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원전도 관리가 필요합니다: 해체 원전 감독의 적정 수준을 묻다

2026. 6. 29. 13:34원자력 뉴스

원자력 발전소가 문을 닫으면 위험도 함께 사라지는 걸까요? 많은 분들이 "꺼진 원전은 안전하다"고 막연히 생각하시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반대로, 폐로된 원전도 가동 중 원전과 똑같이 엄격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두 직관 모두 틀리지 않지만, 정확히 맞지도 않습니다.

2026년 3월, 미국 NRC(원자력규제위원회)가 주관한 RIC 2026 컨퍼런스에서 이 질문이 본격적으로 논의됐습니다. "가동이 멈춘 원전, 즉 해체 중이거나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단계에 있는 시설에는 어떤 수준의 감독이 적정한가?" — 이것이 이 글에서 함께 풀어볼 질문입니다.


왜 지금 이 논의가 시작됐나요?

이번 논의의 배경에는 두 가지 정책 동력이 있습니다. 미국의 ADVANCE Act 제507조와 행정명령 14300입니다.

ADVANCE Act는 미국 원전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제정된 법률로, 그 중 507조는 NRC에 규제 감독 체계 전반을 재검토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행정명령 14300은 에너지 안보와 원전 부흥을 목표로 발령된 행정 지시로, 마찬가지로 NRC에 규제 효율화를 촉구했습니다.

NRC는 이에 따라 20명 규모의 작업반을 구성하고, 직원과 산업계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했습니다. 그 결과, NRC 내부 검토 결과와 업계 제안이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신호입니다. 규제 기관과 피규제 기관이 "감독을 줄여야 한다"는 방향에서 의견이 일치한다는 것은, 단순한 비용 절감 요구가 아니라 실질적인 근거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핵심 원칙은 이렇습니다. "동일한 안전성(Same Safety), 더 스마트한 감독(Smarter Oversight)" — 안전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위험도와 성과 정보를 활용해 자원 배분을 효율화한다는 것입니다.


해체 원전과 가동 원전, 위험도가 다릅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 하나를 짚어야 합니다. 위험도 정보 기반(Risk-Informed) 규제입니다.

원전 감독에서 "위험도"란, 어떤 사건이 발생할 확률과 그것이 공공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한 개념입니다. 가동 중인 원자로와 해체 중인 원자로의 위험도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가동 중인 원자로에는 고온·고압의 냉각재가 순환하고 있고, 핵분열 반응이 진행 중입니다. 냉각 계통이 손상되면 즉각적인 위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해체 단계에 들어선 원전은 핵분열이 멈췄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방사성 물질의 양도 줄어들며, 냉각 필요성도 감소합니다.

특히 사용후핵연료를 건식 저장 캐니스터(밀폐 용기)에 담아 보관하는 ISFSI(독립형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Independent Spent Fuel Storage Installation) 단계에서는 위험도가 매우 낮습니다. 이 시설은 능동적인 냉각 장치 없이도 자연 대류만으로 열을 방출하는 수동 안전 시스템을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이번 RIC 컨퍼런스 Q&A 세션에서도 이 점이 명확히 정리됐습니다. "수동형 사용후핵연료 저장(Passive Storage) 시설에 대해서는 장기 노화 관리(Long-Term Aging Management) 중심의 감독이 적절하며, 대부분의 규제 활동은 사건 보고(Event Reporting) 체계로 관리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완전히 해체된 부지의 건식저장시설은 독립형 저장시설 수준의 감독으로 충분하다는 판단도 제시됐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지나요?

이번 논의에서 나온 변화들은 추상적인 원칙 선언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미 실제 숫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NRC의 NMSS(핵물질안전보안국, Office of Nuclear Material Safety and Safeguards)는 250~300건의 개선안을 도출했습니다. 그 중 눈에 띄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 사용후핵연료 저장 분야 반복 검사 생략: 연간 800시간 절감
  • 검사·출장 통합 대시보드 구축: 연간 약 700시간 절감
  • 하이브리드 검사 도입: 검사 건당 출장시간 최대 20시간 절감
  • 해체 분야 검사 주기 연장: 위험 중요 활동 수준에 따라 기존 3년 주기를 4~5년으로 연장 검토

가동 원전을 대상으로 하는 ROP(원자로감독프로세스, Reactor Oversight Process) 개편도 함께 추진되고 있습니다. 전면 시행 시 감독·검사 부담이 약 38% 감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숫자들이 "안전을 포기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NRC는 원자로 자동정지(unplanned scram) 건수와 사고전구사건(ASP, Accident Sequence Precursor) 발생 빈도가 수십 년에 걸쳐 크게 감소했다는 실적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산업계의 안전 성과가 향상된 것이 객관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과거 수준의 감독 강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논리입니다.


감독 축소, 정말 괜찮은가요?

이 부분이 많은 분들이 가장 걱정하시는 지점일 것입니다. "결국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안전을 타협하는 거 아닌가?"

DPC(Decommissioning Plant Coalition, 해체 원전 사업자 연합체)의 Michael Callahan은 이 우려를 정면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는 "검사 축소와 규제 효율화가 안전 노력의 이완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며, 기본적인 안전 활동은 계속 가장 중요하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현재가 NRC 역사상, 위험도 기반 체계를 제대로 정립할 최고의 기회"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두 발언은 모순이 아닙니다. 문제는 감독의 양이 아니라 감독의 질과 배분입니다.

DPC는 특히 VLSSIR(Very Low Safety Significance Issue Resolution, 매우 낮은 안전중요도 이슈 해결 프로세스) 제도의 현재 구조에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현재는 규정 위반으로 판정된 이후에야 VLSSIR 적용 여부를 논의하는 구조입니다. DPC는 위반 판정 이전 단계에서 해당 사안이 실제로 규제 대상이어야 하는지, 규정 자체의 적절성을 먼저 검토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규제를 줄여달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위험도에 비례한 규제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실제로 중요한 곳에 집중해야 할 규제 자원이 위험도가 낮은 사안에 분산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편 NRC는 이번 개편이 "안전 기준 완화가 아니라 위험도·성과 정보를 활용한 자원 배분 효율화"임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모든 핵심 분야는 계속 검사 대상이며, 중복을 제거하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습니다.


마무리: 감독의 목적을 다시 묻다

이 논의가 흥미로운 이유는 "얼마나 감독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감독인가"를 다시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체 원전은 "죽어가는 시설"이 아닙니다. 수십 년에 걸쳐 방사성 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장기 과제입니다. 그 과정에서 위험도가 실제로 낮아진 시설에 가동 원전과 동일한 수준의 감독을 유지하는 것은, 자원을 실제로 중요한 곳에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이 논의는 한국에도 무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된 지 이미 수년이 지났고, 앞으로 해체와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한국 원전 정책의 핵심 과제가 됩니다. 어떤 수준의 감독이 "적정한가"를 데이터와 위험도에 근거해 논의하는 시도는, 우리에게도 곧 필요한 질문입니다.

가동을 멈춘 원전에 어떤 눈길을 두어야 하는지 —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막연한 불안이나 방심이 아닌 정확한 위험도 이해에서 나올 때, 비로소 합리적인 규제가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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