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 02:12ㆍ원자력 뉴스
원자력 규제가 "위에서 시켰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빠르게 바뀐다면, 이걸 반가워해야 할지 불안해해야 할지 헷갈리실 수 있습니다. 규제가 완화되거나 절차가 간소화된다는 소식은 업계에는 희소식처럼 들리지만, 그 근거가 대통령의 지시 하나뿐이라면 법정에서 뒤집힐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2026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Nuclear Regulatory Commission) 콘퍼런스(RIC)의 한 세션에서, NRC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전직 관료가 바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규제 개혁의 '이유'는 될 수 있어도, 법정에서 그 개혁을 지켜낼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NRC는 결국 무엇으로 규제 개혁을 방어해야 하는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행정명령 14300호, NRC에 무엇을 요구했나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4300호는 NRC를 포함한 연방 기관들에 광범위한 규제 검토와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행정명령이란 대통령이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부 내부에 내리는 지시로, 법률 그 자체는 아니지만 산하 기관의 업무 방향을 강하게 좌우합니다. NRC는 이 지시에 따라 각종 규정을 재검토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파트 2(Part 2)' 규정, 즉 공청회 절차를 규율하는 규칙의 개정입니다. 해당 개정안은 2026년 3월 초 연방관보(Federal Register)에 게재되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개정 작업의 실제 동기입니다. 전직 NRC 법률고문(solicitor) Andrew Averbach는 세션에서, 파트 2 재작성 제안 규칙을 들여다보면 NRC가 이 작업을 하는 이유가 "largely because of the executive orders and largely to fit within the time frames mandated by the executive orders" — 상당 부분 행정명령 때문이며 행정명령이 정한 기한을 맞추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것이 기관 입장에서 "완전히 정당한 이유"라고 인정하면서도, 곧바로 결정적인 단서를 덧붙였습니다.

"대통령이 시켰다"는 법정에서 통하지 않는다
Averbach의 핵심 발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I don't want to rely on the idea that we're doing this and it's legal because it was part of the executive order. That, to me is why you did it, but not a legal justification for doing so." 훗날 정부를 변호하는 법정 서면을 쓸 일이 생긴다면, "이것이 행정명령의 일부였기 때문에 합법적이다"라는 논리에 기대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행정명령은 왜 그 일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되지만, 그 일이 법적으로 정당한지에 대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요지입니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외교 문제와 같은 특수한 영역을 제외하면 행정명령 자체는 법(law)으로서의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고 못박았습니다. "대통령이 시켰다"는 말은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명분이 될 수 있어도, 사법부 앞에서는 별도의 증명이 필요한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같은 세션에 참여한 조지타운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Victoria Nourse는 이 지점에서 "The statute controls. So if the statute allows you to do that, then you're good"라며 간단명료하게 정리했습니다. 법령이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법령이 그 조치를 허용하면 문제가 없고, 허용하지 않으면 아무리 행정명령이 뒷받침하더라도 소용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결국 규제기관의 조치가 법정에서 살아남을지 여부는 대통령의 지시 여부가 아니라,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경우 원자력에너지법, Atomic Energy Act) 조문 안에 그 권한이 실제로 담겨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NRC는 무엇을 근거로 삼아야 하는가
Averbach는 법정 대응 전략의 방향도 제시했습니다. "the agency can put forth a basis as to why it's rewriting part two, why it thinks that this is not an arbitrary and capricious scheme... But I don't think, oh, because the president said we should do it... is going to sway too many on the courts." NRC가 파트 2를 왜 다시 쓰는지, 그 개정이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arbitrary and capricious) 조치가 아니라는 근거를 스스로 제시해야 하며, 그 근거들이 정부 측 법정 서면에 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의적이고 변덕스럽다'는 표현은 미국 행정절차법상 법원이 행정기관의 규칙을 무효화할 때 쓰는 심사 기준으로, 합리적 근거 없이 임의로 내린 결정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NRC가 방어해야 할 것은 '대통령의 지시를 따랐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 규정 개정이 원자력에너지법이 부여한 권한 범위 안에서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논증 그 자체입니다.
이 논의는 최근 미국 행정법 전반의 큰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같은 세션에서 다른 패널리스트들은 연방대법원이 최근 판례들을 통해 행정기관의 법 해석에 예전만큼 폭넓은 재량(존중, deference)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법원이 법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태도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규제기관이 "정치적 지시가 있었다"는 설명만으로 법정을 설득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원자력 규제처럼 기술적으로 복잡한 영역일수록, 그 개혁이 법률이 정한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오히려 커지는 셈입니다.
행정명령은 규제 개혁에 속도를 붙이는 정치적 동력이 될 수 있지만, 그 개혁이 오래 버티려면 결국 의회가 만든 법률 조문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NRC의 파트 2 개정이 앞으로 소송에 부딪혔을 때 살아남을지는, 행정명령이 무엇을 요구했느냐가 아니라 원자력에너지법이 실제로 무엇을 허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규제 완화 소식을 접할 때, 그 변화가 어떤 법적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습관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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