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을 선언한 나라가 다시 원전을 켜자는 이유 — 독일 재가동론

2026. 7. 2. 00:06원자력 뉴스

"독일은 원전을 완전히 접은 나라 아닌가요?" 이렇게 물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은 단계적 탈원전을 선언했고, 2023년 4월 마지막 3기(Emsland·Isar 2·Neckarwestheim 2)까지 문을 닫으면서 전 세계에 탈원전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독일 안에서 정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미 닫은 원전을 다시 켜자는 것입니다. 탈원전을 가장 확실하게 실행한 나라에서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그 근거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누가, 왜 재가동을 요구하고 있나요?

2026년 6월 29일, 독일 Emsland·Biblis·Philippsburg·Leibstadt·Brokdorf 등 주요 원전에서 실제로 소장을 맡았던 전 경영진과 원자력 기술 전문가 그룹이 공개서한을 보냈습니다. 수신자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 카타리나 라이헤 경제장관, 그리고 CDU/CSU 원내대표 옌스 슈판입니다. 현장을 직접 운영해본 사람들이 정부와 여당 지도부에 직접 목소리를 낸 셈입니다.

서한의 핵심 주장은 단순합니다. "독일 원전 재가동은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감이나 희망이 아니라, 독일의 친원자력 단체 Nuklearia와 Radiant Energy Group이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 「Recommissioning German Nuclear Power Plants – Economic Viability and Outlook」을 근거로 합니다.

"독일 원전 재가동은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하고 합리적인 선택"

 

이 보고서가 무엇을 근거로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최대 14기, 정말 다시 켤 수 있나요?

보고서는 최대 14기의 원전이 개보수(refurbishment, 노후 설비를 점검·교체해 원래 성능 또는 그 이상으로 복원하는 작업)를 거쳐 재가동 가능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일부 원전은 개보수를 넘어 출력 증강, 즉 원래보다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설비를 보강하는 것까지 가능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경제성 부분입니다. 보고서는 재가동 시 균등화발전비용(LCOE, Levelized Cost of Electricity — 발전소를 짓고 운영하고 폐로할 때까지 드는 모든 비용을 발전량으로 나눠 킬로와트시(kWh)당 비용으로 환산한 지표)이 매우 낮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미 지어진 원전을 다시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 원전을 짓는 것보다 초기 투자 부담이 훨씬 작다는 논리입니다. 그 결과 정부 보조금 없이도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사업이 될 수 있고, 독일이 보조금 없이 국제경쟁력 있는 산업용 전력가격을 다시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라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입니다.

물론 재가동이 스위치 하나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서한은 정부에 몇 가지 구체적인 조치를 요구했습니다.

  • 원자력법 개정
  • 진행 중인 해체 작업 중단
  • 원전 부지 신규 인허가 절차 간소화
  • 교육기관·설비제조사 내 기술 노하우 보존

특히 마지막 항목이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원전을 운영하던 인력과 노하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흩어지고, 해체 작업이 이미 진행 중인 원전은 되돌리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논의는 얼마나 현실성이 있나요?

여기서 냉정하게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공개서한과 보고서는 원전 재가동이 기술적·경제적으로는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전문가 그룹의 주장이지, 독일 정부가 재가동을 결정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원자력법 개정과 해체 중단 같은 요구사항 자체가, 재가동까지 넘어야 할 정치적 장벽이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이 흐름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는 있습니다. 신규 연립정부 출범 이후 독일 내 원전 재가동 여론이 확산되는 추세이고, 이는 독일만의 고립된 움직임이 아니라 스위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 유럽 전반에서 원전에 대한 여론이 반전되는 흐름과 맞물려 있습니다. 만약 재가동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진다면, 원전 서비스와 부품을 공급하는 Framatome·Westinghouse 같은 기업들에는 대규모 개보수 시장이 새로 열리게 됩니다.

왜 지금 유럽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까요?

독일의 재가동론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더 큰 흐름의 일부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 슬로바키아에서는 30년 넘게 지연되었던 Mochovce 원전 4호기가 첫 핵연료를 장전하며 기동시험에 들어갔습니다. 이 원전까지 완공되면 슬로바키아는 전체 전력수요의 약 77.5%를 원전으로 공급하는, 단일 국가 기준 세계 최고 원전 발전비중 국가가 됩니다. 폴란드는 26기 규모의 BWRX-300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프로그램을 재정지원 단계까지 진전시키고 있습니다.

즉, 유럽 곳곳에서 원전을 다시 늘리거나 지키려는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독일의 재가동론은 이 지형 안에서 나온 목소리입니다. 탈원전을 가장 상징적으로 실행했던 나라에서 나온 재검토 논의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유럽 전역의 원전 여론에 심리적인 파급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원전을 완전히 껐던 나라가 다시 불을 켜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법을 고치고, 멈춘 해체 작업을 되돌리고, 흩어진 기술 인력을 다시 모으는 과정은 몇 년 단위의 시간과 정치적 결단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번 공개서한이 보여주는 것은, 그 논의가 더 이상 소수의 이상론이 아니라 실제로 원전을 운영해본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경제성 데이터를 들고 정부 문 앞까지 가져간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입니다. 탈원전의 상징이었던 나라가 다시 저울질을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에너지 정책에서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란 것이 얼마나 드문지를 보여주는 사례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