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 02:04ㆍ원자력 뉴스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라는 이름을 뉴스에서 자주 접하실 겁니다. 기존 대형 원전보다 작고, 공장에서 미리 조립해 현장에 설치할 수 있어 건설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차세대 원자로입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기술을 규제하는 법이 1954년에 만들어졌고, 그마저도 마지막 개정이 1982년이라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그렇게 오래된 법으로 최신 기술을 다뤄도 괜찮은 걸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실 겁니다.
실제로 이 문제는 2026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Nuclear Regulatory Commission) 산하 원자력안전면허위원회(ASLBP)가 주최한 규제정보콘퍼런스(RIC) 세션에서 정면으로 다뤄졌습니다. "내일의 규제를 위한 오늘의 고민(Today's Consideration for Tomorrow's Regulations)"이라는 제목의 이 패널 토론에는 신시민자유연합(NCLA)의 선임소송변호사 페기 리틀(Peggy Little), 조지타운대 로스쿨의 빅토리아 너스(Victoria Nourse) 교수, 전 NRC 법률고문 앤드루 애버바크(Andrew Averbach), 전 연방항소법원 판사 토마스 바나스키(Thomas Vanaskie)가 참여했습니다. 오늘은 이 토론에서 나온 핵심 문제제기, 즉 "낡은 법으로 새 기술을 규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1954년 원자력법, 지금도 유효한 틀인가
미국의 원자력 규제 체계는 원자력법(Atomic Energy Act)이라는 하나의 큰 뼈대 위에 서 있습니다. 1954년 제정되고 1982년 개정된 이 법은, 냉전 초기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과 민간 이용을 분리하고 상업용 원자력 산업의 틀을 만든 법입니다. 문제는 이 법이 만들어질 당시 입법자들의 머릿속에는 오늘날의 SMR이나 마이크로원자로 같은 개념이 전혀 없었다는 점입니다.
패널에서 리틀 변호사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짚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정말로 이런 소형 발전기들과 제가 설명할 자격조차 없는 여러 기술적인 것들로 원자력 이용의 새 시대에 들어서려 하면서, 하물며 1954년에 제정되고 82년에 개정된 법령으로 그것들을 규제하고 싶은 것이냐"고 반문했습니다. 법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실관계와 기술적 조건 위에서 옛 법을 유추 적용하는 방식이 타당한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식은 최근 몇 년간 미국 행정법 전반을 뒤흔든 판례들과 맞물려 있습니다. 2024년 대법원의 로퍼 브라이트(Loper Bright) 판결은 법원이 행정기관의 법령 해석에 자동으로 존중(deference)을 표하던 이른바 '셰브론 존중(Chevron deference)' 원칙을 사실상 폐기했습니다. 쉽게 말해, 예전에는 "NRC 같은 전문기관이 그렇게 해석했다면 법원도 존중해준다"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제는 법원이 직접 법률 문언을 따져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바나스키 전 판사는 이 변화에 대해 "법원은 이제 NRC의 기술적 전문성에 따르지 않고 원자력법, 핵폐기물정책법 및 관련 법령을 독립적으로 해석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의 존중 대신 의회의 입법으로
여기서 리틀 변호사가 제시한 대안이 이 토론의 핵심입니다. 그는 법원이 기관의 전문성을 무조건 존중하는 방식 대신, 의회가 직접 나서서 명확한 신규 입법을 하는 편이 근본적 해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면 선점(preemption) 문제가 해결됩니다. 많은 주정부 반대 문제도 해결됩니다. 또한 이는 법원이 실제 전문성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어떤 기관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대신, 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는 의회가 온갖 종류의 핵과학자, 안전전문가, 사보타주 전문가, 사이버안전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선점(preemption)'이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연방법이 특정 영역을 규율하고 있을 때, 주정부나 지방정부가 같은 영역에 별도의 규제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입니다. 원자력 발전은 원래 연방정부, 즉 NRC의 배타적 관할로 여겨져 왔지만, 최근에는 주정부가 원전 폐기물 처리나 시설 운영에 자체 규제를 시도하면서 소송이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애버바크 전 NRC 법률고문은 뉴욕주가 인디언포인트 원전의 방류를 금지하려 했던 사례에서 연방법원이 주법을 선점 원칙에 따라 무효로 판단한 사례를 언급하며, "원자력 르네상스가 본격화되면 더 많은 주가 문제 삼을 것이고, 이는 앞으로 소송의 비옥한 토양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리틀 변호사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지금처럼 낡은 법 문언을 여러 방향으로 해석해 소송으로 다투는 구조에서는, 법원마다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고 주정부의 반발도 계속됩니다. 반면 의회가 SMR 시대에 맞는 새 법을 명확하게 만들면, 그 자체로 연방정부의 규율 범위가 분명해져 선점 문제도, 주정부 반대 문제도 함께 정리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법원이나 소수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불러 청문회를 여는 의회가 판단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 — 초당적 입법의 가능성
이런 주장에 대해 흔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은 "의회가 그렇게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입니다. 실제로 애버바크 전 법률고문도 같은 토론에서 "의회가 첨단 원자로 건설을 규율하는 법을 만들어낼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한 바 있습니다. 너무 복잡한 기술 영역이라 의회가 세부까지 입법하기 어렵고, 그래서 오히려 전문기관에 폭넓은 재량을 맡기는 편이 현실적이라는 시각입니다.
하지만 너스 교수는 이 회의론에 다른 근거로 반박했습니다. 그는 상원에서 실제로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실제로 법안이 통과되던 시기에 그곳에서 일했고, 상원에서 근무했습니다. 60표를 채워야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는 실제로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걸 아는 이유는 제 배우자가 모듈형 원자로와 관련해 국립과학원(National Academy) 작업을 했기 때문인데, 원자력에 관해서는 일종의 초당적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의회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시점입니다. 의회는 물지 않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입법할 이슈를 원합니다."
이 발언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상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필리버스터를 막기 위한 60표라는 매우 높은 문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법안은 통과되어 왔다는 경험적 사실입니다. 둘째, 원자력이라는 주제 자체가 현재 미국 정치 지형에서 드물게 여야 모두가 필요성에 공감하는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에너지 수요 급증과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발 전력난이 겹치면서, 원자력 확대는 정당을 가리지 않는 공통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낡은 법과 새 기술 사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
이 토론이 한국 독자에게 남기는 질문은 미국 원자력법의 세부 조항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데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 법을 유추 해석해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그 기술에 맞는 규율 틀을 처음부터 새로 만들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한국에서도 SMR과 관련한 인허가 체계, 안전 기준, 부지 선정 절차 등은 기존 원자력안전법 체계 안에서 세부 규정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 접근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 사례가 보여주듯 기술이 법이 예상하지 못한 지점까지 나아갈 때는 해석의 불확실성이 소송과 행정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리틀 변호사가 강조한 것처럼, 이런 불확실성을 법원의 판단에 맡기기보다 처음부터 명확한 입법으로 해소하는 편이 결과적으로 산업 전반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길일 수 있습니다.
이 토론을 관통하는 질문, 즉 원자력법 개정 없이 소형모듈원자로 시대를 규율할 수 있는가에 대해 패널이 내놓은 답은 명확했습니다. 낡은 법의 해석에 기대기보다, 다양한 전문가의 목소리를 듣는 의회가 직접 새 규율을 만드는 편이 선점 문제와 주정부 갈등까지 함께 풀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원자로 기술이 계속 등장하는 지금, 이 질문은 미국만의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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