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RC Part 57 마이크로리액터 인허가 혁신

2026. 5. 11. 23:56원자력 뉴스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싶어도 허가를 받는 데만 2~3년이 걸린다면, 과연 누가 선뜻 뛰어들 수 있을까요?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규제 문턱이 높으면 시장은 열리지 않습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내놓은 새 규정안 _Part 57_은 바로 그 문턱을 낮추려는 시도입니다. 인허가 기간을 6~12개월로 단축하고, 업계 절감 효과로는 **최대 118억 달러(약 16조 원)를 추산하고 있습니다. 규제 하나가 어떻게 산업 지형 전체를 바꿀 수 있는지, 그 원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기존 인허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원자력 발전소를 짓기 위해서는 설계를 검토받고, 부지를 승인받고, 건설 허가를 취득하고, 운영 허가까지 단계마다 규제 기관의 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현재 적용되는 주요 인허가 규정은 10 CFR Part 50과 Part 52입니다. 이 규정들은 수백만 킬로와트(MW)급 대형 원전을 전제로 설계되었습니다. 방대한 설계 문서, 복잡한 사고 분석, 수많은 심사 단계가 필요하며, 그 결과 인허가에만 2~3년이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이크로리액터(microreactor)는 본질적으로 다른 장치입니다. 출력이 보통 20MW 이하(최대 100MW 이하)로, 대형 원전의 수십 분의 일 수준입니다. 설계가 단순하고, 물리적으로 안전성이 높으며, 공장에서 제작해 현장으로 운반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대형 원전용 규정을 마이크로리액터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마치 승용차 운전면허 취득 절차에 대형 트레일러 트럭의 심사 기준을 그대로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요건이 과도하면 시장 진입 자체가 막힙니다.


Part 57이 바꾸려는 것 — 5가지 핵심 혁신

NRC가 2026년 5월 1일 Federal Register에 게재한 신규 제안 규칙 10 CFR Part 57은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합니다. 공개 의견 수렴은 6월 15일 마감입니다. 핵심 혁신 조항은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플릿(fleet) 일괄 승인입니다. 동일한 설계의 마이크로리액터를 여러 곳에 배치할 때, 첫 번째 심사를 통과하면 이후 같은 설계는 반복 심사 없이 승인됩니다. 표준화된 스마트폰을 생산·판매할 때 모델마다 별도로 전파 인증을 새로 받는 것이 아니라, 설계 인증 하나로 전 모델에 적용하는 방식과 같습니다.

둘째, 공장 제작 후 현장 이송 모델을 공식 지원합니다. 마이크로리액터는 제조 공장에서 완성된 뒤 트럭이나 선박으로 현장에 운반됩니다. 기존 규정은 현장 건설을 전제로 설계됐기 때문에, 공장 제작 방식에는 법적 공백이 있었습니다. Part 57은 이를 명확히 허용합니다.

셋째, 제한적 착공(limited construction)을 NRC 허가 이전에 허용합니다. 허가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모든 공사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가 낮은 기반 공사 등 일부 작업은 먼저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허가 심사와 준비 작업을 병행할 수 있어 전체 소요 시간이 단축됩니다.

넷째, 최악 가정 사고(maximum hypothetical accident) 접근법을 도입합니다. 기존 방식은 수백 가지 시나리오를 열거하고 각각을 분석해야 했습니다. Part 57은 가장 보수적인 최악 시나리오 하나를 상정해 그것만 통과하면 나머지를 포괄하는 방식으로 분석을 간소화합니다.

다섯째, 방사선 방출 기준은 사고 전 전 기간 동안 1렘(rem) 이하로 설정합니다. 이는 소형·단순 설계에 적합한 기준으로, 복잡한 설비군을 열거해 분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NRC 의장 Ho Nieh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Part 57은 안전성·확장성·속도를 모두 갖춰 마이크로리액터를 배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인허가가 짧아지면 어떤 시장이 열리나

규제 기간 단축의 효과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섭니다. 시장 자체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현재 마이크로리액터가 가장 유력한 시장으로 꼽히는 세 곳이 있습니다. AI 데이터센터, 군 기지, 그리고 도서·오지 지역입니다. 이 세 시장의 공통점은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전력원을 원한다는 것이며, 그 전력원이 빠르게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 2~3년의 인허가 기간은 이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데이터센터의 경우, 빅테크 기업들은 AI 연산 확대를 위해 대규모의 무탄소 기저 전력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전 허가를 기다리는 2~3년동안 이미 다른 에너지원이 계약을 선점합니다. 6~12개월이라면 선택지가 달라집니다. 원자력이 실제 경쟁에 오를 수 있습니다.

군 기지는 에너지 자립이 전략적 요구 사항입니다. 전력망 의존도를 줄이고 싶어 하는데, 인허가 속도가 빨라지면 전술적 배치 가능성이 현실화됩니다.

알래스카 오지나 태평양 도서 지역처럼 송전선을 잇기 어려운 곳은 디젤 발전에 의존합니다. 디젤은 비싸고, 수송이 복잡하며,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공장에서 만들어 배로 실어 나른 뒤 현지에서 운전할 수 있는 마이크로리액터는 이 지역의 에너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Part 57이 없으면, 이 가능성은 서류 더미 속에서 멈춰 있습니다.

이미 Radiant Industries(Kaleidos 모델)와 Nano Nuclear Energy 등 기업들이 Part 57 적용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규칙이 최종 확정되기도 전에 기업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규정이 만들어낼 시장을 보여줍니다.


규제 혁신이 기술 혁신보다 강력할 때

기술 개발과 규제 승인은 별개의 경주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완성되어도, 규제 통과 전에는 상업화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규제 속도가 곧 산업 속도입니다.

역사에는 규제 변화가 기술 혁신보다 먼저 시장을 열어젖힌 사례가 있습니다. 드론 배송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했지만, FAA의 비가시권 비행 허가가 나오기 전까지 사업화가 막혀 있었던 것이 대표적입니다. 마이크로리액터도 같은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설계는 이미 여러 기업이 완성 단계에 있고, 시장 수요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병목은 인허가였습니다.

Part 57이 최종 규칙으로 확정되면, 업계 절감 효과는 37억 6,000만 달러에서 최대 118억 4,000만 달러(약 5조 2,000억~16조 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NRC가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는 절약된 심사 비용만이 아니라, 더 빠른 배치가 가능해짐으로써 발생하는 시장 전체의 효과를 포함합니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미국 우려 과학자 연합)는 안전 기준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원 에너지 소위의 Frank Pallone 의원은 "NRC의 독립성 보장 없이는 어떤 원전 르네상스도 좌초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NRC 위원 Bradley Crowell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합니다. NRC가 더 많은 인허가 신청을 더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FY2027 예산은 오히려 8% 삭감, 인력은 7% 감축이 요청됐다는 것입니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연료를 줄이는 격입니다. 이 구조적 모순이 어떻게 해소되느냐가 Part 57의 실제 효과를 결정할 것입니다.


규제가 시장을 만든다는 것의 의미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기술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규제라는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문이 얼마나 열려 있느냐가, 기술이 실제로 쓰이느냐 아니냐를 가릅니다.

NRC Part 57은 마이크로리액터라는 기술이 시장에 나올 수 있는 문을 넓히려는 시도입니다. 6월 15일까지 이어지는 공개 의견 수렴이 끝나면, 최종 규칙은 2026년 하반기 중 제정될 예정입니다. 그 이후 어떤 기업들이, 어떤 장소에 처음으로 마이크로리액터를 배치할지 — 그 첫 사례가 이 산업의 방향을 크게 좌우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