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 00:08ㆍ원자력 뉴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 소식을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궁금증이 생기실 겁니다. "저 정도로 강한 제재를 받는 나라가 대형 인프라 사업을, 그것도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을까?" 실제로 최근 튀르키예에서 들려온 소식은 이 질문에 답을 주고 있습니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Rosatom)이 짓고 있는 아쿠유(Akkuyu) 원전 2호기의 격납건물 돔이 예정대로 설치를 마쳤다는 소식입니다. 오늘은 이 사례를 통해 왜 러시아산 원전이 제재 속에서도 계속 팔리고 있는지, 그 배경을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아쿠유 원전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
2026년 6월 30일, 튀르키예 메르신주에 건설 중인 아쿠유 원전 2호기의 내부 격납건물(원자로를 감싸는 안전 구조물) 돔이 설치를 마쳤습니다. 대형 크롤러 크레인을 이용한 인양 작업에만 7시간이 걸렸고, 40명 이상의 전문인력이 투입되었습니다. 이 돔은 15개의 조립 섹션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를 하나로 합치는 사전 조립에만 약 4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Akkuyu 2호기는 앞서 지난달 튀르키예 원자력규제기관으로부터 기동시험 작업 허가를 취득한 바 있다.
격납건물은 이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안쪽은 강판 라이닝과 특수 콘크리트로 원자로실의 기밀성(공기나 방사성 물질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밀폐하는 성질)을 확보하고, 바깥쪽은 철근콘크리트로 외부 충격을 막아내는 방호벽 역할을 합니다. 흔히 원전을 이야기할 때 나오는 "이중 안전판"이라는 개념이 바로 이 구조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쿠유 원전은 총 4기의 VVER-1200(러시아형 가압경수로 모델) 원자로로 구성됩니다. 2호기가 격납돔을 씌우는 동안, 1호기는 이미 2026년 중 튀르키예 전력망에 첫 전력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4기가 모두 완공되면 총 4,800MWe 규모로, 튀르키예 전체 전력수요의 약 10%를 이 발전소 하나가 담당하게 됩니다.

왜 하필 지금, 제재 속에서도 공정이 밀리지 않는가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1호기 가동이 임박한 가운데 2호기 격납돔 설치까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원전을 짓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서로 다른 공정 단계에 있는 여러 호기를 동시에 관리하는 것은 그만큼 시공사의 관리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는 로사톰이 다수 호기를 동시에 건설하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고, 실제로 이 사례는 향후 이집트 엘다바(El-Dabaa)나 방글라데시 루푸르(Rooppur) 등 로사톰이 수주한 다른 해외 프로젝트의 공정관리를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점으로 참고되고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서방의 대러 제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왜 로사톰의 해외 원전 수출 프로젝트는 차질 없이 굴러가는 것일까요? 이 사례가 보여주는 답은 "러시아산 원전이 신흥국 시장에서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쿠유 프로젝트는 2010년 러시아와 튀르키예 정부 간 협정에 따라 BOO(건설-소유-운영, Build-Own-Operate) 모델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로사톰이 발전소를 짓는 것은 물론 소유하고 직접 운영까지 하면서 전력만 튀르키예에 판매하는 방식입니다. 튀르키예 입장에서는 막대한 건설 자금을 직접 부담하지 않고도 원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고, 이는 자금력이 부족한 신흥국 시장에서 로사톰이 반복적으로 써 온 수출 전략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번 격납돔 설치 완료는 개별 공정 하나의 성공을 넘어,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의 원전 수출망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그리고 이는 글로벌 원전 시장이 서방 진영과 러시아·중국 진영으로 나뉘어 각자의 궤도를 도는, 이른바 진영별 분절화 흐름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한국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튀르키예 원전시장의 문이 한국에 활짝 열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튀르키예는 아쿠유에 이어 시노프(Sinop) 2차 원전, 그리고 중국과의 3차 원전(트라키아 지역) 협상까지 병행하고 있어, 이미 러시아·중국과의 협력 구도가 상당 부분 짜여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튀르키예의 대형 원전 신규 수주에 뛰어들 여지는 제한적이라고 봐야 합니다.
다만 완전히 눈을 뗄 사안도 아닙니다. 튀르키예는 2050년까지 5GWe 규모의 SMR(소형모듈원자로, Small Modular Reactor) 도입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대형 원전 시장은 이미 진영이 갈려 있더라도, SMR처럼 아직 표준이 확정되지 않은 새로운 시장에서는 진입 기회가 다시 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가치가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제재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경제가 멈춘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쿠유 원전의 사례는 대형 인프라 수출처럼 국가 간 협정과 장기 계약으로 묶인 사업은 정치적 제재의 파고를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뉴스를 접하기 전과 후, 원전 수출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뀌셨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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