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isades 원전 재가동의 시사점

2026. 5. 12. 00:00원자력 뉴스

한번 폐로(廢爐)한 원전은 다시 켤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핵연료는 이미 빠져나갔고, 설비는 녹슬었으며, 허가는 만료됐을 테니까요. 그런데 2026년 미국 미시간 주에서는 그 상식을 뒤집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2022년 문을 닫은 팰리세이즈(Palisades) 원전이 바로 올해 다시 가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사례가 단순한 미국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이유, 그리고 한국의 노후 원전 논쟁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왜 폐로한 원전을 되살리려 하는가

팰리세이즈는 미시간 주 호숫가에 위치한 출력 777MWe급 가압경수로(PWR, Pressurized Water Reactor — 냉각수를 고압으로 유지해 핵연료를 식히는 가장 보편적인 원자로 방식)입니다. 2022년 5월, 노후화와 수익성 문제를 이유로 공식 폐쇄됐습니다. 핵연료는 꺼내졌고, 운영 면허는 반납됐습니다.

그런데 불과 4년 뒤인 지금, 원전 해체·저장 전문 기업 Holtec International이 이 원전을 되사서 재가동 공사를 진행 중입니다. 왜 이런 역발상이 가능해졌을까요?

답은 전력 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미국 전역에서 기저 전력(24시간 365일 끊이지 않고 공급되는 안정적 전력)의 부족이 현실화됐습니다. 새 발전소를 짓는 데는 10년 이상이 걸리지만,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원전 부지를 복원하는 데는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팰리세이즈의 경우, 재가동에 필요한 연료는 이미 2025년 10월에 반입해 현장에 보관 중입니다.


재가동은 '그냥 다시 켜는 것'이 아닙니다

재가동이 단순히 스위치를 올리는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작업 규모는 새 원전 건설과 맞먹을 정도입니다. 4년간 멈춰 있던 설비는 구석구석 점검이 필요합니다.

Holtec은 300개 이상의 배관과 용접부를 검사했고, 주 터빈발전기를 복원했습니다. 가장 최근인 2026년 4월에는 '1차 계통 부동태화(Passivation)'를 완료했습니다. 부동태화란 냉각수가 흐르는 배관 내부 표면에 얇은 보호막을 형성해 부식을 막는 공정으로, 시스템 전체를 정상 운전 온도와 압력으로 되돌리는 단계입니다. 폐쇄 이후 처음으로 원전 심장부가 다시 뛰기 시작한 것입니다.

남은 절차는 냉각 후 추가 테스트, 연료 탑재, 단계적 출력 상승, 계통 연계 순서로 진행됩니다. Holtec 대변인은 Time지 인터뷰에서 "대규모 복원 작업은 완료됐고, 이제는 일상 정비와 검사 마무리 단계"라며 2026년 내 재가동 목표를 공식 확인했습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습니다. 증기발생기 튜브 균열 보수(슬리브 삽입 방식으로 균열 부위를 막는 작업)에 대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승인이 진행 중이고, 환경단체의 법적 이의제기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NRC 위원회는 이의제기를 매번 기각하고 있습니다. 재정 면에서는 연방 에너지부(DOE)의 1억 5,200만 달러(약 2,000억 원) 융자 보증과 미시간 주의 1억 5,000만 달러(약 2,000억 원) 지원이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경제성이 말하는 것 — 원전은 지금 돈을 벌고 있습니다

팰리세이즈 재가동은 감상이나 이념이 아닌 경제 논리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미국 최대 원전 운영사 Constellation Energy의 2026년 1분기 실적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Constellation은 이 기간 GAAP 기준 순이익 15억 9,00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전년 같은 기간 1억 1,800만 달러와 비교하면 13배 급증한 수치입니다. 원전 설비이용률(원전이 이론 최대 출력 대비 실제로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은 92.3%였으며, 비계획 정비로 인한 중단일은 단 0일이었습니다. 원전이 24시간 내내 멈추지 않고 전기를 생산했다는 뜻입니다.

이 수치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태양광은 해가 없으면 발전을 못하고, 풍력은 바람이 없으면 멈춥니다. 반면 원전은 날씨에 무관하게 연간 8,000시간 이상 전력을 공급합니다. AI 데이터센터는 1초도 전력을 끊을 수 없는 시설입니다. 이 조합이 원전의 경제적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팰리세이즈 재가동은 새 원전을 짓는 것보다 시간이 짧고, 비용도 낮습니다. 이미 있는 부지, 이미 있는 계통망 연결, 이미 훈련된 지역 인력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초의 '폐로 후 재가동' 성공 사례가 된다면, Duane Arnold(아이오와, 2029년 목표)와 Crane Clean Energy Center(2027년 목표) 등 뒤를 잇는 프로젝트들도 탄력을 받게 됩니다.


한국에 묻는 질문 — 노후 원전, 닫아야 하는가 계속 가야 하는가

이 이야기가 한국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노후 원전의 계속 운전(수명 연장)을 두고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져 왔습니다. 고리 1호기는 2017년 영구 정지됐고, 월성 1호기는 2019년 조기 폐쇄됐습니다. 지금도 여러 원전이 설계 수명 만료를 앞두고 계속 운전 여부를 두고 심사를 받고 있습니다.

팰리세이즈 사례는 이 논쟁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원전이 일단 문을 닫으면 되돌리기 매우 어렵습니다. 허가가 만료되고, 전문 인력이 흩어지고, 부품 수급 체계가 무너집니다. 미국은 이것을 돈을 들여 복원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문을 닫지 않는 것, 즉 계속 운전이 훨씬 효율적이었을 수 있다는 반성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계속 운전이 무조건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안전 점검을 통과한 원전만이 대상이 되어야 하고, NRC처럼 독립적인 규제 기관의 엄격한 심사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팰리세이즈도 증기발생기 보수와 배관 검사 등 수백 가지 항목을 통과한 이후에야 재가동 허가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Holtec의 규제 대응 방식과 NRC의 심사 절차는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NSSC)의 계속 운전 가이드라인 개발에 참고할 수 있는 실증 사례입니다. '폐로 후 재가동'이라는 낯선 경로를 규제 체계 안에서 소화하는 과정은, 결국 '노후 원전을 어떻게 안전하게 계속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 문을 닫기 전에 물어야 할 것들

팰리세이즈는 아직 재가동에 성공하지 않았습니다. 연료 탑재 허가, 임계(핵분열 연쇄반응이 스스로 유지되는 상태) 달성, 계통 연계라는 관문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원전이 전 세계 원자력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기술적 성취 때문만이 아닙니다.

한 번 닫은 문을 다시 여는 데 얼마나 많은 자원이 필요한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 자원이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질문을 함께 남깁니다.

팰리세이즈 재가동이 성공한다면, 다음 물음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한국에서 이미 문을 닫은 원전들, 그리고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은 원전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