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 원자로가 멈출 수도 있다 — Idaho 협약이 만든 핵연료 로지스틱스 병목

2026. 6. 20. 01:03원자력 뉴스

원자로가 멈추는 이유가 '사고'나 '고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쓰고 난 핵연료를 돌려보낼 곳이 막혀서 새 연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 상상이 되시나요? 미국의 대학 연구용 원자로들이 지금 그런 구조적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핵발전소 이야기가 아닙니다. MIT, 텍사스 A&M, 퍼듀 같은 대학교에서 연구와 교육을 위해 운영하는 소형 원자로들의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이 원자로들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지, 그 구조를 천천히 풀어보겠습니다.

 

대학 연구로는 어떤 원자로이고, 연료는 누가 관리하나요?

대학 연구로는 전력을 생산하는 상업용 원전과는 목적 자체가 다릅니다. 출력도 훨씬 낮고, 주된 용도는 중성자 빔을 이용한 재료 분석,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그리고 원자력공학 학생들의 실습 교육입니다. 미국에는 현재 MIT,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오리건 주립대, 퍼듀, 텍사스 A&M, 메릴랜드대, 미주리대 등 수십 개 대학이 이런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원자로들의 연료에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연료의 소유권이 대학에 있지 않습니다. 미국 에너지부(DOE)가 연료를 소유하고, 대학에 빌려주는 형태입니다. 구체적으로는 DOE 산하 '대학 연료 서비스 프로그램(UFS, University Fuel Services Program)'이 INL(아이다호 국립연구소)을 통해 24개 대학과 계약을 맺고 연료를 공급합니다. 대학은 연료를 사용하고, 사용이 끝난 연료, 즉 사용후핵연료(SNF, Spent Nuclear Fuel — 핵분열 반응을 마친 뒤 높은 방사능을 띠는 연료)를 정부에 반납합니다. 제도 설계상으로는 매우 깔끔한 구조입니다.

문제는 이 반납 경로가 실제로는 복잡한 다층 구조 위에 서 있다는 점입니다.

왜 사용후핵연료를 '돌려보내는' 것이 막히나요? — 1995 Idaho 협약의 함정

사용후핵연료를 반납받는 곳은 주로 두 곳입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사바나 리버 사이트(SRS)와, 아이다호 주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입니다. 특히 INL은 UFS 프로그램 관리 본부이기도 해서 대학 연구로 사용후핵연료의 핵심 수용 거점입니다.

그런데 1995년에 체결된 협약 하나가 이 경로에 쐐기를 박아두었습니다. 1995 Idaho Settlement Agreement, 아이다호 주정부와 연방정부 간의 합의입니다. 핵심 내용은 이렇습니다. DOE가 1995년부터 2035년 사이에 아이다호로 반입할 수 있는 DOE 소유 사용후핵연료를 55 톤(metric ton)으로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이 협약이 왜 만들어졌을까요? 아이다호 주민들 입장에서는 INL이 사실상 전국의 핵폐기물을 끌어들이는 영구 저장소가 되는 것을 막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연방정부가 '잠깐 맡아둘게요'라고 했다가 수십 년이 지나도 가져가지 않는 상황에 대한 합당한 우려였습니다. 협약은 이런 정치적 타협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이 물량 제한이 실제로 운용되면서 예상치 못한 병목이 발생했습니다. 2024년 UFS 연간 보고서는 이 문제를 명시적으로 지적했습니다.

"Idaho Settlement Agreement 문제로 INL이 Idaho 외 지역에서 발생한 TRIGA 사용후핵연료를 수용하지 못했고, 대학 연구로가 저장 한도 때문에 신규 연료 수령 및 운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 Idaho National Laboratory, Annual Report for the University Fuel Services Program, 2024

 

TRIGA는 미국 대학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연구로 형식의 이름입니다. 이 원자로들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가 INL로 가지 못하면, 각 대학의 저장수조에 쌓이게 됩니다. 저장수조에는 NRC(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허용하는 상한선, 즉 'possession limit(보유 한도)'이 있습니다. 이 한도에 가까워지면 새로운 연료를 받을 수 없고, 새 연료가 없으면 원자로를 운전할 수 없습니다. 핵연료 로지스틱스 병목이 곧 연구로 운전 중단으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2025년 '임시 면제'로 숨은 돌렸지만 — 2035년 이후가 문제입니다

다행히 2025년 4월, 실마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DOE와 아이다호 주는 'targeted waiver(한정적 면제)'에 합의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Idaho Settlement Agreement의 물량 제한을 특정 범위에 한해 일시적으로 풀어준 것입니다. 이 면제 조치로 INL은 고연소도 연료 연구용 캐스크와 미국 대학 연구로의 제한적인 사용후핵연료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INL은 이 연료를 Idaho Nuclear Technical and Engineering Center의 CPP-603 건식저장시설에 보관하고, 향후 DOE가 최종 처분 경로를 마련할 때까지 선적 준비를 수행하는 경로를 제시했습니다. 건식저장은 냉각이 끝난 사용후핵연료를 불활성 가스가 채워진 금속 용기와 차폐체 안에 넣어 수동 냉각 방식으로 보관하는 방식으로, NRC가 안전성을 인정한 저장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 면제 조치는 '문을 완전히 연 것'이 아닙니다. 물량과 범위가 제한적이고, 근본적인 구조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2035년이라는 시한이 다가옵니다. Idaho Settlement Agreement는 2035년까지의 협약입니다. 그 이후 어떤 협약이 만들어질지, 또는 아이다호 주가 재협약을 거부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최종 처분장이 없는 나라의 중간 관리 — 구조적 취약점의 실체

미국에는 아직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적으로 저장할 지층처분장(deep geological repository)이 없습니다. 수십 년간 논의해 온 네바다 유카산 처분장 계획이 2010년 사실상 중단된 이후, 미국은 지금도 '장기 임시저장'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DOE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연방 통합 중간저장시설(CISF, Consolidated Interim Storage Facility) 구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24년 5월 DOE는 이 프로젝트의 'CD-0(임무 필요성 승인)' 단계를 통과시켰습니다. 초기 약 15,000 미터톤 규모의 사용후핵연료를 한 곳에 모아 보관하는 시설입니다. 다만 DOE 스스로 명시하고 있듯, CISF가 실제 건설·운영 단계로 가려면 Nuclear Waste Policy Act(핵폐기물정책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의회의 입법 없이는 착공도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한편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사바나 리버 사이트(SRS)는 별도의 경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ABD(Accelerated Basin De-inventory, 가속화된 저장수조 재고 정리 프로그램)를 통해 L-Basin에 보관 중인 연구로 유래 사용후핵연료를 H-Canyon에서 화학 용해한 뒤 유리화(vitrification — 방사성 물질을 유리 형태로 굳혀 안정화하는 처리 방식)하는 계획입니다. DOE는 이 프로그램이 기존 계획보다 20년 이상 일정을 앞당기고 4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SRS 경로는 알루미늄 기반 연구로 연료 일부에는 유효한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대학 연구로 연료에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니며, 결국 최종적으로는 연방 처분장이 식별되어야 완전한 순환이 닫힙니다.

정리하면, 현재 미국 대학·연방기관 사용후핵연료의 관리 경로는 이렇습니다.

대학 현장 저장 → DOE(UFS) 회수 → INL 또는 SRS 장기저장·처리 → 향후 CISF 또는 최종처분장

이 경로의 각 단계가 주정부 협약, 의회 입법, 예산, 지역사회 동의 등 서로 다른 의사결정 주체에 의해 좌우됩니다. 한 단계가 막히면 그 앞 단계부터 압력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대학 연구로의 저장수조가 결국 그 압력을 받는 맨 앞단입니다.

이것이 왜 단순한 '폐기물 처리' 문제가 아닌가요?

물량만 보면 대학 연구로의 사용후핵연료는 상업용 원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습니다. 그래서 언론이나 정책 논의에서 자주 묻히는 이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원자력 교육과 연구 인프라 자체가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 연구로는 다음 세대 원자력공학자들이 실제 원자로 앞에서 배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입니다. 방사성의약품과 산업용 방사선원의 상당 부분도 여기서 생산됩니다. 이 원자로들이 연료 로지스틱스 문제로 운전을 멈춘다면, 그 파급효과는 단순한 시설 가동 중단에 그치지 않습니다.

2035년 Idaho Settlement Agreement 시한이 다가오면서 미국 원자력계는 단순히 '폐기물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연구와 교육의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지층처분장이라는 출구를 찾지 못한 채로 시간이 쌓이면, 그 무게는 결국 제도 설계에서 가장 작고 취약한 고리, 즉 대학 연구로부터 눌리게 됩니다.

원자력을 쓸 것인지의 문제보다, 쓰기로 했다면 그 뒤처리 구조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닫을 것인지가 진짜 과제입니다. 미국의 사례는 그 질문에 아직 완전한 답을 내놓지 못한 나라의 현실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