:25원자력 뉴스

캐나다는 원자력 강국입니다. 우라늄 생산 세계 2위, 독자 개발한 CANDU 원자로를 세계 각지에 수출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2022년, 캐나다 4개 주(온타리오·뉴브런즈윅·서스캐처원·앨버타)가 공동으로 야심찬 SMR 협동 전략을 발표하면서 차세대 원자력의 선도국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전략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SMR 전략의 핵심 파트너 중 하나였던 뉴브런즈윅(New Brunswick) 주가 곧 발표될 통합자원계획(Integrated Resource Plan, IRP)에서 SMR을 신규 전력원으로 포함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2022년 합동 전략의 야심

2022년 캐나다 4개 주 SMR 전략은 당시 상당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뉴브런즈윅 주는 Point Lepreau 원전 부지에 두 가지 혁신적인 원자로 기술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는 ARC Clean Technology Canada의 ARC-100(100MWe)입니다. 소듐 냉각 고속로(Sodium-Cooled Fast Reactor), 즉 액체 소듐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고속중성자 원자로입니다. 기존 경수로와 달리 고속중성자를 이용해 우라늄뿐 아니라 플루토늄과 기타 핵물질을 연료로 태울 수 있어 핵폐기물 감소 가능성이 있습니다. 2029년 운영을 목표로 했습니다.

두 번째는 Moltex Energy의 SSR-Wasteburner, 즉 안정 용융염 원자로(Stable Salt Reactor)입니다. 소금처럼 녹인 핵연료를 담은 용기가 원자로 안에서 연료이자 냉각재 역할을 합니다. 특이하게도 사용후핵연료를 변환해 연료로 쓸 수 있는 WATSS(WAste To Stable Salt) 시스템과 연계됩니다. 2030년대 초 가동을 목표로 했으며, 2022년 7월에는 두 프로젝트 모두 Point Lepreau 부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EIA) 등록과 부지준비허가 신청까지 제출된 상태였습니다.


무엇이 바뀌었나

뉴브런즈윅 주 전력 공기업 NB Power가 곧 발표할 IRP에서 SMR을 신규 전력원에서 제외할 것이라는 보도는 지역 매체 Telegraph Journal이 처음 전했습니다. 배경으로는 기후 목표 달성과 비용 문제가 거론됩니다. NB Power는 SMR 대신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 전환 경로를 택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IRP는 전력 회사가 향후 20~30년간 어떤 전원을 어떤 순서로 확보할지 계획하는 문서입니다. NB Power의 IRP에서 SMR이 빠진다는 것은, Point Lepreau 부지의 ARC-100과 Moltex 사업이 주정부 에너지 정책의 공식 지원 없이 연방 펀딩과 민간 투자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전력 회사가 "우리는 이 기술로 전기를 살 계획이 없다"고 하는데, 개발사가 독립적으로 상업 원자로를 짓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전력 구매 보장 없이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연방 정부와의 엇박자

흥미로운 것은 캐나다 연방 정부의 입장입니다. 캐나다 연방 정부는 2026년 4월 원자력 에너지 전략을 발표하며 신규 원전 건설 지원, 글로벌 공급자 포지셔닝, 우라늄 생산, 선진 기술 등 4개 축으로 구성된 지원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연방은 원전을 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력 정책은 캐나다에서 주(Province) 정부의 소관입니다. 연방이 지원을 표명해도, 실제로 전기를 사줄 주 전력 회사가 계획에서 빼버리면 프로젝트는 앞으로 나가기 어렵습니다. 연방과 지방의 구조적 긴장이 SMR 개발의 발목을 잡는 형국입니다.

이미 캐나다 전역에서 SMR에 대한 기술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뉴브런즈윅의 IRP 방향 전환은 ARC Clean Energy, Moltex Energy, Terrestrial Energy 등 캐나다 기반 SMR 스타트업들의 자금 조달과 인허가 추진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SMR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이유

캐나다의 이 사례는 SMR 낙관론에 균형추를 달아줍니다. 전 세계적으로 SMR에 대한 기대와 투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실제 발전소로 이어지는 경로에는 여러 관문이 있습니다.

첫째, 기술 실증입니다. ARC-100이나 Moltex SSR 같은 소듐 고속로·용융염로는 실험실 단계를 넘어 상업 규모에서 검증된 바가 없습니다. 둘째, 경제성입니다. SMR이 기존 대형 원전이나 재생에너지에 비해 MWh당 비용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셋째, 정치적 지속성입니다. 지방 정부의 에너지 계획이 바뀌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원자로 개발 프로젝트가 중단될 수 있습니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SMR에 대한 정책 지원과 인허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BWRX-300이 에스토니아에 법적 경로를 확보했고, 미국 DOE의 Reactor Pilot Program은 여러 신형 원자로 실증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SMR의 상대적 부진이 미국·유럽 경쟁자들의 반사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SMR은 분명 유망한 기술입니다. 하지만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나라마다, 프로젝트마다 다릅니다. 캐나다의 이 사례는 그 간극이 어디서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유용한 참고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