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 00:13ㆍ원자력 뉴스
"공사가 30년 넘게 멈춰 있던 원전이라니, 그거 안전한 게 맞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불안한 표정부터 짓습니다. 오래 방치된 건설 현장이라는 이미지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슬로바키아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1986년에 착공했다가 1992년 공사가 멈춘 원전이, 2026년에 마침내 핵연료를 장전하고 가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도 완공되면 이 나라를 세계에서 원자력 발전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로 만들 원전입니다. 오래 멈췄던 프로젝트가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왜 의미 있는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30년 만에 핵연료를 채운 원전, 무슨 일이 있었나요
슬로바키아 국영 발전사 Slovenské elektrárne는 2026년 6월 29일 오후 3시 45분(현지시간), Mochovce 원전 4호기에 첫 핵연료집합체를 장전하며 활성 기동시험(active commissioning)에 착수했습니다. 활성 기동시험이란 원자로에 실제 핵연료를 넣고 출력을 서서히 끌어올리며 설비가 설계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마지막 단계의 시험을 말합니다. 이 단계에 들어갔다는 것은 완공이 눈앞에 왔다는 뜻입니다.
이 절차는 아무나 임의로 시작할 수 없습니다. 슬로바키아 원자력안전청(ÚJD SR)이 사전에 안전성을 심사해 허가를 내줘야 합니다.
슬로바키아 원자력안전청(ÚJD SR)은 5월 22일 기동 허가를 통지했으며, 이의신청 기간을 거쳐 6월 24일 최종 승인이 확정되었다.
즉 5월에 규제기관의 1차 허가가 나오고, 이해관계자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을 거친 뒤, 6월 말에야 최종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절차마다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그만큼 안전성 확인 과정이 여러 단계에 걸쳐 촘촘하게 짜여 있기 때문입니다.
Mochovce 4호기는 471MW급 VVER-440 가압경수로입니다. VVER은 러시아식 설계의 가압경수로를 뜻하는데, 물을 냉각재이자 중성자 감속재로 쓰면서 높은 압력을 걸어 물이 끓지 않도록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국내 원전(APR1400 등)과 기본 원리는 같은 계열입니다. 471MW는 국내 대형 원전(APR1400, 1400MW급)의 3분의 1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편에 속하는 노형입니다.
왜 30년이나 멈춰 있었을까요
1986년 착공된 이 원전은 1992년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옛 체코슬로바키아가 슬로바키아와 체코로 분리되던 시기와 맞물려 정치·경제적 혼란 속에서 자금과 우선순위가 흔들린 결과였습니다. 이후 오랜 기간 방치되다시피 하던 이 프로젝트는 2013년에야 완공 작업이 재개되었습니다.
Mochovce 4호기는 471MW급 VVER-440 가압경수로로, 1986년 착공되었으나 1992년 공사가 중단된 뒤 2013년 완공 프로젝트가 재개되어 총 사업비 67억 유로(약 76억 달러)가 투입되었다.
30년 가까이 미뤄졌던 공사를 다시 살리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습니다. 총사업비 67억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0조 원이 넘는 규모입니다. 오래 멈춰 있던 설비를 다시 점검하고 최신 안전 기준에 맞춰 보완하는 작업이 새로 건설하는 것 못지않게 시간과 비용을 요구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같은 부지의 3호기는 이보다 앞서 2023년 10월 상업운전에 들어갔고, 4호기가 그 뒤를 잇는 흐름입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원전은 공사가 오래 중단되었다고 해서 그대로 폐기되거나 무작정 재가동되는 설비가 아닙니다. 재개 여부와 시점은 안전성 재검증, 설비 개보수, 규제기관 승인이라는 몇 겹의 절차를 거쳐서만 결정됩니다. 이번 4호기의 기동시험 착수 역시 그런 절차의 최종 단계에 해당합니다.

왜 세계 1위 발전비중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나요
Mochovce 4호기가 완공되면 슬로바키아의 원전 비중은 단순히 하나 늘어나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4호기가 완공되면 Bohunice 2기를 포함한 슬로바키아 5기 원전이 전체 전력수요의 약 77.5%를 공급하게 되어 단일 국가 기준 세계 최고 원전 발전비중을 기록하게 된다.
전체 전력의 77.5%를 원자력 하나로 감당하는 나라가 된다는 뜻입니다. 인구와 산업 규모가 크지 않은 나라이기에 가능한 숫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원자력 하나에 에너지 안보를 집중시키는 전략을 택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4호기는 앞으로 출력을 단계적으로 높여가며 정격출력에서 144시간, 즉 6일 동안 연속으로 안정적으로 운전되는지 확인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정식 상업운전에 들어갑니다. 아직 몇 단계가 더 남아 있는 셈입니다.
이 숫자가 흥미로운 이유는 또 있습니다. 슬로바키아 정부는 이미 Bohunice 부지에 신규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출력은 작지만 공장에서 모듈 단위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라 건설 기간과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노형입니다. 이미 원자력 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추가 건설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원자력을 에너지 정책의 임시방편이 아니라 장기 전략의 축으로 삼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사례가 다른 나라에도 의미가 있는 이유
장기간 중단되었던 원전 프로젝트를 재개해 완공까지 끌고 간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그만큼 이번 Mochovce 4호기의 완공 과정은 비슷한 처지의 프로젝트를 검토하는 다른 나라들에게도 참고할 만한 선례가 됩니다.
1980년대 착공 후 30년 이상 지연된 프로젝트가 완공 단계에 이른 사례로, 장기 중단 원전의 재개·완공 프로젝트에 대한 리스크 관리 및 사업성 평가 측면에서 국내 원전 EPC 업계에 참고가치가 있다.
여기서 EPC란 설계(Engineering)·조달(Procurement)·시공(Construction)을 함께 수행하는 원전 건설 방식을 말합니다. 오래 멈춘 프로젝트를 되살리려면 단순히 공사를 재개하는 것을 넘어, 수십 년 전 설계가 현재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지, 노후 설비를 교체해야 하는지, 비용 대비 완공 이후의 경제성이 있는지를 모두 새로 따져봐야 합니다. Mochovce 4호기는 이 모든 검증을 거쳐 결국 결승선에 다다른 사례입니다.
아울러 77.5%라는 압도적 원전 비중은 에너지 안보를 원자력에 집중시킨 소규모 국가의 전략 사례로서, 인접한 체코와 폴란드 등 원전 확대를 추진 중인 국가들에도 심리적인 자극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슬로바키아는 향후 한국형 원전(APR1400)이나 i-SMR과 같은 수출형 노형의 잠재 시장으로도 계속 주목받는 지역입니다.
오래 멈췄던 원전이 다시 움직이기까지는 단순한 공사 재개가 아니라, 안전성 재검증과 규제 승인이라는 몇 겹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슬로바키아는 세계에서 가장 원자력에 의존하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사례를 지켜보면, 원전이라는 설비를 바라볼 때 "얼마나 오래됐는가"보다 "어떤 절차를 거쳐 검증되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라는 점이 조금 더 선명해지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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